[Opinion] 영화 < 어느날 >, 미소의 세상, 어린왕자의 세상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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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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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나는 볼 수 있다는 것.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무게가 나를 짓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유령도 아니고 완전한 사람도 아닌 미소를 보게 된 것이 강수에게는 되려 무게가 가벼워지는 일이었다.

  세상이 강수에게 무겁다. 온 세상 과장들은 충혈된 눈이 기본 세팅인건지, 보험회사 이강수 과장과 미생에서 보던 과장님의 충혈된 눈이 겹쳐보였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 보험회사 강수의 눈이 충혈된 건 업무스트레스뿐만은 아니다. 그의 충혈된 눈빛은 생채기가 난 마음이다. 그는 소중한 아내를 잃고야 만 것이다. 온 집안 모든 것에서 그녀의 기억이 떠오르니, 집이야말로 괴로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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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명을 하자면 그녀가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그의 아내 선화의 장례식을 모르는 척한다. 그녀의 동생은 몰라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를 이해하는 듯하다. 슬퍼하는 티를 내야만 슬픈 것은 아니다. 그녀의 방은 그대로 미이라를 보존하듯 남아있다. 강수에게 참 각박하다. 세상은 우리에게, 특히 남자에겐 슬픔과 눈물에 관대하지 않다. 태어나서 세번만 울어야 한다느니, 남자애가 '그깟' 일로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냐는 둥, 눈물이 여자의 전유물이나 무기라도 되는 양. 그래놓고 가끔은 울지 않아서 슬퍼하지 않는 것 같아보여서 화를 내는 걸 보면 신기하다. 호상이 아니었다. 시름시름 고통스러워하다 죽어갔다. 산산조각 무너져내리는 오열이라도 봐야 속이 시원하려나. 그는 무표정에 슬픔을 담아두는 여느 남자, 여느 어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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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눈과 손, 죽음에 대해서 다소 정직하게 접근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변화구가 없으니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란 거다. 그게 좀 아쉽기도 했고, 잔잔하게 흘러가서 좋기도 했다. 눈은 여기서 마음과도 직결된다. 강수는 첫 등장부터 충혈된 눈으로 술에 기대살고 있었다. 피로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가 미소를 만나면서 미소도 되찾아 원래 그의 눈빛, 눈을 찾아간다. 그는 미소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은 덜 신경쓰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알고 있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미소와 대화를 하고, 남들에겐 빈자리일 곳에 술을 한 잔 사는 모든 행동이 이상해 보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강수는 이상한 사람이다. 보험회사 과장이라면 상사의 말대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그냥 미소가 알아서 처리하라 할 때 이게 무슨 횡재냐면서 끝내버렸어도 될 일이었다. 미소가 아니었으면 그 꼬마 환자의 아버지가 자신이 지긋지긋하게 만나던 보험사기 환자일지 몰랐을 일이었다. 사실은 열심히 아이의 병원비를 대느라 일하고 있었던 사람인 줄도.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그녀의 엄마를 찾고 회사도 나와버린다. 그는 이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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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소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 눈이 보이지 않다가 혼수상태가 되어서야 그토록 바라던 세상을 보게 된다.  그녀는 우리에겐 어쩌면 당연할 것이 당연하지 않다. 눈이 보이면 만질 수가 없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양자택일의 선택지처럼. 눈이 보이지 않을 때 함께 있던 친구들과 안내견은 그녀가 볼 수 있게 되었을 땐 만질 수 없었고  눈이 보이지 않을 때 자신에게 친엄마는 그녀에게 매정했다. 그녀의 마음도 알만하다. 자신이 버린 생명이 그녀에게 25년만에 돌아왔을 때 패닉에 빠져버린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녀의 새로운 인생, 새로운 딸을 보고 덜컥 겁이 나버린 것이다.

  막상 미소는 그냥 잘 자랐다면서 온건데, 자신을 욕하고 탓할까 찔리는 마음에 그녀가 차도로 뛰어드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거들고 만 것이다. 잠깐이라도 나와봤다면, 갈 땐 가더라도 케인은 들고 가라고 했다면 미소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의 엄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존재를 부정했고, 결국은 다시 버려진 미소의 상처는 그녀를 지금 죽음과 삶의 경계에 두었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녀의 엄마가 조금 늦게,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강수덕분에 와 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보고 쓰다듬어준다. 그녀가 혼수상태로 누워있어 사람도 유령도 아닌 상태일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눈을 잃고 엄마를 잃었으며, 눈이 잠시 얻고 엄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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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 시각장애인인 미소에게는 눈이자, 강수에게는 아내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미소는 손을 가만히 어루만지면, 손으로 그 사람을 어루만지면 그사람의 삶이 보인다고 했다. 강수에게 손은 아내의 기억이다. 아내는 그가 덜 익은 김치를 손으로 집어먹을 때 으이구, 하면서 손으로 등을 툭 치곤 했다. 자신에게 짐이 되기 싫어 죽음을 택할 때 강수는 자신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그녀의 툭 어깨에 얹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눈은 순간의 기억을 담아두고, 손은 자신도 모르는 오랜 기억을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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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이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될 선택일 것이다. 대체로 미소와 강수의 선택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건 강수에 대한 걱정이자 영화가 몰입을 깨고 현실로 돌아오는 시점이기도 하다. 옆에서 한참을 훌쩍거리던 관객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근데 그건 범죄아니야?'하더니 유유히 이야기를 나누며 사라졌다. 죽은 자의 입장에서는 그 죽음이 범죄가 아니라 자신의 부탁이자 소원이겠지만, 그것을 증명할 길이 쉽지 않으니 강수가 자신의 손으로 그 소원을 들어준 것은 범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녀의 엄마에게 얘기를 했더라면, 혹은 의사와 상담을 했더라면, 다른 방법을 찾았다면 좀 더 마음이 편했을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런 디테일을 모두 논외로 하자면 그 행동 자체는 범죄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죽음이 범죄가 아니기도 하다. 이미 식물인간인 그녀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이며 언제 스러져도 놀랍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 그녀를 대신해 생명을 연장하는 기계를 끄는 것은 어찌 보면 소극적으로 죽음을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동의의사를 분명히 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직접 죽음에 이르는 약물을 주사하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나라도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전개가 되었든 논란이 되었을 부분일 것이다. 죽음은 여전히 살아있는 자에겐 금기와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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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바로 그 장면에서 나는 <어린왕자>가 문득 떠올랐다. 어린왕자가 지구를 떠나 자신의 별로 돌아가는 과정은 놀랍게도 지구에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죽음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해서 그 죽음을 원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원래도 아주 거부감은 없었으나 그래서 미소와 강수의 선택이 이해가 되는지도 모른다. 어린왕자가 남들과 다른 것을 보는 게 미소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미소를 어린왕자로 보자면, 강수는 비행조종사인 '나'이자, 여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약간은 뱀일 수도 있겠다)

  어린왕자는 아주 먼 우주의 행성에서 지구의 사막에 도착해 비행조종사이긴 '나'를 만났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하고 대뜸 양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하던 그는 보이는 양 말고, 그 양이 살 수 있는 상자를 보며 기뻐한다. 그는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겐 보이지도 않는데 대강 그려준 상자엔 벌써 양이 뛰어놀고 있다고 한다.  '나'가 어릴 적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세상 모든 어른들에게는 흔해빠진 모자일 뿐이지만, 어린왕자에게는 단번에 코끼리와 보아뱀이다.

 어린왕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함께 지내고 부탁을 들어주는 조종사. 그는 어린왕자가 자신의 행성을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물려서 죽어가는 그 순간 함께한다. 미소를 만나 강수는 그녀의 건넨 낯선 부탁을 들어주며 사막같이 건조하고 고통스럽고 차가운 현실을 함께 했다. 그녀가 끝으로는 자신의 죽음을 부탁하며 생명 유지 장치를 꺼달라는 부탁에는 고심 끝에 결국 그 스위치를 꺼서 죽음을 주고, 그 잠시동안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다.



「내 생활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고. 닭들은 모두 그게 그거고, 사람들도 모두 그게 그거고. 그래서 난 좀 지겨워.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듯 환해질 거야. 모든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발자국 소리를 나는 듣게 될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는 나를 땅속에 숨게 하지.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서 슬퍼! 그러나 네 머리칼은 금빛이야.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밀은, 금빛이어서, 너를 생각나게 할 거야. 그래서 나는 밀밭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고…….」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 

-<어린왕자> pp.86-87



  오후 4시에 어린왕자가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여우. 모든 발자국 소리와 다른 어린왕자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하고, 그의 금빛 머리카락 덕분에 밀밭을 보고도 어린왕자를 떠올리고, 밀밭에 스치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되는 것. 길들여진다는 건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인가보다. 나의 일상에 상대방이 자연스러워지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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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에게 미소가 그렇다. 병원에서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미소에게 익숙해지고 그녀를 더 자주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더 건강할 수 있도록, 더 웃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들. 무심코 돌아보면 그녀는 사라져 있고, 불현듯 나타나 있어서 더더욱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린왕자처럼 오후 4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할 수도 없는 사이니까. 그러나 강수도 조약돌에, 벚꽃잎에, 옥상에서, 수족관에서 미소를 떠올리게 되겠지. 맨질맨질하고 흔하디 흔한 조약돌을 나란히 모아두던 그녀를.  강수에게만 보이는 그녀와 나란히 벚나무길을 걷던 그 순간을. 그녀가 먼저 여기여기 하면서 손을 흔들던 아지트 옥상. 생전 처음 그녀가 눈을 동그라니 뜨고 신기함에 가득차 보았던 수족관. 그 모든 것들이 금빛 머리카락처럼, 발자국소리처럼 강수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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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영화다. 강수 역할을 한 김남길이 정직하게 연기를 해서 이래도 되나 싶었나 싶었다는 말이 이해도 간다. 아쉬운 점도 있고 찜찜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어린왕자 같은 메세지라면 나는 이 영화 <어느날>이 조금은 더 좋아질 것 같다. 그리고 영화가 멜로가 아니라는 말에 더 없이 동의하며 다행스럽다.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애정과 따스함이다.

  강수가 미소를 보게 된건, 미소가 강수를 본 것과는 다른 어느 날이었다. 강수에게는 병원 옥상에 홀로 앉아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주길 기다리던 그녀를 멀찍이서 알아본 그 날. 미소에게는 소중한 이가 죽어가는 순간에 강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던 그 날. 둘에게도 어느 날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소가 무턱대고 하는 부탁으로 간 결혼식에서 그녀의 안내견을 대신 턱을 쓰다듬어준 날. 벚꽃이 봄비처럼 내려올 때 미소에 손에 꽃잎이 머물게 강수가 손을 이어주던 날. 늘 미소가 혼자 올라가 구경하던 옥상 난간에서 강수가 함께 나란히 앉아있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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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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