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달빛 크로키' 리뷰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다시, 사랑
글 입력 2016.08.1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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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연극 '달빛 크로키' 리뷰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다시, 사랑


달빛크로키_포스터_0717.jpg


 드라마 속 사랑은 거의 언제나 예쁘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면 주위의 장애물들은 제아무리 험난하고 날카로울지라도 결국 풀이 꺾이고 주인공들은 사랑을 이룬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하기 일쑤고 억울하고 화나는 일도 많다. 미디어 속의 사랑이 예쁘게만 나타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진짜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외면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빛 크로키'는 진짜 사랑에 대한 얘기다. 사실 수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수만 가지의 사랑이 있을 것이기에 진짜 사랑을 운운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달리 말한다면 이 연극은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1부 '옥탑방 크로키'는 우리가 외면해왔던 성소수자의 사랑이야기다. 소여와 미라는 10년째 연애중이다. 하지만 동성연애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여 항상 데이트는 소여의 옥탑방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미라는 소여와의 관계 노출을 각별히 조심하는데, 미라는 남편과 가정을 꾸리며 단란한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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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여의 옥탑방 의미는 특별하다. 옥탑은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이다. 그만큼 방값이 싸기도 하지만 살기에는 열악하다. 건물의 가장 꼭대기층이라서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세상에 가장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집이기 때문이다. 소외와 동시에 개방된 공간인 셈이다. 소여는 평생 드러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미라와의 관계에 대한 답답함, 미라의 친구라는 그늘 속에 숨어있는 어두움을 옥탑방에서 받는 햇빛으로 극복하려 했을 것이다. '집이라도 높은 데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라는 소여의 대사는 평소 자신을 드러낼 수 없음에 대한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소여는 미라의 그림자 속에서밖에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상실감, 미라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로 인해 집을 떠났을 것이다. 소여가 자신을 좋아하는 학생 유리를 받아주지 못하는 이유는 유리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지금 누구보다도 밝은 유리가 자신과 같은 어둠속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함께 빛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성소수자의 사랑은 항상 외면 혹은 부정의 역사를 겪어왔다. 고칠 수 있는 것, 혹은 더럽다고 평가되거나 죄악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이나 편견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그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 사람이 이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옥탑방 크로키'는 동성애자, 양성애자의 사랑을 모두 그리면서 그 속에서 당당해지지 못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그들의 사랑이 옥탑방 옥상만큼이나 많은 햇빛을 받게 되기를 기원하며 우리는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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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참깨라면'은 사랑이 끝난 후에 대한 이야기다. 어딘가 애틋해 보여서 액자에 쌓인 보얀 먼지를 닦아내면 그 속에 담긴 사진이 보이고 당시의 행복했던 순간이 생각나지만 이미 액자 유리에는 돌이킬 수 없는 금이 크게 가있다. 사진도 시간의 흔적으로 인해 얼룩덜룩한 색으로 바래었다. 세경은 옛 연인인 남자의 집에 들어와 라면을 먹고 옛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당한 배신으로 몇 년을 이를 갈며 일했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상처받아 남자를 떠난 것이라 말한다.

 지훈의 옥탑방은 소여의 옥탑방이 가지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지훈은 그저 일에 몰두할 곳이 필요했다. 세경에게 달력을 보여주며 지훈은 소리친다. 

"보여 이 달력? 일로 밤새지 않으면 밤새 술자리였어." 

지훈에게는 잠시 들어와 씻고 나갈 곳, 잠깐 등을 붙일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을 것이다. 세경에 대한 복수로 일에만 몰두했을 테니까. 세경을 향한 복수의 의지로만 가득 채워진 그 방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라면을 끓여달라며 술에 잔뜩 취한 세경이 들어온 것이다. 

 이제 와서 오해를 푼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해는 풀리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는 이미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이해와 수긍, 용서와 화합이 아닌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짜증, 허탈함이 남을 뿐이다. 오해와 권태로 얼룩졌던 사랑은 증오와 뒷이야기를 동반한 후회로 남는다. 다시 불꽃을 켜볼까 하지만 이미 주변에는 장작이 아닌 잿더미뿐. 잿더미에 불을 붙이려니 흩어지기만 하고 바닥만 드러날 뿐이다. 결국 바닥은 잿더미로 뒤덮인 채 문이 닫힌다.

이 연극의 매력은 1부와 2부가 역순행적 구성이라는 데 있다. '참깨라면'의 남자 다음으로 입주한 사람이 '옥탑방 크로키'의 소여인 것이다. 지훈과 세경이 남기고 간 잿더미 쌓인 방바닥은 다시 미라와 소여에 의해 깨끗해진다. 끝난 사랑 그 이후에는 다시 사랑이 와서 그 자리를 빛낸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또한 드라마같고 아름답기만 한 사랑이 아닌 구질구질하고 처절하고 외면받는 사랑이다. 이기적인 사랑과 철없이 당당한 사랑, 한없이 주다가 슬퍼져 버린 사랑. 

 어쩌면 사랑은 핑크빛이 아니라 잿빛 하늘의 핑크빛 안개 정도일지도 모른다. 안개는 아무리 짙어도 햇빛이 비춘다면 언젠가 사라진다. 하지만 당장의 안개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흩어지는, 흩어질 것을 아는 안개들 속에서도 그 안개에 취해 잿빛 하늘을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이 연극이 말하는 '사랑'이다.

 또 인상적인 것은 '그래도 삶은, 사랑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지훈이 떠나고 소여가 왔고, 소여가 떠나고 유리가 왔듯이. 인생은 핑크빛 안개를 찾는 여정이다. 안개에 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지만 그 때의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다시 핑크빛 안개를 향해서 나아가는 끝없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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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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