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평범한 하루가 '그날'이 된 것은

글 입력 2017.03.2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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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24시간.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실컷 혹은 빠듯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은 정확히 24시간이다. 물리적으로 24시간은 누구에게든 똑같이 주어지지만 누구의 24시간이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시간들로 재탄생한다. 때문에 수천수만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세상의 관점에서 하루는 한 사람의 하루와 달리 저마다의 사건사고가, 감정이, 관계가 뒤엉켜 실타래가 되어 굴러간다. 이성복의 시 <그날>은 하루라는 시간의 실타래를 덤덤하게 풀어내며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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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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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아버지가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로 시작해 ‘市內 술집과 여관이 붐비는’ 밤으로 끝을 맺으며 ‘나’를 중심으로 한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역전의 여자들 등 여러 인물들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을 했고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퉜다.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으며 역전엔 창녀들이 서성거리고, 집일을 돕거나 아이를 돌보는 애들은 창녀가 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와 달리 ‘나’는 신문사에서 종일 노닥거리다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사랑하기도 한다. 여동생은 학교에 갔다가 애인과 음악회를 보러간다. ‘나’에게 세상은 없는 것 없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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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어머니, 창녀들, 그리고 아이들의 하루는 지극히 무미건조하다. 아침 일찍부터 생계에 시간을 바치고 갈등을 겪는 일이나 퉁퉁 부어오른 다리는 고된 노동의 파편이다. 역 앞을 지키는 창녀와 더불어 창녀가 될 아이들에게선 어떤 희망과 꿈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들의 하루는 한 줌의 여유나 즐거움도 없이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우며 지쳐있다. 이에 비해 나와 여동생의 하루는 꽤 풍요로워 보인다. 공부를 하고 사랑을 하며 유희를 즐기고 주어진 시간동안 스스로를 채운다. 고통이나 슬픔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두 사람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 장담할 순 없지만 최소한 주도적으로 앞날을 그려나갈 것만 같다.
이렇듯 시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의 하루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이 하나의 실타래로 밀접하게 얽혀있음에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일상의 고통과 아픔을 한껏 부각시키고 둘 사이의 간극을 넓힌다.

 그러다 문득 시의 끝자락에서 ‘나’의 시선은 뿌연 무관심의 매연을 뚫고 부츠 신은 여자에게서 잔디밭의 잡초를 뽑다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여인들과 집을 허물다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사내들에게로 가닿는다. 이들의 하루는 아버지, 어머니, 창녀들, 창녀가 될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잡초나 뽑다가 삶을 허비해버렸고, 집을 허물다 꿈까지 잃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의 하루는 앞서 언급된 사람들의 것들과 달리 ‘나’의 지각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경주마라도 된 듯이 그저 앞을 향했던 ‘나’의 눈이 고통과 아픔으로 얼룩진 타인의 일상을 목격하기 시작한다. 즐기기 바빴던 ‘나’는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으며 시내 술집과 여관이 붐비고 있는데도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쓸쓸한 현실을 직시한다. 그러면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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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시간은 타인의 시간과 실타래를 이루고 굴러가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의도한 바가 아니라 해도 고통과 아픔 속에서 타인이 내뱉는 비명을 듣지 못한다. 바로 옆에 있는 실이 쪼개지고 풀려나가도, 심지어는 자신의 실이 난도질당하고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시에서 병든 이는 ‘모두’임에도 아픈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나’가 표현하고 있듯이 누군가의 고통에 그 누구도, 자신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든 사회는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나’만큼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질 나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괴로움과 풍요로움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무관심은 신음소리를 덮어버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와 자기 자신을 피폐하게 했다. 이는 달리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타인의 곪아가는 상처를 발견하고 새어나오는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그것이 갖는 힘은 실로 강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즐거움과 풍요는 분명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우리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 거기에 매몰되면 세상의 화려함에 젖어 하루의 밑바닥에 어둡고 잔잔히 깔려 있는 고통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때문에 시가 경계하고 있는 건 부츠 신은 멋진 여자에만 종일 한눈이 팔려 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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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할 것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가 ‘그날’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있는 건 왜일까? 그 이유는 고통이 곧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을 지그시 바라볼 줄 알게 된 ‘나’의 시선 변화에 있다. 고통이 흘러넘치고 있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냉랭한 시대에 새싹처럼 피어나는 관심과 공감은 그저 그런 하루를 대단한 ‘그날’로 만들어 줄 만큼 가치 있는 행위다. 때문에 시는 고통을 자각하게 된 ‘나’가 더 많아지길, 그래서 매일이 ‘그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일상 곳곳에 늘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모른 체 할게 아니라 환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함께 어루만지며 치료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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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이미지 발췌
* 네이버 영화 포토 발췌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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