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정말 '가만히 있지 않았'는지 :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

글 입력 2017.04.0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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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지금까지의 글과는 달리 책에 대한 설명을 과감히 배제하고, 제가 책을 읽고 느낀 감정들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책에는 곧 3주기가 돌아오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여러 작가들의 단편이 담겨 있습니다.
※4월 8일에 올라왔어야 할 글이 늦어진 점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재작년 봄, 대학교 전공 수업 시간에 세월호 추모시를 영어로 번역하라는 과제를 받고 아래와 같은 글을 썼던 것 같다.


 
세월호 추모 시를 번역하는 과제를 받고 나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과연 내가 시가 주는 이미지를 온전히 전달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작년 4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장 내 앞에 닥친 현실이 버거워서, 모두가 그러하듯 슬퍼했던 것 말고는 무엇도 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 시청 바로 옆의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교실 밖으로 보이던 노란 리본과, 애도의 물결이 밀려왔던 광장에 점점 무덤덤해 갔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그 사건이 나에게는 그저 일상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시를 번역하면서 내가 외면했던 1년 전을 돌이켰다. 눈앞에서 자식을 잃어야 했던 부모들의 슬픔과, 살려달라 살려달라 외쳤던 어린-나와 같은 나이의-학생들을 생각했다. 담담해 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시간이 지나도 ‘고통의 궁극’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역사에 또 다른 끔찍한 자국을 남겼다. 문학이 할 수 있는 많은 역할들 중에서도 되새긴다는 것은 가장 숭고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차가운 손’이 되지 않기 위하여, 또다시 이런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문학은, 시는, 글로 써 활자로 남겨진다는 것은, 그 기억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2015년 5월 3일 제출했던 세월호 추모시 한-영 번역 과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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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인양 이후, 한겨례신문의 1면 > 


그리고 얼마 전, 세월호가 3년 만에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3월 24일 발매된 신곡을 들으며 구글에 세월호를 검색했다. 우연찮게도 아이유의 담담한 목소리는 처음 듣는 노래임에도 첫 소절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잠시 동안 멍해졌다. 그 상태로 나는 세월호에서 구조된 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교감선생님의 유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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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카톡을 읽었다.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 학생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친구들을 추모하는 글을 낭독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국가적 재난에 있어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는 문장을 읽는다. 검찰에 출두하는 박근혜의 송구스럽다는 한 마디를 다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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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는 재난 사령탑이 아니라는 발언을 보도한 JTBC 뉴스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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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 이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여 '8초 메세지'를 내놓은 박근혜 >


또 나는 국회에서 탄핵이 인준된 이후 눈물을 흘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진을 본다. 촛불시위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이는 실종자 가족들을 본다. 세월호 유가족을 안산에서 진도까지 오고 갈 수 있게끔 돕는 ‘다람쥐 택시’에 대한 TV조선의 뉴스를 보도하다가 눈물을 흘린 여성 앵커를 본다. 그녀는 울먹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래도 다람쥐 택시는 계속해서 달립니다.
이렇게 분노와 절망을 감사와 희망으로
바꾸어 주는 이들이 있어서,
대한민국은 상처를 치유할 힘을 있음을 아직 확신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란 무엇인가. 나는 감히 그것을 되새기는 것이라고 적었다. 나는 그 상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기록하는 일이라고 적었다.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기억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적었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는 함께 울었고, 잊지 않겠다 약속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모두가 분노했다. 매년 우리는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우리는 그런 되새김을 통해서 잊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잊지 않음을 통해 우리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에 가까운 믿음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은 과거의 사건인가? 역사책에 등장하는 사건인가? 내신이나 수능 시험을 위해서 외워야만 하는 한국 현대사 속 죽어버린 숫자와 글귀인가?

 2014년 4월 16일 아침 나는 기숙사에서 일어나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들었다. 세월호에 대해서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던 것 같다. 미션스쿨은 매주 수요일에 전교생이 모여서 예배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밤에는 모든 것을 들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나는 폴더 폰을 쓰고 매일 밤 11시까지 자습을 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학교에 노란 리본이 달리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는 분향소가 보였다. 노란색, 노란색이 파도처럼 밀려와 내 눈을 아프게 했다. 선생님들은 비통해 하셨고, 친구들은 침울해 했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날 나는 친구와 함께 분향소에 갔다. 10초도 안되는 묵념을 하고 나는 그들의 분향소에 국화꽃을 바쳤다.

그게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던 전부였다.

정말로 그런가?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머리가 멍 해져서, 혹은 머리가 아파와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분향을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세월호를 생각했는지 잊지 않겠다는 말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면서 그 속에 있는 잔인한 진실을 들여다 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는지.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침식했다. 나는 생각에 잠겨, 아니 파묻혀 나라는 사람은 왜 이다지도 방관자와 같은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 귀에는 계속해서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 게요.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여기 내 마음 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 게요. 
좋은 꿈이길 바라요. 
(아이유, 밤편지)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를 들었기 때문에 울었던 것은 아니라고 나는 변명하지만
밤이 아니었어도 그랬을까? 내가 복잡한 기사들을 읽으며 세월호를 둘러싼 청문회나, 법정공방을 보면서도 울었을까?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나. 나는 왜 나의 이런 무력함을 변명하려고 하나, 잊어버릴 거면서 잊어버리지 않겠다 이야기하나. 나는 왜 세월호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슬퍼하기밖에 못하나. 분노해야 할 일에 슬퍼하면 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데, 왜 나는 슬퍼하지 밖에 못하나. 나는 결국 무엇 하나 나은 것이 없다. 그런 나를 변명하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 또 무슨 일을 할까? 부끄럽고 부끄럽다. 되새김질하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비겁하다, 비겁한 사람이다. 눈물 흘리는 것이 대수라고, 슬퍼하면 다인 줄 아는 나는 참 한심한 사람이다. 어떤 말도 나에게는 너무 무겁다.

마지막으로, 재작년 봄 내가 번역했던 시를 덧붙이며 글을 마친다. 부디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분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소금 속에 눕히며 –문동만 

억울한 원혼은 소금 속에 묻는다 하였습니다
소금이 그들의 신이라 하였습니다

차가운 손들은 유능할 수 없었고
차가운 손들은 뜨거운 손들을 구할 수 없었고
아직도 물귀신처럼 배를 끌어내립니다
이윤이 신이 된 세상, 흑막은 겹겹입니다
차라리 기도를 버립니다
분노가 나의 신전입니다
침몰의 비명과 침묵이 나의 경전입니다 

아이 둘은 서로에게 매듭이 되어 승천했습니다
정부가 삭은 새끼줄이나 꼬고 있을 때
새끼줄 업자들에게 목숨을 청부하고 있을 때
죽음은 숫자가 되어 증식했습니다
그대들은 눈물의 시조가 되었고
우리는 눈물의 자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살 오빠가 여섯 살 누이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줄 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아가미도 없이 숨을 마칠 때
아이들보다 겨우 여덟 살 많은 선생님이
물속 교실에 남아 마지막 출석부를 부를 때
죽어서야 부부가 된 애인들은 입맞춤도 없이 

아, 차라리 우리가 물고기였더라면
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고 살아있는 당신들만 뱉어내는
거대한 물고기였더라면 

침몰입니까? 아니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우리들의 고요를, 생의 마지막까지 번지던 천진한 웃음을 이윤의 주구들이
분별심 없는 관료들과 전문성 없는 전문가들이
구조할 수 없는 구조대가
선장과 선원과 또 천상에 사는 어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의……습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3층 칸과 4층 칸에
쓰린 바닷물이 살갗을 베는
지옥과 연옥 사이에 갇혀버렸습니다
우리도 갇혀 구조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 가신 곳 천국이 아니라면
우리도 고통의 궁극을 더 살다 가겠습니다 

누구도 깨주지 않던 유리창 위에 씁니다
아수라의 객실 바닥에 쓰고 씁니다
골절된 손가락으로 짓이겨진 손톱으로
아가미 없는 목구멍으로
오늘의 분통과 심장의 폭동을
죽여서 죽었다고 씁니다
그대들 당도하지 못한 사월의 귀착지
거긴 꽃과 나비가 있는 곳
심해보다 짠 인간과 인간의 눈물이 없는 곳
거악의 썩은 그물들이 걸리지 않는 곳
말갛게 씻은 네 얼굴과 네 얼굴과
엄마아 아빠아 누나아 동생아 선생니임 부르면
부르면 다 있는 곳 

소금 속에 눕히며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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