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의 멈추어진 시간은 다시 제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
음악을 통해 소통한 두 남자의 이야기.
글 입력 2016.12.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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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반기에는 멈추어진 시간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많이 만나게 되었다.본의 아니게 이번 글도 멈추어진 시간 속에 속해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사실 이 작품의 초점은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소통을 하고, 이해해 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소통이 무엇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인 소통의 매개체는 음악이다. 그런데 그 기저에 놓여있는 것은 유대인이라는 등장인물들의 민족적 아픔에 있다. 스티븐과 마슈칸 교수는 유대인이다. 특히나 마슈칸 교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그 끔찍한 나치의 만행을 당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스티븐은 유대인의 후손이기에 그 만행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분노한다.극의 초반부에는 너무나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이 그려졌다. 천재적이고 기술적으로 타고난 스티븐과 어딘가 과장되어 보이고, 정신이 산만한 마슈칸 교수의 만남은 흡사 차가움과 뜨거움의 만남이었다. 이런 두 사람에게 일차적으로는 음악이 소통의 장이었다. 연주를 하는데 있어 감정은 없고, 기술만 돋보이는 스티븐에게 감정을 일깨워준 것은 바로 마슈칸 교수였다.마슈칸 교수 덕에 스티븐은 자신에게 없는 줄만 알았던 감정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과 기술이 결합되어 좋은 음악이 만들어진다. 마슈칸의 수업으로 스티븐은 변화해 가지만 마슈칸 교수는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추어있다. 교수가 꼭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보여주는 불안한 심리 때문에 그 심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 인물의 불안감은 후반부에 가서 밝혀지게 된다.작품 속 마슈칸 교수의 집에는 고장 난 시계가 있다. 인물들의 대사에서 시계에 대해 언급하는데, 고장 난 시계는 흔히 상징적으로 사용되는데 역시나 이 시계는 마슈칸의 멈춘 시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장 난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결국 마슈칸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마슈칸도 1940~1945년 그 시간 속에 멈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시간은 그 시간대에 멈추어져 있는 것이다. 거의 끝부분에 가서 밝혀지는 마슈칸 교수의 사연은 그 멈추어졌던 시간을 다시금 흘러갈 수 있게 만든다. 사실 스티븐에게 말한다고 해서 그의 시간이 다시 제대로 흘러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대로 멈춰져있는 것이 맞다. 그 고통의 기억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어찌 시간이 제대로 흘러갈 수 있겠는가.그러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연을 고백함으로써 멈추어있던 시간 안에 있던 자신이 한 번쯤은 깨어날 수는 있다. 그 아픔을 같이 공유해주는 사람인 스티븐이 있기에 말이다.마슈칸의 가슴 아픈 사연은 <올드위키드송>이란 음악을 통해 전달된다. 그 음악을 직접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마슈칸은 굳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 노래 하나로 그가 겪었던 일이 표현되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을 때 까지 멈춰진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하는 마슈칸의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가슴 아픔을 받았기에.스티븐과 마슈칸은 음악을 통해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두 사람의 공통된 민족성이 있었다. 두 사람의 소통하는 모습을 통해 멈추어있던 누군가의 시간이 제대로 흘러가긴 힘들어도 어느 정도 위로 받을 수는 있다고 본다. 멈추어진 시간이 다시 제대로 흘러가긴 힘들어도 그 멈추어진 시간 속 안에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면, 다시 시간이 흘러갈 수 있는 하나의 디딤돌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남궁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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