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퇴폐미술전에서 발견한 '동시대'의 의미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1.28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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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오피니언은 2016년 12월 8일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에서 열린 <올해의 큐레이터 2016> 안소현 큐레이터의 강연과 책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최도빈 지음, 아모르문디)을 바탕으로 쓰여 졌습니다. (이미지 출처_ Google 이미지)


  1937년 7월 19일, 나치가 정권을 잡은 독일에는 이상한 전시회가 열렸다. <퇴폐 예술 (Entartete Kunst)>전, 이는 전시장을 찾아오는 관객들에게 ‘반독일 세력’에 대한 증오를 심어주고 나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검열의 사례로 꼽히는 이 전시는 당시 600명이 넘는 작가의 작품들을 독일 전체에 흩어져있던 미술관들에게서 압수하여 소각하고, 해외에 헐값으로 반출하기도 하였으며 창고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았다. 전시에서 '퇴폐'로 규정된 작품들은 나치를 대놓고 비판하는 작품도 물론 있었지만,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린 작업들, 기괴한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림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흐, 피카소, 칸딘스키의 작품들도 있었다. 20세기 가장 인기가 많았던 아방가르드 작품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전시는 뮌헨 및 베를린을 시발로 하여 이후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였으며 20세기 전반부에 최대관객을 동원한 전시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독일인들이 <퇴폐예술>전을 보게끔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든 나치정권의 영향도 있었지만 전시의 파격성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한편 <퇴폐예술>전과 비슷한 시기에 근처 전시장에서는 <위대한 독일예술>전이 열렸다. 굉장히 고전적인 조각과 그림들과 나치가 내세운 미적인 기준들이 전시장 안을 가득 채웠고 인기는 <퇴폐예술>전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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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2가지가 있다. 바로 현재의 전시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참신한 작품 디스플레이와, 작품에 대해 쓰인 문장들이 매우 정교하다는 것이다.

  나치정권 당시에는 작품에 적당한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그 작가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여러 규정들이 생겨났었다. 하지만 <퇴폐예술>전은 작품 위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걸고, 벽에 해당 작품의 욕을 써놓는 등 굉장히 파격적인 (기존 화이트큐브의 정식 규범과 정 반대의) 디스플레이를 보여준다. 현재 나치의 <퇴폐예술>전 사진을 보는 우리는 과거의 전시라기엔 너무나 현대적인 모습이기에 놀라움을 느낀다.

  작품과 함께 쓰여 있는 텍스트의 내용 또한 놀랍다. 작품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거칠기만 하고 막무가내로 욕을 퍼붓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나치 히틀러는 자신이 '퇴폐예술'이라고 규정지은 작품들을 사람들이 어떻게든 싫어하게 만들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벽에 쓰인 텍스트들은 작품들을 매우 꼼꼼히 분석해 비난하고 있으며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왜 버려져야 하는지에 대해 설득하는 과정들이 매우 치밀하게 이루어져있다.

  시간이 지난 지금 퇴폐미술전은 어떻게 역사에 기록이 되고 있는가? 나치가 예술에 대하여 얼마나 편협하고 무지한 생각을 가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동안 문화의 명예와 발전을 이룩한 독일의 예술을 한순간에 퇴보시킨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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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퇴폐예술>전 전시장 내부 전경
벽에 쓰인 낙서들과 파격적인 전시 디스플레이가 돋보인다


  2014년 3월,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서는 <퇴폐 예술: 나치 독일에서의 현대 예술에 대한 습격 (Degenerate Art: The Attack on Modern Art in Nazi Germany)>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렸다. 아픈 역사 속에 있던 작품들을 현대의 전시장으로 데려와 퇴폐예술로 규정된 작품과 위대한 독일예술로 분류된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또한 1937년 독일 <퇴폐예술>전에 전시되었지만 후에 나치가 불태워서 파괴해 버린 작품들은 빈 액자에 작가와 작품명만 기록한 채로 걸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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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그림에 걸린 작품은 아돌프 치글러의 <4원소: 불, 흙과 물, 공기>(1937, 왼쪽)와 막스 베크만의 <출발>(1932-35, 오른쪽)이다. 아돌프 치글러는 ‘제3제국’의 공식 화가로 불리며 <위대한 독일예술>전에 참여한 작가인 반면 ‘퇴폐 예술가’로 분류된 막스 베크만의 작품들은 막 다뤄졌고 심지어 불태워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16년 6월 서울 아트스페이스 풀(이하 대안공간 풀)에서는 <퇴폐미술전>이라는 제목을 가진 전시가 열렸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검열, 규정 등을 당하기만 하는 예술에서 벗어나, 한 전시가 먼저 ‘사회에는 이런 문제가 있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된 전시이다. 9명 작가의 작품을 나치의 <퇴폐예술>전과 비슷하게 디스플레이를 한 뒤 작품 주변에 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을 적었다. 피상적으로는 특정 작품과 그 작품 안에 담긴 사상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을 역설하면 작품을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을 비난하는 전시 즉,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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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를 기획할 때 기획자는 생각한다. “지금 이곳에서 무슨 전시를 해야 하는가? 이게 왜 필요한 전시인가?”

  Contemporary. 동시대의.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의미이지만 가장 어려우면서도 모호한 개념이다. 과거와 현재의 예술 사이에 경계를 놓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동시대 예술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 현재의 예술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한 단어로 정의내릴 수 없다.

  ‘동시대’라는 말에는 우리가 지나간 것들을 어떻게 규정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가 있다. 이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Contemporary art’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 보고 내일 버릴 작품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날 이 작품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이 작가의 영향을 받을 누군가가 나올 수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contemporary란 “미래엔 아마 이것이 중요해질 것이다.”라는 미래완료시제인 것이고 ‘contemporary exhibition’이란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미술과 어떻게 다른지 또 앞으로 이 전시가 어떤 의미를 남기고 작가들이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전시이다. 예를 들어, Claire Bishop은  『Radical Museology』에서 과거의 전시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현재의 작품들과 연결시켜서 뒤섞인 시간을 보여주는 전시들이 가장 동시대적인 전시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예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누군가가 예술을 억압했다고 하면 뒤늦게 반발하고는 있지만, 예술이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했는가? 또 예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

  전시는 하나의 미디어이다. 유일하게 수용자가 몸을 움직이면서 받아들이는 매체이기에 어떤 공간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생각하게 하고 그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 예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사회 억압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은 전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동시대를 나타내는 전시 (Contemporary Exhibition)’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시는 언제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간을 불러오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예측하면서 시간을 인식하는 ‘반시대적’인 의미를 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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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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