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 문라이트 >, 푸른 밤바다 속 웅크린 퍼런 응어리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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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는데 덤덤했다. 막 좋지도 않았다. 왜지, 왜 감흥이 없지. 참 좋은 영화랬는데. 이번엔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탔다는데, 왜 나는 느껴지는 것이 없는지 의아했다. 물론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다니까 꼭 많은 이가 좋다고 한 작품이 나에게도 해당되리라는 법은 없다. 이유가 있었다. 잔잔하니 좋은 영화였다고 말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니 나는 한동안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영화가 끝나고 내뱉은 말 한 마디와 같아서다. '이렇게 고달픈 인생도 있네.' 이 문단을 다 쓸 때쯤 되니까 확실해졌다. 영화를 떠올리기가 싫어서 그렇다.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게 묵직하다. 아프다, 내 일도 아닌데.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더 아프다. 아파서 뭔가를 느끼고 싶지 않아서 나는 도망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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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이자, 샤이론이자, 블랙인 우리의 주인공은 삶의 고난의 축약체이다. 그의 존재는 소수자의 대변인이자 장본인이다. 그는 왕따였고, 자기 표현도 잘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역사적으로 고통받은 흑인이며, 동성애자며, 약물중독자의 아들이자 마약상이다. 완벽하다. 신랄하게 얘기하자면 이 영화 속 그가 거의 모든 면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소수자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더 성공적인 걸지도 모른다. 그가 아플수록 영화는 빛이 난다. 그 빛은 아주 화르르 불타듯 태양처럼 빛나는 게 아니다. 그는 어두운 밤 바다 같은 사람이다.  끝도 깊이도 알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쌓인 그의 마음이 은근하게 달빛을 빛나게 한다. 영화가 성공적인 건 사람들이 그만큼 알게 모르게 슬픔에 젖어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들 어딘가 한 구석 아프고 힘든 기억이 갇혀있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거다. 아무 말 하지 않는데 조곤조곤 나는 이래, 하고 말보다 꺼내 보여주는 어떤 인생이 있어서 우리 마음 빗장문이 터진거다. 리틀, 샤이론,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밤 바다는 사연많은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불러들였다. 그가 빚어낸 달빛은 마음이 헛헛하고 쓸쓸할 때 더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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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샤이론, 그리고 블랙. 사실 나는 그의 세 이름 중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다. 다 반어법 같다. 하지만 셋 중에서 고르라면 리틀은 무조건 탈락이다. 모두가 그를 리틀이라 부른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그를 막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애당초 그는 왜 리틀이라 불렸던 걸까? 리틀 뒤에 수식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작아서 그렇다기엔 축구 시합할 때보면 그만큼 작은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근데도 다들 그를 리틀이라고 부르는 건 그가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말이 별로 없다. 갑자기 열린 마약창고에서 후안을 만났을 때도 그의 눈은 흔들릴 지언정 그의 입은 아주 단단히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는 말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무척이나 기다린 대답을 아주 간단하게. 답답할정도로 말이 없던 그는 맞은편 사람이 당황해 머쓱할정도로 말을 하게 한다. 지켜볼 만큼 지켜봤을 때 그는 후안을 먼저 찾아왔다. 그에게 수영도 배우고 가까워질 때쯤 그는 그의 엄마가 마약을 사는 사람이 후안이란 걸 알아버렸다. 화를 내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그걸 단 두 세 마디로 묻는 그 순간. 후안이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병도 주고 약도 준 후안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땐 직접 하라는 조언만 하나 남겨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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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부르기는 싫지만)이라 불리는 그는 살아있는 침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숨쉬고 눈이 빛나지만 그의 입이 그렇다. 궁금해지는 건 왜 다들 그렇게 그를 괴롭히냐는 거다. 원래 반응이 있어야 괴롭히는 맛이 있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 재미가 없고 시시해질텐데 왜 끊임없이 괴롭힐까.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끊임없는 괴롭힘에도 그가 그대로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강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는 가만히 있는다. 때리면 맞고, 욕하고 놀리면 듣는다. 그런데도 먼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에게 사람들은 고운 말, 고운 손길 한번 주지 않는다. 나같으면 열불이 났을텐데, 한 대 맞으면 두 세배는 갚아주고 싶었을텐데 실수로라도 손이 나간 적이 없는게 신기하다.그나마 손이 나간 건 그의 단짝 친구 케빈이 덤벼보라고 말을 했을 때였고, 그마저도 다치진 않는 힘자랑이었다. 케빈이 나같은 질문을 한다. 왜 당하기만 하냐고, 강해보이지 않게. 나중엔 거봐, 너도 강하다고 한다. 그 때 알았다. 우리의 험난한 주인공이 케빈이 좋아진 건 그 순간이라고. 케빈만이 그가 강한 걸 안다. 모두가 그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가장 강한 사람이란 걸. 폭력에 폭력으로 대하지 않는, 아주 넓고 강한 사람이란 걸. 나에게 리틀은 반어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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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이론(Chiron)이란 이름은 마음이 아파서 부르기가 싫다. 그냥 이름이 독특해서 쳐보니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가장 멋진 스승 켄타로우스란다. (물론 발음은 다르다.) 원래 반인반수인 켄타로우스들은 성격이 난폭한데, 이 분은 온순하고 정의로운 분이었다고. 갑자기 헤라클라스와 켄타로우스 일족이 포도주때문에 싸우게 되었는데 공격에 가담하지도 않은 분이 화살에 맞았다고 한다. 샤이론과 비슷하고도 다르다. 그도 먼저 공격한 적도 없는데 몰매를 맞았다. 다른 점은 그는 그의 인생 최초로 분노했는데 그 결과 벌을 받았다는 점이다. 신화처럼 그냥 맞기만 했어야 했을까. 그가 분노한 건 그가 믿고 의지했던 바로 케빈에게 맞았기 때문이다. 케빈에 대한 배신감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화내지 않고 참으면서 자기만의 기준으로 살았던 것의 대가가 케빈과의 대면이라는 좌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원칙이 산산조각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화내지 않는게 더 이상 강한 게 맞는건지 모르겠으니까. 선생님한테 얘기해봤자 그런 것까지는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한번 남들이 말하는 강함을 표현해봤더니 결과는 그를 기다리는 경찰차와 소년원이더라. 어차피 그에겐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이다. 남들처럼 때리고 욕하는 걸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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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이 감사해야 할 건 샤이론이 그 와중에도 계속 묵묵히 맞았다는 점이다.  그가 거기서 분노하기 시작하면 케빈이 다치니까. 사실 나는 케빈이 이해가지 않았다. 예전에 잘 하던 일인 건 관심도 없지만 상대를 보고도 때린다니, 한다는 소리가 그냥 덜 맞게 일어나지 말란다. 퍽이나 그러고 싶겠다. 그럴거면 애초에 때리지를 말아야지. 완전한 자기 의지면서 마치 누가 억지로 주먹을 날린 것처럼 말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샤이론이 집에 갈까 말까 철창 사이로 눈치만 보는데 그가 괴롭거나 말거나 여자랑 뭐했다는 말만 자랑삼아 하고. 약에 취한 어머니의 사랑과 증오, 분노를 받으면서 불안에 떠는 그를 못 보았을리가 없는데. 샤이론이 어떤 친구인지 알면서. 그 날 밤 바다에서의 샤이론을 기억했다면 더더욱 그럴 순 없는데. 너무 울어서 눈물로 변해버릴 것 같다는 사람한텐 할 짓이 아닌데. 못났다. 못됐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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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블랙. 그는 겉으로는 이제 블랙으로 보인다. 후안과 비슷한 피어싱도 하고, 까만 비니를 쓰고, 이에는 번쩍번쩍한 효과를 주는 금니도 꼈다. 잘나가는 마약상이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달라져서 근데 잘 어울리진 않는다. 그를 확인하게 해주는 건 아니나 다를까 케빈이다. 케빈은 10년만에 문득 노래 듣다 네 생각이 났다고 전화할 수 있는 그런 특이한 친구다. 미안하단 말도 쉽게 안떨어질 것 같은데 그마저도 쉽다. 10년만에 갑자기 미안하다고 한번 보자고 하던 전화 받아본 적이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전화한 사람도 떨렸겠지만 전화 받은 사람은 마음이 어수선해서, 갑자기 그 때 기억이 나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왜 10년만에 대체 뭐가 궁금한걸까. 이제 와서 왜. 막상 만나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생각보다 발걸음이 무거운데 그래서 그의 걸음걸이가 눈에 걸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별 일 아닌 척 그래 그냥 아무랑도 밥 한 끼는 먹을 수 있잖아. 아무 기대도, 아무 실망도 하지 말자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랬다. 마음을 비우느라,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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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상 만나면 괜찮긴 한데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케빈은 가볍게 자신의 아내와 딸을 자랑한다. 블랙이 어떤 마음으로 이 길까지 내려왔을지는 나중 생각이다. 케빈이 블랙이 마약상인 걸 보고 어이없어 할 이유는 없다. 어머니가 마약에 빠졌으니 이해가 안갈 법은 하지만 그를 소년원에 집어 넣게 한 건 적어도 절반은 그의 탓이 아닌가. 적어도 그가 별명으로 애정을 담아 부르던 블랙은 겉은 강해보이려고 할지언정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그 마약을 팔아서 번 돈으로 어머니를 시설에 보내 맑은 정신으로 돌려놓으려는 사람이다. 케빈도 똑같고, 샤이론도 똑같다. 성격이 반 팔자라더니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그들은 똑같다.  늘 그랬듯이. 변한 게 있다면 더 솔직한 건 샤이론이란 점이다. 계속 빙글빙글 돌던 얘기를 멈춘 것도 블랙이다. 왜 만나자고 했는지. 나는 그 수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좋다고. 적어도 어떤 사이든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그 때처럼, 파도소리가 들리는 어느 바닷가를 옆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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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영화는 케빈을 통해 발견한 리틀, 샤이론, 블랙의 조각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샤이론의 모든 솔직한 순간은 어두운 밤바다와 함께 했다. 그가 강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고 여지 없이 다른 사람들의 강하다는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금 마약상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걸 매일 잠 못이루면서 알고 있을 샤이론. 그런 그가 걱정되지 않는 건 그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결정을 내릴 때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강함은 아픔이자 슬픔이며, 눈물이며 침묵이다.강하다는 게 사실은 한결같이 상처입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란 게 느껴져서 그것만은 마음이 아팠다. 그의 별명을 내가 지을 수 있다면, 그는 어슴푸레하게 파아란 밤바다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검게 덧씌우려고 해도, 어두운 푸른색이 검은색이 될 수는 없겠지. 사실은 그가 리틀이든, 샤이론이든, 블랙이든 어떻게 불리든 그는 그저 바다처럼 한결 같이 그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의 몸에 알알이 새겨있는 수많은 응어리가 그렇듯, 그의 변하지 않는 마음이 그렇듯. 그의 깊은 품에 자리잡은 것은 그래서 검은 덩어리가 아니라 퍼런 응어리다. 아무리 검은 것도 파란 빛을 담아두고야 마는 그이기에. 그에겐 덩그러니 웅크리고 있는 단단하고 퍼런 응어리가 있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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