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흠집 없는 마음에 비추는 영원한 햇살, 그리고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 [시각예술]

겨울, 그 중심에서 찾는 한 조각의 초콜릿 같은 영화와 음악
글 입력 2016.12.11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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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씬(scene)이나 약간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놉시스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가슴 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지기만 하는데...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요?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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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 이 영화는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을 했다. 그리고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사람은 흔한 사랑 이야기나 뻔해져가는 길고 긴 연애의 양상을 통해서 참신한 이야기를 이어간 것,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감각적인 연출이 모두 어우러진 미셸 공드리의 천재성에 감탄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이 영화는 짧은 대사가 두 사람에 의해 여러번 반복되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나 오랜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내용 자체와 어쩐지 콜라주를 연상시키는 예술적인 영상과 연출, 마음 속 한 구석에 응어리처럼 남은 여운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빠지는 매력들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 영화에서 그 무엇보다도 깊은 존재감을 남긴 요소는 바로 OST라고 생각한다.

  이터널 선샤인의 OST가 다른 영화들의 OST와 다른 점은 노래 자체가 이미 만들어진, 리메이크된 곡인데도 불구하고 영화 내용에 들어맞게 영화 속 인물에게, 또는 관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시작한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 속으로, 즉 액자 속으로 들어갈 때와 엔딩 장면에서는 모두 OST로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s가 함께하는데 각 때마다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감정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결별한 후 차 안에서 들을 때의 이 노래는 그의 쓸쓸함과 고독감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듯 하지만 둘이 모든 일들이 지나간 후에도 결국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된 때에는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처럼 씁쓸하지만 달콤하게 다가온다. ‘마음을 바꿔봐요. 주위를 둘러봐요. 마음을 바꿔봐요. 그럼 당신을 놀라게 할거에요. 나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마치 햇살과도 같은’ 라고 이야기하는 가사는 그들에게 늘 지겹고도 힘겨웠던 사랑에 다시금 놀라워하고 희망을 거는 삶이 시작될 거라고,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듯 하다.

  영화 초반에서, 클레멘타인이 기차에서 조엘에게 다가갈 때에는 마치 찰리채플린의 영화에서 익살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와 같은 단순한 박자의 (쿵짝쿵짝하는) 배경음악이 깔린다. 두 사람이 말이 없을 때에는 또 아무 음악이 없다가 클레멘타인이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하면 그 음악이 이어서 나온다. 또한 클레멘타인의 집에서는 인도음악이 BGM으로 조용하게 흘러나오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나타나는 클레멘타인의 인도풍 취향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이터널 선샤인의 OST는 인물(클레멘타인)의 성격이나 사람됨, 취향 등을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내용 자체가 다양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의 OST는 그에 맞는 배경음악을 셀렉한 것 같다. 이 영화는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선율에서 애틋함이 느껴지고 부드러우며 서정적인, 몰랑한 감성을 캐치한 음악이 등장한다. 하지만 기억을 지우는 과정이라던가 조엘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사라지는 장면에서는 이전까지 흘러나오던 부드러운 음악과 대조된 날카로운 음들과 빠른 박자를 통해 긴박함이라던가 긴장,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조엘의 과거장면에서 이별 뒤 슬퍼하는 노래를 뒤로 하고 신비한 노래가 들려온다. 멜로디가 낮은 음부터 높은 음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마치 ‘도미솔도’가 아니라 ‘도레미파솔라시도’같이) 기계음 같은 소리가 들리기도 해서 마치 꿈으로 바로 들어가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화 중반에는 두 개의 멜로디가 함께 연주되어서 그 둘을 모두 따라가게 되는데 그러다보니까 머릿속에서 꿈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또한 사람이 마음 속 깊숙이서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배경음악들이 많다. 다른 영화들은 감정을 좋은 것, 안 좋은 것 (예를 들면 기쁨 혹은 슬픔으로) 등으로만 이분화하고, 단순화해서 나눈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절망, 혼란 등 세심한 감정들을 잘 표현했다. 조엘이 기억을 지우기 전에 설명을 듣는 장면에서 낮은 음과 높은 음 하나씩이 반복되어 마치 지그재그를 그리는 것 같은 멜로디가 들리는데 불안정한 그 음에서 조엘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다른 영화들은 OST가 영화와 어우러지는 것에 그치는 데 비해서 이 영화의 OST는 내용과 어우러지면서도 때로는 영화 속에서 상황과 상황, 장면과 장면을 차단시키는 어떠한 벽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조엘 기억 외부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현실과 그의 기억을 완전히 차단시키는 락음악인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이터널 선샤인 OST 앨범의 타이틀곡인 (영화 내에서도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그 노래)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s을 들으면 건조한 목소리와 징-하고 울리는 듯 한 악기소리로 인해서 청량감이나 촉촉함보다는 푸석푸석한 눈이 날리는 겨울을 떠올리게 된다. 이 노래는 메시지를 가진 가사도 그렇지만 이렇게 노래가 가진 계절감으로 인해 이 영화의 주제곡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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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든 추운 겨울은 찾아온다. 그 중심에 사랑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더 따뜻함을 느끼지는 않을테다. 누군가는 그 사랑으로 인해 마음이 더 추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마음을 바꿔봐요. 그럼 당신을 놀라게 할 거에요’라고 말하는 이 노래처럼 지금껏 가져왔던 어떠한 씁쓸함이 있더라도 그와 함께 있는 달콤함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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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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