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대 현혹되지 마라 : 텍스트의 배반① [문학]

글 입력 2017.03.2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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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1.jpg
(출처: 구글 이미지) 


법 앞에 문지기가 한 명 서 있다.
시골에서 온 한 남자가 문지기에게 법 안으로 들어가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시골 남자는 심사숙고 한 뒤 나중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묻는다.
“가능합니다.” 문지기는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Franz Kafka, 『Vor dem Gesetz』


위 텍스트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법 앞에서』의 도입부입니다.

이 소설의 첫인상이 어떤가요?

“법”이 어떤 것이길래 “법 앞에” 서 있을 수 있는지, 문지기는 왜, 무엇을 지키고자 그곳에 있는 지, 시골 남자는 왜 법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지금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왜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어질 내용은 무엇일까요? 잠시 생각해 봅시다.

이제 내용을 조금 더 볼까요?





 법으로 들어가는 문이 언제나처럼 열려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비켜서 있어서, 남자는 문을 통해 그 안을 보기 위해 몸을 숙인다. 문지기는 그것을 알아채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것이 당신을 그렇게 유혹한다면 내가 금지해도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시오. 그러나 명심하시오. 나는 강하고, 제일 말단의 문지기에 불과하오. 하지만 방마다 문지기들이 서 있는데 점점 더 힘이 센 자들이오. 세 번째 문지기를 보는 것 만으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소.” 

 시골 남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예상도 하지 못했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피외투를 입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 그의 큰 매부리코나 길고 가늘고 검은 타타르인의 수염을 더 자세히 뜯어봤을 때, 그는 차라리 그가 입장 허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릴 것을 결심한다.





어떤가요?

위에서 예시로 들었던 질문들을 가지고 계셨다면,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으셨겠죠? 아마 생각이 더 복잡해졌을지도 모릅니다. 문이 열려있음에도 문지기의 태도는 왜 이렇게 단호한가?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다면서, 왜 마치 들어갈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자신보다 힘이 센 문지기들을 언급하는 것인가?

내용을 더 보면 궁금증이 해결될까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단편 소설은, 죽을 때까지 법 앞에 머무르던 시골 남자가 마침내 임종하기 직전 던진 외마디 질문에 문지기가 대답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즉 소설이 끝날 때까지 남자는 법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죠. 법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서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니, 허무하지 않나요? 

사실 이 책은 지난 학기 수업 시간에 처음 접했는데, 허무하다는 감정은 제가 처음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느낌입니다. 수많은 궁금증을 만들어 놓고 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것 없이, 아리송한 질문에 아리송한 대답으로 끝나버렸으니까요. 이 한 장 반짜리 텍스트를 읽고 나서 “법”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해 조를 나눠 토론을 했고, 삶의 의미인가, 말 그대로의 법인가, 그럼 무엇에 대한 법인가 등 다양한 주제가 나왔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무엇이 법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하게 만드는가?”

 이 질문이 바로, <법 앞에서>라는 단편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이자, 기사의 제목이 “텍스트의 배반”인 이유입니다. 평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이 기대한 내용을 얻어가며 공감을 하게 되죠. 그 공감에서 비롯된 감동은 그 작품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죠. 대체적으로 “불친절하다”라는 평을 받는, 아방가르드한 느낌의 작품들 말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법 앞에서>는 그들의 조상 격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골 남자”를 중심으로 서술하지만, 작품 안에서 그 법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으면서, 시골 남자가 법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도 결말이 날 때까지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죠. 이런 구성으로 인해 학계에는 설득력은 있지만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법 앞에서>에 대한 해석들이 무수히 존재합니다.


법2.png


 우리는 평소에 “무엇을” 읽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어떻게” 읽는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죠. 독서 과정에서, 독자와 텍스트는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것일까요? 본래 독서 행위의 의미란 텍스트 그 자체보다 고정된 텍스트에 접근하는 독자의 해석이라는 행위에 보다 치우쳐 있었습니다. <법 앞에서>는 독자가 “읽으려는 대로” “읽히지” 않고, 내용에 대한 독자의 기대를 배반함으로써 이러한 통념에 맞서는 작품입니다. 뒤샹의 <샘>이 기존 미술의 관습을 타파하며 새로운 깨우침을 남겼듯, 이 작품도 작품과 수용자의 관계를 재정립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 앞에서>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했으니, 이제 다음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텍스트의 배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음으로 넘기기 전에, 첨부한 작품의 어느 부분에서 의문이 생기는지, 몰입도가 낮아지는지 혹은 높아지는지 생각하면서 이어지는 부분을 보고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지기는 그에게 의자를 내어 주며 문 옆에 앉게 한다. 거기서 그는 수많은 날과 해를 보낸다. 그는 들어가기 위한 수많은 시도와 간청으로 문지기를 지치게 한다. 문지기는 간혹 그 시골 사람에게 작은 심문을 하고, 고향에 대한 것과 다른 여러 가지를 묻지만, 그 질문들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관심 없는 것들이며, 마지막에 결론은 항상 다시 그를 아직 들여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행을 위해 많은 것을 갖추고 왔는데 상당히 값비싼 물건도 있었지만,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써버린다. 문지기는 모든 것을 다 취하면서 말한다. “내가 이것을 받는 것은 단지 당신이 뭔가 소홀히 했다는 자책감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여러 해 동안 남자는 문지기를 거의 끊임없이 관찰한다. 그는 다른 문지기들을 잊어버리고, 그 첫 번째 문지기가 그가 법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 유일한 장애물로 생각된다. 그는 이 불행한 우연을 저주하며 처음 몇 년 동안은 분별없이 크게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 늙어서는 속으로 툴툴거린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유치해졌고, 문지기에 대한 수 년에 걸친 연구에서 그의 모피 옷의 깃에 있는 벼룩들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자신을 도와주고 문지기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간청한다. 마침내 그의 시력이 나빠지고, 그는 그의 주변이 정말로 어두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눈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어둠 속에서 법의 문으로부터 꺼지지 않고 번져 나오는 한 가닥의 휘광을 느끼고 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한다. 죽기 전에 머릿속에서 그 동안의 모든 경험들이 여태껏 그가 문지기에게 하지 않았던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진다. 그는 굳어가는 몸을 더 일으켜 세울 수 없어 문지기에게 신호한다. 큰 키 차이가 그 남자에게 불리하게 변했기 때문에 문지기는 말할 때 몸을 숙여야 한다. “도대체 당신은 지금 뭘 더 알고 싶소?” 문지기가 말한다. “당신은 만족을 모르는군.” “모든 사람들은 법을 얻고자 애를 씁니다.” 시골 남자가 말한다. “수 년 동안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입장 허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요?” 문지기는 이 남자가 임종 직전에 다가갔음을 깨닫고, 멎어가는 그의 귀에 들리게 하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지정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선 아무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소. 이제 나는 가서 문을 닫겠소.”


(번역: 임예림)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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