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움으로써 꽉 찬 비극을 만들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예술]

비움의 미학
글 입력 2017.02.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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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마다 그만의 스타일이란 것이 존재한다. 고선웅 연출 또한 그만의 스타일이 있는 연출가이다.
예를 들면, 대사가 엄청 빠르고, 코믹적 요소를 적절하게 넣어 사용하는 것, 남성적이고 힘 있으면서, 비움의 미학보단 채움의 미학에 가까운 극 스타일을 만드는 편이다. 그의 이러한 작품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도 고선웅 스타일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작품 중에서 몇 편은 스타일을 떠나 작품 자체가 좋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대표작품 중 하나가 바로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이다. 초연 당시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을 초연 때 보지 못하고, 이번 재연 때 보게 되었다. 주변에서 꼭 봐야하는 연극이라고 극찬하기에 보았는데, 초반에는 별 매력을 못 느꼈으나 극이 진행되어 갈수록 왜 수작인지 느낄 수 있는 연극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뭐 별거 없는데 감동을 주는 연극’ 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 그대로 뭐가 크게 없다.
즉 무대를 꽉 채우는 세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연출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깔끔하고 심플한 정도의 연출을 보여줬다. 그런데 사실 그 깔끔하고 심플한 연출이 가장 어려운 것인데, 고선웅 연출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그것을 입증하였다고 본다. 거기에 탄탄한 대본이 한 몫을 했고, 그리고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 되어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어울려 맛깔스러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흔히 연극을 '배우 예술' 이라고 한다. 연출적인 면모보다도 연기가 뛰어나면 얼마든지 잘 보일 수 있는 것이 연극이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 되려면 결국 연기, 연출, 대본 이 딱 세 가지가 균형을 잘 이루어져야 수작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조씨 고아>는 그 균형감을 잘 갖춘 작품이었다. 그리고 대본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작품을 보면서 또 한 번 깨달았다.


이 작품은 13세기 후반, 중국의 기군상이 쓴 작품을 각색했다. 간단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조순이란 대감을 도완고가 음모에 몰아넣어 조씨 가문 사람을 모조리 죽이나 그 집안의 자손인 조씨 고아가 정영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후에 복수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극이 기본적으로 복수극이고, 비극이기 때문에 무겁게 그려질 수 있었으나 고선웅 연출답게 비극 속에서도 희극적인 요소를 적재적소하게 넣어 극적 이완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비극 속에서의 희극적 이완은 더 더욱 비극을 짙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데 역시나 그러한 면모도 두드러졌다. 그 동안 고선웅 연출가의 작품이 채움의 미학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의 비움의 미학에 가까웠다.
많은 것을 무대에 넣지도 않았고, 연출적으로도 과하게 집어넣지 않았다. 대신 담백하게 그리고, 단순화하였다. 중요한 것은 비움으로써 극은 오히려 더 꽉 차게 되었고, 비극이 무겁지 않으면서도 무겁게 다가오게 만든 효과가 있었다. 비극을 단순히 비극적으로만 그린 것이 아니라, 한 차원 더 높게 비극 안에 희비극을 넣어서 극의 깊이를 넓혔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큰 찡함을 준 대사 한 마디를 적어본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리소리에 맞추어 놀다보니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 갑자기 고개를 돌려보면 어느 새 늙었네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남궁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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