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니 세빌(Jenny Savile), 살- 추와 혐오의 미학 [예술철학]

여성주의 미술로 몸 바라보기
글 입력 2016.08.16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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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세빌(Jenny Savile)
살- 추와 혐오의 미학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매시간 어디에서나 미디어를 통해 여성들에게 주입된다. 여성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시선 앞에서 평가를 받으며 날씬함, 아름다움, 젋음의 압제하에 비만해져서는 안 되고 시간의 흐름(노화)이나 경험(임신과 출산)이 몸에 새겨져서도 안된다. 여성의 ‘순종적인 신체’를 구축해내는 훈육적 기술들은 영속적이고 빈틈없는 규제- 몸의 크기, 모양, 욕망, 자세, 동작에 대한, 그리고 전반적인 처신과 보이는 각 신체 부위의 겉모습에 대한 규제-를 목표로 한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획일적인 지향성을 따라가고 있는 듯 하다. 의식주에 대한 모든 것을 통틀어서 우리는 정신과 신체 모두 건강해 지는 방향, well-being을 추구하는데, 그 속 안에 특히, 여성의 몸을 이야기하자면 어떠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항상 따라다니며 행동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향에는 작은 얼굴, 스키니하고 탄탄한 근육이 있는 건강미가 느껴지는 그러한 몸이 그러하다. 이를 위해 각종 미디어 매체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몸매를 위한 여러 운동법과 식이요법을 소개하는 모습이 보이며, 우리는 이러한 기준의 몸매가 아닌, 특히 몸에 살이 많은 사람들은 내지는 다이어트를 해서 이러한 살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비판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즉, 살이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추함을 상징하며, 일종의 혐오를 느끼며 이를 비판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규범적 시각에 저항하는 미술가들은 완전함, 아름다움, 건강이 무엇을 의미하고, 누가 그것을 규정하는 권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반문한다. 그 중 한 미술가로 제니 세빌(Jenny Savile)에 대해서 소개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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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세빌(Jenny Savile)은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그룹의 일원인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이상적인 여성의 몸과 아름다움에 의문을 가지며 거대한 몸집의 여성 누드를 통해 이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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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 새빌, <지렛대 받침>, 1998~1999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를 가득 메운 여성의 살덩어리는 아름다움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고깃덩어리처럼 보이는, 관람자를 향해 쏟아질 듯한 살덩어리는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상상하던 관람자에게 추와 혐오의 감정만을 불러일으킨다. 새빌의 그림들은 여성의 몸에 대한 문화적 대상화와 미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새빌은 몸을 미적 관조의 대상이 아닌 몸 그 자체로 재현한다. 육중한 여성의 몸은 물질적 현존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제니 새빌의 그림을 보고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주된 이유는 몸의 물질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림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과 놀라운 색의 조화 역시 관람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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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세빌, <받쳐져 있는>, 1992


 새빌의 그림이 표출하고 있는 혐오의 미학은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경험에 근거한다. 그림 속 혐오스러울 만큼 비대한 여성의 몸은 내부로부터 자신을 위협하는 망령과도 같다. 다시 말해 여성의 상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새빌은 여성의 몸 아브젝트를 물질화함으로써 드러낸다.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방식과 그 몸이 실제로 타인에게 인지되는 방식 간의 차이, 말하자면 살아 있는 몸과 이상화된 몸 사이의 부조화 내지 괴리를 실감하게 하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새빌이 구현하고 있는 혐오스러운 몸들은 역겨운 몸이 아니라 마치 역겨운 것처럼 인식되어온, 살아있는 몸들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SNS로 보았던 데이트앱 광고가 떠오르는데, 이 앱에서는 얼평이라고 해서 자신의 사진을 올리면 앱에서 점수화해서 얼굴을 평가해주며, 이 평가가 궁금해서 앱을 까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 내지는 몸매에 평가 받는 것을 허락할까? 우월주의적인 사고에 도취되어 이러한 부분에서 오는 자부심을 바라고 그러는 것일까. 위의 글처럼 자신의 몸이 실제로 타인에게 인지되는 부분과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부분을 동일시 하려는 데에서 문제가 있어보인다. 우리의 몸은 그저 이렇게 존재할 뿐인데, 사람들에 의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 되어지는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 획일적 기준의 평가가 마치 보이는 우리 몸의 모든 것이라는, 우리가 협소하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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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새빌, <호스트>, 2000


 비만이 동물과 연관되는 것은 도출되고 늘어진 살을 통제되지 않은 몸, 즉 걷잡을 수 없는 욕구(식욕)와 조절되지 않는 충동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한다. 문제는 그러한 시각이 남성의 몸보다는 주로 여성의 몸과 결부된다는 데 있다. 이성으로서의 남성과 자연/물질로서의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구분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통제를 벗어난 부정적인 신체적 특징이 여성에게 내면화되고 도덕적인 결함으로 인식되거나 심리적 장애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만 여성들은 자신을 혐오스러워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새빌이 그린 여성들은 혐오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경험하는 것의 문제를 구현한다. 말하자면 비만을 통제력의 부족과 동일시하며 비도덕적인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의 시각을 추하고 혐오스러운 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크고 흉물스럽다는 것은 단지 차이 다름에 대한 해석에 불과함을 역설하고 있다.






참고도서- 젠더 몸 미술(GENDER, BODY, ART), 정윤희 지음


[김다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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