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아(彼我)는 선명하고 메시지는 과한

연극 <개, 돼지>에 대한 아쉬운 리뷰
글 입력 2017.03.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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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무대사진.jpg

 
어떤 인물들이 사건을 헤쳐나가는 얼개를, 세 개의 이야기로 엮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던 신여성 나혜석, 5.18 당시 광주에서 고립됐다 외치던 두 청년, 주전선수로 뛰고 싶어 감독의 성폭행을 참아내는 유명 풋볼팀의 소년들. 시간도 공간도 제각각이다. 제목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듯이, 극농장 초록바나나는 ‘개돼지’로 호명당한 ‘보통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 했겠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얽어 하나의 극으로 삼기엔 세 이야기가 다소 간극이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말이 충분히 예상되는 작품일수록 전개가 섬세해야 관객을 끝까지 집중시킬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성글게 엮인 <개, 돼지>의 구성은 다소 아쉬웠다. 각 이야기의 주제가 나름의 일관성은 있으나 통일된 메시지는 아니었기에, 작품 전체적인 플롯이 굵직했다면 보다 밀도 있게 엮이지 않았을까. 장면 전환이 많은데 세 이야기의 각 장면들이 왜 그 타이밍에 배치됐는지 갸우뚱할 때가 많았다. 외치는 자, 외침을 막는 자, 외침을 두고 고민하는 자-들에 대해, 각기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는 공연 의도가 충분히 살기엔 어려운 구성이었다고 본다. 
일찍이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 더 기대감이 컸던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초연이 올라간 시점과, 대통령도 탄핵한 ‘시민성’이 선명해진 지금, 시기적으로나 내용의 온도로나 공연과 맞닿는 결이 다름을 감지하긴 어렵지 않다. “깨어있자”는 호소가 강하다 못해 과하다. 메시지 전달에 직접적이고 강한 어조가 담기면 수신자는 때로 부담,스럽다. 

단을 구분한 무대 구성으로 장면장면마다 in-out이 있고, 대체로 자연스럽게 진행이 됐다. 배우들의 명확한 캐릭터와 과장된(!) 제스처들은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충분하다 못해 약간 넘쳤다. (배우가 힘든 공연은 관객도, 힘들다. 캐릭터가 힘든 것과 배우가 힘든 건 다르다.)

나혜석이 ‘선언’했던 문체 혹은 말투 그대로를 살려내는 극적 분위기 조성은 매우 좋았다. 촌스럽지 않은 신파극이랄까,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위트 있게 보여준 장면들에선 무릎을 쳤다. 가령 혜석이 오랜 벗과 만나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장면에서는 “까르륵 까르륵”이라고 대사처럼 외치며 둘이 폴짝폴짝 뛰고, 놀라서 충격받는 장면에서 과장된 리액션과 함께 털푸덕 주저앉는 것도 일상적으론 이상해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장면에선 참 잘 어울렸다. 

미식축구팀 이야기의 첫 성폭행 장면의 피해자 역할을 여배우가 분했다. 잠시 갸우뚱했다가, 처음엔 동성애적 장면의 순탄한 연결을 위해 굳이 남배우를 두고도 여배우가 했나 싶었는데, 이야기가 진전되는 걸 보고서야 ‘소년’이기 때문에 그랬구나 싶었다. (보통 소년 캐릭터는 실제로 소년을 섭외하지 않는 이상 체구와 목소리 등의 이유로 여배우들이 맡곤 한다) 

광주 이야기는 공연을 보기 전에는 ‘국풍81’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긴 줄 알고 5.18에 대해 조금 다르게 접근하는 플롯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크게 예상을 벗어나진 않는 전개였다. 빨갱이라 오해받고 탄압받던 광주, 억울함과 분노. 거대 권력과의 대립, 무력감. 

공연의 길이도 짧지 않으니 끝까지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단단한 배우들의 몸과, 열심히 연습하고 그림을 구성했을 배우와 연출의 노고가 보였다. 하여 더 안타까웠다. 
세 공연 모두 ‘외치거나/ 외침에 대해 갈등하는 자’를 한편에 세웠다면 반대편엔 권력구조로 대두되는 ‘외침을 막는 자’들이 있었다. 남성우월주의적 권력, 정치권력, 언론권력, 위계권력 등 거시에서 미시까지 촘촘했고, 여성이어서 청년이어서 학생이어서 약자가 되고 소외되는 장면을 목도하기에 충분했다. 힘은 살짝 빼고, ‘가해’와 ‘피해’의 입장에 밸런스를 좀 더 조절한다면 훨씬 탁월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돼지] 상세페이지.jpg
 

[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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