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너무나도 나약하기에, 기억해야한다

글 입력 2016.08.2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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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컴컴한 무대와 그것을 채우고 있는 노란색 접근금지 테이프, 그리고 그 위에 누워있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 하나. 이 세 가지만으로도 연극 <오늘의 사건>이 관객들 앞에 풀어낼 이야기가 지닌 스산함과 심각성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무대에서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연극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점점 한 가지 생각에 파묻혀버렸다. 


“나약하다”

정의를 쫓는 이들은 결국 패배한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기생하는 이들은 호위호식하며 배부르게 살아간다.
정의라는 단어가 있는지 조차 모를 것 같은 이들은 권력도, 부도, 명예도 모두 갖는다. 


 연극 <오늘의 사건>은 권선징악을 바랬던 나를, 권선징악 따위는 동화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비웃는 듯 했다. 현실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나약하기 그지없다. 정의를 위해 싸울 만큼 용감하지 않으며 정의를 인생 최우선의 가치로 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앞으로 좀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있다. 바로 잊지 않는 것이다. 
 

 대중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입을 틀어막으면서, 그리고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하면서 부패한 권력자들이 가장 애타게 얻고자 하는 것 중 하나는 대중들의 망각이다. 그들의 치부를 우리가 기억하는 걸 그들은 원치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흘러 모두가 다시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길, 혹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관련 가십거리로 시선을 돌리길 바란다. 정의를 위해 싸우진 못해도, 정의를 갉아먹는 이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도와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너무나 나약하기에, 기억해야한다.


 ‘너무 두려워마세요, 이게 현실이니까요.’ 라고 불편한 진실을 관객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연극 <오늘의 사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연극이 대중들의 희망을 짓밟고 싶은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알면 알수록 불편하고 또 두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명한 눈동자로 두 귀를 열고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한다. 권력의 추악한 이면에 대해, 화려한 겉모습에 감추어진 진실에 대해. 그리고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 <오늘의 사건>은 어찌 보면 그러한 일들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행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극’이라는 문화예술을 통해서 말이다.  


 더불어 이처럼 무겁디무거운 주제를 흡입력있게 다룰 수 있었는데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의 역량은 언제나 중요하겠지만 이 연극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느 때보다도 현실감 있게 공연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극 <오늘의 사건>에 등장하는 경찰, 정치인, 기자 등 10명 이상의 인물들 모두 연기력이 대단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인 김윤주 배우와 성환 배우는 물론이고 잠시잠깐 등장했던 구멍가게할아버지 역의 강학수배우, 배상철부인 역의 류지애 배우까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것이 연극인지라 암전이 되거나 무대가 바뀔 때 집중이 흐려지기도 하는데 <오늘의 사건>은 전혀 그런 감을 느끼지 못했다.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극에서 만큼은 배우들이 배우가 아닌 그들이 맡은 배역으로 보였다. 


 문화예술은 가볍게 우리에게 순간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거운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연극 <오늘의 사건>은 후자의 측면에서 대중들에게 의미있는 한 마디를 건네고자 하는, 충분히 가치있는 연극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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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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