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인극 페스티벌, 컬렉티드 스토리즈

글 입력 2016.11.2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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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의 작은 극장 스튜디오 76에서 2인극 페스티벌 참가작 중 하나인 <컬렉티드 스토리즈>를 보았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무대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무 탁자와 그 뒤로 꽂혀있는 책장의 책들, 그리고 벽 한 켠에 위치한 그림 액자와 주황빛 조명. 따뜻한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무대 위에서 두 명의 배우가 연기를 시작하였다. 주인공은 명성 있는 작가(후스)와 그녀의 문하생(리사)이다. 소통이 가능한 최소의 단위 ‘2인극’이지만 그들은 다양한 장면에서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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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연극의 첫 장면은 후스의 아파트이다. 리사의 선생인 후스는 리사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수업을 진행한다. 리사는 명성 있는 작가인 후스를 오래 전부터 존경해왔다. 리사는 후스의 집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을 한다. 후스는 리사의 글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녀의 장래성을 인정해준다. 이 장면에서 리사는 계속해서 후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데 반해 후스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모습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결국 리사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후스의 조교가 되어 그녀와 가까워질 기회를 얻게 된다.

긴장과 이완,

리사가 후스의 조교가 된 이후 그들의 관계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리사는 후스의 아파트에 들려 그녀의 우편물을 정리하고 잡무를 처리한다. 그녀는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이자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생각에 굉장히 뿌듯해한다. 그러나 워싱턴 출장에서 돌아온 후스는 리사가 자신의 물건들을 허락 없이 정리하였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분노한다. 리사는 선의로 한 행동에 후스가 화를 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조교를 그만 두려고 한다. 그러나 후스는 실망하고 돌아가는 리사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청하고 그들의 관계는 회복된다.

이후 리사는 계속 그녀의 조교로 생활하고 후스와 더욱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리사와 후스는 부와 인기를 가진 늙은 영화감독이 전처의 입양된 어린 딸과 사랑에 빠진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리사는 늙은 영화감독이 아주 파렴치하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한 반면, 후스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불가항적으로 빠져드는 것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장면에서 후스가 젊은 시절 나이가 많은 한 연로 작가와 사랑에 빠졌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후스와 연로 작가의 사랑은 후스의 일방적인 사랑에 가까웠으며, 후스는 그에 대해 헌신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집에서 다른 여성을 마주한 이후 그를 떠났으며, 늙은 작가는 외롭고 비참하게 짧은 여생을 살다 갔다고 회상한다. 후스는 그녀의 희생과 그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는 누구의 것인가,

리사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결국 등단하고 장편소설을 출판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장편소설을 후스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장편소설의 주인공인 ‘미리엄’이 그녀 자신의 삶을 그려낸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던 젊은 날의 사랑을 한 번도 소설로 출판한 적이 없으며, 사랑 이야기 역시 남에게 쉬이 하지 않았다. 애제자인 리사에게 자신의 옛 사랑이야기를 하였던 것인데, 그녀가 자신을 소재로 장편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분노한다. 다양한 장면에서 흐르던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들은 이 장면에서 폭발한다. 후스는 리사가 자신의 경험과 삶을 빼앗아갔으며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그녀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반면 리사는 스승인 그녀가 자신에게 그렇게 소설을 쓰도록 가르쳤으며 소설 속 ‘미리엄’은 후스가 아닌 가상의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가며 언쟁을 계속하고 결국 갈등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로 연극은 종결된다.


지식의 모호한 경계

연극은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그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를 모두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폭발하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관계가 발전해나가는 것을 첫 만남에서부터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해간다. 그러나 후스의 사랑 이야기를 리사가 그녀의 소설에 담으면서 그들의 신뢰는 무너진다. 리사가 그녀의 장편소설에 담아낸 사랑 이야기는 후스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회상하던 순간이다. 가장 빛났던 순간을 지키고 싶은 후스와 그녀의 이야기를 가공해 소설을 쓴 리사. 자신의 경험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면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닌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지식들을 축적하게 된다. 그 중 일부는 우리의 직접 경험으로부터 얻은 것이지만, 일부는 타인의 경험이나 전통으로부터 얻어진다. 그 중 어떤 것이 진정 우리의 지식이며 자아를 구성하는 부분인가. 사실 그것의 구분은 아주 모호하다. 그러나 분명 지식의 일부분은 타인으로부터 오며 그것은 타인에게 소중하고 민감한 기억일 수 있기에 우리는 그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처음에는 후스와 리사의 갈등이 종결되지 않고 연극이 마무리되어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생각해보니 둘 사이의 갈등은 옳고 그름이 모호하며 명쾌하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인 듯하였다.


연극 전반

연극은 전반적으로 몰입감이 높고 흥미로웠다. 두 사람만이 무대에 등장하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연기로 무대를 꽉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디지털 액자를 활용하여 평소에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 액자로, 장면이 바뀔 때에는 시간과 공간을 알려주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또한 리사가 장편소설을 출간한 소감을 발표하는 장면에서도 작은 무대를 굉장히 효율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무대였지만 섬세한 무대와 무대장치들로 부족함 없는 장소가 되었던 것 같다. 다만 외국의 극본을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종종 어색하다고 생각되는 대사가 있었고, 극장의 관객석이 조금 협소하여 긴 시간 연극을 관람하기에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고 좋은 연극이었던 것 같다.



[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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