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녀사냥과 집단적 광기, 영화 '더 헌트'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8.30 20: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b0008277_5108e179cb4b9.jpg
 

죽마고우들이 넘쳐나는 고향 마을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루카스는 유치원생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교사로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그의 바람은 이혼한 아내가 데리고 있는 아들 마커스를 자주 만나보는 일이다. 아들 마커스를 끔찍이 사랑하는 루카스는 언젠가 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될 날을 꿈꾸며 쓸쓸하게 귀가한다.

루카스와 가장 가까운 친구인 테오의 5살 딸 클라라는 루카스를 아빠의 친구나 선생님으로 대하지 않으려 하고 마치 이성을 대하듯 한다. 루카스에게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거절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클라라는 순간적으로 유치원 원장에게 '아저씨가 성기를 보여줬노라' 거짓말을 했다.
이 거짓말은 마을 구성원 전체를 집단적 광기로 몰고 가게 된다. 유치원 원장의 제보로 경찰 조사를 받은 루카스는 혐의가 없는 것이 밝혀져 석방되지만 사태는 호전되지 않는다. 가족처럼 지냈던 마을 사람들과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이 루카스를 심하게 따돌리고 물리적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다.

영화의 시간은 어느 해 11월부터 그 이듬해 성탄절 무렵까지의 대략 13개월 정도다. 진실을 밝히고 거짓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는 루카스의 눈물겨운 사투가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루카스와 마커스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성년에 이른 마커스를 축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그들은 사슴사냥에 함께 나선다. 그리고 영화는 숲 속에서 들리는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넋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루카스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L20130125_010400734050001i1.jpg

 
영화가 주목하는 핵심은 '어린 아이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은 진실만을 말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얽매여 집단적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이며 진실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루카스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테오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 동안의 우정과 가족애 사이에서 테오는 잠시 동요하지만, 클라라에 대한 부성애가 우정을 압도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만약 내가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누구의 진실에 동조할 것인가이다. 자식인가, 친구인가. 슬프게도 만약 나였어도 자식에 대한 애정이 우정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맞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한 구석을 괴롭혀도, ‘내 자식이니까, 아직 어려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어서 떠오르는 의심을 지울 것 같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 또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허를 찌르는 부분을 많이 보여준다.

사건이 종결되고 1년 후, 루카스를 괴롭혔던 동네 사람들은 루카스와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하고 포옹한다. 루카스 역시 그들과 즐겁게 어울리지만,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며 표정이 굳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마녀사냥에 대한 비유를 보여주는데, 마녀사냥의 피해자는 자신의 누명이 벗겨지고 나면 더 이상 예전처럼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가해자들과 정상적으로 어울리려 노력한다. 가해자들은 보통 '아니면 말고' 식의 대처를 보이며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폭력을 당한 당사자에게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생긴 것이다.


maxresdefault.jpg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루카스의 아들인 마커스의 성인식으로 넘어간다. 루카스는 다시 여자친구와 재결합했으며, 친구들은 이제 모두 그의 곁에 있다. 그 자리에서, 마커스는 자신을 파멸 직전까지 내몰았던 클라라를 다시 만나는데, 루카스는 클라라를 안아주면서 화해한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사슴사냥을 하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혼자 남겨진 그에게 누군가 일부러 총을 빗겨 쏜다. 그가 아동을 추행하든 추행하지 않았든 간에, 그에게 찍힌 낙인과 집단의 증오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소름끼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고, 눈물이 많이 났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진실은 정말로 진실인 것일지, 아니면 그것이 그저 진실이기를 우리가 바라기 때문에 믿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허술함에 대해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평범한 한 남자의 인생이 소녀의 작은 거짓말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는 과정을 덤덤하게 그리는 이 영화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기에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확인할 수 있다. 관객들은 루카스의 입장에 서서 분개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루카스를 사냥하는 미쳐 날뛰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거짓된 정보가 진실인 것처럼 마구 나도는 sns 시대에 내가 어떤 말에도 동요한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실이라는 사냥터에서 때로는 사냥 당하는 사슴이 되고 때로는 여러 사람들과 무리를 지은 사냥꾼이 되어 타인을 사냥하게 된다. 진실의 무게는 집단에 의해서 압도되기에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기 때문이다.
   

[김현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