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미망인 속에 담긴 1950년대와 여성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9.0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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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지뢰밭입니다.


과부의눈물.jpg
 

영화 미망인(과부의 눈물)

감독 박남옥
각본 이보라
제작사 자매영화사
출연 이민자, 이택균, 최남현, 유계선, 나애심, 박영숙, 신동훈, 노강
장르 멜로드라마


상영시간 총 75분의 영화 <미망인>은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작품으로 1955년에 개봉되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주인공 '이신자'는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과부로 등장한다. 그녀는 남편 친구 '이성진'의 도움을 받아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성진의 아내는 그런 두 사람의 사이를 오해하여 그녀와 남편을 비난하고, 젊은 남성 '택'과 바람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성진의 아내가 택과 함께 간 해수욕장에서 ‘택’이 우연히 물에 빠진 신자의 딸을 구해준 뒤로 '신자''택' 은 서로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결혼까지 약속하며 동거생활을 하지만 그녀의 딸 '주'가 걸림돌이 된다. 
‘택’이 자신의 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을 느낀 신자는 옆집 살던 홀아비 송서방에게 딸의 보육을 맡긴다. 그 후 성진의 지원으로 양장점까지 차린 신자의 인생은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았으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전쟁으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택의 첫사랑 '진'이 나타난 것이다. 택은 다시 진이와 사랑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고 신자는 그런 택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영화는 원본이 유실된 채 복원된 터라 신자가 택을 끝까지 기다렸는지, 아니면 그녀만의 홀로서기를 시작했을지 정확한 결말을 알 수가 없다. 종료시간 10여분을 남겨둔 지점에서는 사운드마저 훼손되어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를 살아가던 여성들의 모습과 당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의미 있는 영화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 담긴 1950년대의 특징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박남옥,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감독은 1943년 이화여전(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 가정과에 입학하였다가 이듬해 중퇴하고 대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영화평을 썼다. 광복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조선영화사 광희동 촬영소에서 편집을 배우면서 영화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6·25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국방부 촬영대에 입대하여 뉴스 촬영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53년에는 부산에서 만난 극작가 이보라와 결혼하여 1954년 7월부터 남편이 쓴 각본과 언니의 돈을 빌려 ‘자매프로덕션’을 만든 뒤 미망인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돈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부족해 그녀는 스텝들에게 직접 밥을 해주며 촬영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당시 딸을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박남옥 감독은 아이를 봐줄 사람조차 없어 현장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연출을 했다고 하니 영화를 향한 그녀의 의지와 열정이 대단했다고 밖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이처럼 어렵게 완성된 영화는 1955년 3월 말에 개봉 됐지만 흥행에 실패하여 사흘 만에 간판을 내렸고 그 후 미망인은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성공의 여부와 관계없이 어려운 제작 환경 속에서 누구도 가지 않았고, 가지 못했던 여성 영화 감독인으로서의 삶이 녹아든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미망인>은 충분히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미국문화

영화가 만들어진 1955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로 미군을 통해 미국 문화가 전해지던 시기였다. 미군의 PX를 통해 미제품이 수입되고 남녀가 만나 자유롭게 춤을 추는 댄스홀이 곳곳에 생긴다. 그 곳에서 왈츠, 폭스트로트, 스윙, 맘보, 지르박, 삼바, 부기우기, 차차차 등 사교춤의 춤곡이 유행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서도 이처럼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렛츠고, 나이스잡 등 종종 영어를 쓰는 장면이나 ‘택’과 그의 첫사랑 ‘진’이가 쇼팽의 이별의 노래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예술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서구화가 진행되던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의 옷차림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이다. 과부로 등장하는 주인공 신자의 옷차림은 그녀가 양장점을 차리기 전까지 줄곧 한복만을 입는다. 하지만 성진의 아내나 옆집 동생 캐릭터의 경우엔 민소매 원피스, 투피스, 오드리 햅번을 연상시키는 주름치마, 플레어 스커트, 하이힐 등 주로 서양 복식 차림으로 등장하며 전통적 여성상과 서구화된 여성상의 대립을 보여준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통해 아프레걸이 등장하게 된다. 


아프레걸

아프레걸이란 프랑스어인 아프레게르와 영어 단어 girl의 합성어이다. 아프레게르의 뜻은 아방게르의 반대, '전후파' 라는 뜻으로 1차 대전 후에 프랑스에서 전쟁 전의 문화에 대한 청년의 반발이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의 전위운동이 된 것을 가리키며 넓은 뜻으로는 무질서한 젊은 세대와 혼란스러운 전후 풍속 그 자체를 말한다. 이와 같은 뜻으로 아프레걸은 기존의 유교적 가치를 지키지 않고 사치와 허영을 즐기며 도덕적인 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단어로 1950년대에 사용되었다.

아프레걸의 유형에는 유한마담(생활이 넉넉하여 놀러 다니는 것을 일삼는 부인), 성매매 여성, 양공주(당시 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을 비하하는 단어), 여대생, 다방 마담 등 주로 경제적 활동을 하거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던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캐릭터 또한 대부분 아프레걸을 상징한다. 주인공인 신자 역시 남편을 잃은 과부이지만 택과 동거를 하며 연인과 딸,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진의 아내 캐릭터 또한 유한마담 스타일로 남편의 바람을 의심하여 젊은 남성과 맞바람 피거나 남편에게 당당히 돈을 요구하는 등 기존의 수동적이고 억압받는 유교적 여성상과는 반대의 모습으로 자신 있게 자기의 의견을 표출하고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신자의 옆집 동생으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또한 마찬가지로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거나,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내뱉는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효녀, 처녀, 어머니, 현모양처)에서 벗어나 있다. 영화는 60년 전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만큼 현재 미디어에서도 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녀들을 향한 편견의 시선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과부들, 또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은 생활 전선으로 내몰리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도 주인공인 신자가 돈이 없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딸 주를 달래는 모습이니 당시 전쟁 과부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흔치 않았던 시기이며 효녀, 현모양처 등의 프레임에 갇혀 가정 속에서만 머물던 이들이 돈을 벌 수 있던 수단은 성매매, 다방마담, 양장점 주인 등이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던 과부들과 여성들 중 상당수가 성매매로 유입되었지만 국가는 이런 현상들을 방조하다 못해 외화벌이라는 목적으로 1960년대에 들어서는 기지촌을 직접 관리하기까지 한다. 1950년대는 슬프지만 어떤 식으로든 여성들이 경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사회가 바라던 가부장적인 여성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이런 여성들을 대표하는 영화 속 캐릭터들을 향한 단어들은 갈보, 더러운 년들, 미친 축에 속하는 여자이니 사회가 아프레걸을 바라보던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어땠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취직을 하겠다는 진이의 말에 ‘여자는 집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라고 답변하는 택의 모습 또한 여성들의 경제활동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변화하던 모습을 못마땅해 하던 당시 남성들의 은밀한 속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1950년대를 대표하던 여성들의 캐릭터를 성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으로 구분 짓지 않는다. 신자가 남편의 친구에게 돈을 받던 상황이나 성진의 아내가 둘의 관계를 오해하여 바람을 피는 모습, 옆집 동생이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임을 암시하는 내용 모두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시대적 배경으로 그녀들이 무작정 일탈을 일삼는 것이 아님을 은연중에 비춰준다. 틀에 박힌 것 마냥 언제나 착하고 악하기만 한 인물들이 아니라, 상황과 감정에 따라 도덕적인 행동과 비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라는 것을 짧은 시간 속에서도 꽤 짜임새 있는 연출로 나타내어 사회가 아프레걸들을 바라보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그녀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과 유튜브, 네이버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다른 고전 작품들도 많이 있으니 감상을 통해 옛 시대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발견이 될지도 모른다. 





참조기사: 한겨레-대한민국 정부가 포주였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0838.html

아시아 경제-격변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백화점을 만나다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50419020803264

시사저널-난 스스로 미군위안부가 된 게 아니야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57098


참고자료: 네이버 두산백과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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