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는 이런 벽이 없는 방을 꿈꾸지 않으리라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1.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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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자 한다. ‘우리’라는 말에 담긴 모순에 대해서 말이다.
 
 
  지난 2016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은교의 박범신 작가와 일민미술관 큐레이터였던 함영준의 좋지 못한 행실들이 공개되면서 SNS에는 ‘#미술계_내_성폭행’ 해시태그를 단 많은 피해자들의 고백이 줄줄이 이어졌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은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로 자리 잡았으며, 최근 행정자치부에서 공개한 여성 가임기 지도는 이러한 논란에 불을 질렀다. 이에 더해 올바른 페미니즘이 아닌, 잘못된 페미니즘 인식을 가지고 있는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오히려 남성 혐오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하였다. 민주주의를 외치기 위해 모인 광화문 광장에서는 시위가 끝난 뒤 누군가가 자신의 신체부위를 만졌다는 고발이 속출하기도 하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고, 남성과 여성이 분리되었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없었다.
 
  여태 사회는 ‘우리’라는 말로 여러 집단 사이에 있는 벽을 허물었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 된 모습을 보이는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겉모습만 그럴싸했을 뿐, 그동안 우리 사회의 내면에 진정한 의미의 우리’는 없었다.
 


누가 이런 벽이 없는 방을 꿈꾸고자 했던가
벽이 있어 절망을 느끼던 방에서보다
더한 절망과 그리움으로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벽을 쌓고 싶다
그리고 헛된 약속이라도 벽에 대고 막 하고 싶다
벽에 대고 막 웃고 싶다
벽 가까이 귀를 기울이고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염탐하고 싶다
웃어주고 싶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도 뒤척이지 않으며
천천히 꿈을 꾸고 싶다
 
채상근, 「다시는 이런 벽이 없는 방을 꿈꾸지 않으리라」 中
 
 

  2016년 12월 16일부터 23일까지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린 ⟪“벽이 없는 방이 있다”⟫ 전시는 한 해 동안 일어난 사건들이 보여준 밑바닥의 모습을 정확하게 바라본다. 채상근의 시 「다시는 이런 벽이 없는 방을 꿈꾸지 않으리라」에서 말하듯, 사회가 우리에게 지금까지 보여준 공간은 벽이 없는 방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벽이 있어 가로막혀있던 기억보다는, 오히려 벽이 있어 “내밀하면서 평온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기대하던 연대라는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상실감”에 절망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절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파국 속에서도 몸을 쓰고, 허우적거리고, 무언가 운을 떼고자 몸부림치는 오늘의 분위기를 그리고자” 전시는 기획되었다.
 
(참여작가: 박명미, 전수오, 정덕현/ 기획: 서다솜, 이경아, 전그륜/ 디자인: 신해나)
 
 
1.jpg
 전수오 <기억에 관하여> 설탕_가변크기_2012
 
2.jpg
 박명미 <금초 드로잉> 장지에 금색종이, 금색실, 금분_가변설치_2015
 
3.jpg
 전수오 <바늘을 삼킨 풍선> 풍선, 바늘, 실_가변설치_2014
 
4.jpg
 정덕현 <밝은 그림> 종이에 연필, 먹, 호분, 접시물감, 겔 미디엄. 130X130cm. 2016
 
 
  문화예술은 현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통해 ‘우리’, ‘연대’ 등의 단어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2017년이 된 지금, 기존의 가치관과 새로운 사고가 충돌하는 과도기임이 분명하다. 과도기 속에서 우리는 절대 허물어지지 않는 벽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연대를 찾아 나아갈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예술을 대하는 우리는 불편해야 한다. 굳이 예술이 없어도, 세상에는 즐거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재미와 편리함에 중독된 세상이다. 예술에서마저 그것만 찾으려고 하지는 말자. 예술을 대하는 순간만이라도,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해 보자. 일상에서는 잊었던 것을 찾아보자. 삶과 실천 사이에서, 개인의 윤리와 세상의 정의 문제를 마주쳐 보고, 자신의 인식과 세계 사이의 간극에 막막해야 한다. 예술이 우리를 깨우치고 아프게 할 때에, 그것은 진짜 예술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을 견디어 보자. 그렇다면 그것은 비로소 내 속에서 진정한 예술이 된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정직한 인문 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 낼수록, 개인은 나아가고 사회는 성장한다.”
 
박종호,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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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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