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 부산행 >, 좀비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7.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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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포스터.jpg
 

  좀비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죽었으되 죽지 않은 것은 좋다고 치지만 대신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아도 사람의 피를 빠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어버리는 게 별로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안다, 어차피 영화이고 허구인 걸. 그래도 별로였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순간은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여름치고는 한산한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영화 부산행을 만났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누출되어서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좀비로 감염되는 상황. 부산행 KTX에서도 예외는 아닌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가 영화의 골자이다.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애니메이션으로 적나라하게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감독님의 실사판 작품이 궁금했고, 좀비물이라는 취향타는 장르인데도 관객수가 일파만파 늘어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잘 나가다가 신파가 과했다는 평가에 어떻길래 그런가 했다. 

  결론적으로는 영화 <부산행>은 내게 그 신파가 장점이자 단점이었고, 굳이 따지면 득이 실보다는 많았다. 사실 기억에 남는 신파가 그리 많지는 않다.(정신없이 의자가 덜컹거리던 4DX로 봐서 그럴 수도 있다 정말 무서웠던!) 그렇게 신파가 많았다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신파에 관대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감동적인 걸 알고 뻔한 대사인데도 일부러 더 눈물 콧물을 자극하려고 긴 시간을 자꾸 끌 때는 나오려던 눈물도 들어가버리고 마는 사람인지라, 부산행의 신파 정도는 사골처럼 우려먹으며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아서 크게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서운 순간으로 잔뜩 당겨놓은 상태에서 그 정도 비중의 신파라면. 가족애를 강조하는 대사들로 좀비영화라는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도 전략이라면 현명한 전략이다. 진짜 신파가 과하다고 비판받을 작품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부산행은 일단 선두주자는 아니다.


마동석.jpg
 

  영화 <곡성>이 초반에 무서운 분위기를 잊게 하는 유머가 있었다면 <부산행>은 초반 대신 상화(마동석)가 합류하는 중반에 유머와 신파를 넣으면서 잠시 몰아치는 좀비떼를 등 뒤에 두고 한 숨을 돌리게 해주었다. 아버지들이 원래 그렇게 욕먹고 그러는 거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걸 언젠가 딸도 이해하는 순간이 올거라는 말 뒤에 멋쩍게 붙이는 멋지지 않냐라는 말. 석우(공유)가 딸 수안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상화 자신이 임산부인 아내 성경(정유미)를 위해 무서움을 다잡고 좀비들이 가득한 열차 한 칸 한 칸을 건너오는 상황. 아침에만 해도 열차계의 부르주아이자 신세계로 자리잡은 KTX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탑승한 사람 태반이 이상하게 변해 버린 상황에서 그런 멘트 쯤이야 넋이 나간 상황에 한번 던져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부산행이 무서울만한 이유는 충분히 많다. 누구든지 감염될 수 있다는 점과 기차라는 도망갈 곳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점도 물론 포함된다. 좀비 영화라는 걸 알고 시작하는 입장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감염된 사람이 부산행 기차에 올라타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기차는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하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사람들이 변하는 매 순간, 피를 찾아다니는 그 순간은 매번 놀라웠다. 

  그러나 정부의 반어법적인 대처로 인한 불신과 생존자들 사이에서의 계급화만큼 잔인하고 무서운 것은 없었다. 처음에 무슨 폭력시위인가 했더니 감염으로 인해 좀비가 된 사람들을 폭력시위라고 표현하고 전국이 뒤숭숭할 정도로 수습이 안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반드시 지키겠다면서 부산행 생존자들을 좀비들에게 버리는 모습을 보면 왜곡과 거짓말이 풍년이다. 세상에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을 시위로 표현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넌센스가 따로 없다. 시위의 개념은 때로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해석의 문제로 변해버린 것만 같다. 기자 회견에서는 국민을 구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하겠다고 하더니 KTX에 탄 국민은 국민도 아닌 것처럼 좀비군인들이 가득한 역에 덜렁 버려두려고 한다. 차라리 지키지 못할 말이면 하지를 말던가. 그 장면이 너무나 무서웠던 건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였다. 정말 우리나라가 위기 상황에서 저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 수긍이 가버리니까. 

  그럴 때면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는 대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해보라'는 그 멋들어진 케네디 전 대통령의 문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개인의 힘을 모아 꾸역꾸역 버티고 살아남은 임산부 성경과 석우의 딸 수안이 사살 전에 극적으로 군대에게 생존자 구조를 받는 걸 보면 또 국가의 존재감이 작은 것만도 아니다. 결국 믿기는 믿어야 하는데 찜찜하다. 국가나 국민이나 서로 합이 맞아야 되는 건 매한가지인데 서로 기댈 수 없는 존재가 되면 무얼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그아저씨.jpg
 

  생존자 사이에서의 계급화라니, 무슨 어려운 말이 되어버렸는데 별 건 아니다. 중간중간 열차 칸을 한칸 한 칸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단순하게 '좀비버전의 설국열차'같다는 생각을 했다. 설국열차처럼 대단한 혁명을 하겠다고 칸을 움직이는 건 아니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하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다. 그저 탑승하다보니 좀비가 있는 칸 뒤에 탔을 뿐이고, 누구는 앞에 있을 뿐이다. 부산행에서 발암물질 같은 한 캐릭터가 있는데 용석이란 이름보다 그 '재수없는 8:2 가르마 아저씨'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는 여러모로 능력자다. 기껏 힘들게 열차 칸을 옮겨온 주인공들에게 문을 열어 주어선 안된다 하더디 겨우 들어오고 나서 생존자를 놓쳐 분노한 석우가 한 대 치자 이 놈도 감염됐다면서 물타기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우물쭈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승무원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수하처럼 이용해먹기도 한다. 

  무서운 건 그를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다는 거다. 왜? 모든지 다 이용해서 살아남는 게 나쁘기만 한건가? 그거야 그렇다. 하지만 기관사, 승무원 등 살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다친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의 말이 꼭 틀린 것도 아니다. 좀비들을 물리치고 멀쩡히 돌아왔을 확률보다야 무사히 왔어도 좀비들한테 감염되었을 확률이 더 높은 건 사실이다. (근데 그것도 보면 아는 것 아닌가! 핏줄이 변하고 눈이 금방 바뀌는 걸 알고도 남았을 타이밍이다) 상대적으로 먼저 생존자 반열에 들어서 좀비와 마주치지 못했던 용석을 비롯한 '15칸 생존자'들은 꾸역꾸역 살아돌아온 석우와 상화 등에게 당장 떠나라고 거세게 항의하고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누군가는 살 수 있는데도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어차피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은 똑같은데 생존자 사이에서도 '급'이 있는 것 마냥. 15칸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몸을 움직이는 사람과 입을 움직이는 사람은 나뉜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좀비로 변하는 바이러스 하나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사회에 만연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으로 달려가면서 결국 감염이 진행되는 그의 얼굴이 단독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장면이 있다. 그가 한 행동과 가족을 위해 집에 꼭 돌아가야 한다면서 주소를 읊어대는 그의 말의 거리감이 크다. 좀비로 변해가는 순간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나 보다. 그 순간 영화 내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러냐, 저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 자신이 무서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울역.jpg
 

   그리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무엇이 유출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서울역에서 왜 좀비가 생겼는지 왜 부산만 거의 유일하게 진압을 할 수 있었는지와 같은 궁금증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왜 서울과 부산은 다른지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미 좀비가 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래도 이런 것들을 다 알려주지 않아서 더 좋았다. 다 알려주면 재미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으니까. 물론 처음 공포를 몰아왔던 서울역 좀비에 대한 궁금증은 곧 개봉할 영화 <서울역>에서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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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OST가 하나 생기는데 바로 '알로하 오에'다. 딸 수안이 서먹서먹한 아빠 석우를 위해 준비하다가 부르지 못한 그 노래. 그대여 안녕, 그리운 사람, 석별의 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아빠를 위해 준비했던 노래라는 걸 감안하면 곁에 있어도 늘 자신과 거리감이 느껴졌던 아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고,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야 부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별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던. 딸 수안의 마지막 눈빛이 아른거린다. 



검은 구름 하늘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기약을 하고
서로 작별하고 떠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꽃 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다시 만날때까지

검은 구름 하늘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기약을 하고
서로 작별하고 떠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꽃 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 오에
알로하 오에
다시 만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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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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