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앤서니 브라운 전 - 손에 닿을 듯한 상상의 나라

by 신은지 에디터
2016.07.12 14:23


P20160704_141718413_512F147E-700E-45A4-9C0C-2457BB8DC200.JPG
 
 
   이상하게 전시나 연극을 보러 가는 날은 대부분 비가 온다. 전시장에 입장 전부터, 감성적인 분위기를 미리 조성해주는 걸까. 조금쯤 어두운 하늘, 그리고 툭툭 떨어지는 비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좋은 무대 장치였다. 빗소리를 듣고 걸어가는 길이 좋았다. 앤서니 브라운 전시가 진행중인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그 모든 축축한 길들이 전시장의 연장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분위기는 조금 어두침침했지만, 동화책 그림 작가의 전시인 만큼 내부로 들어서자마자서는 알록달록한 빛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예쁘고 포근한 색채를 보며 마치 꽃밭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첫 인상.
 

P20160704_143405774_F3CA33FC-BED4-4C69-856F-7E903B53EE87.JPG


   이번 전시는 앤서니 브라운의 첫 번째 동화책 '거울 속으로'가 탄생한지 40년 째 되는 해를 기념한다. 작가의 지금까지의 작품을 쭉 돌아보고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 특히 부제인 '행복한 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특성을 참 잘 담아내었다고 생각된다.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통해서 아이들과 어른에게 얘기하고자 했던 부분이 바로 '행복'이었으므로. 특별하고 거창한 상상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작은 상상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쉼과 즐거움, 기쁨. 이는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의 특성이기도 하다.

   전시는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독특한 점은 각 구역이 색깔별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맨 첫 번째 공간은 강렬한 빨간색이었다. 간단한 작가 소개와 함께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들이 이어서 전시되고 있었다. 짧게 작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앤서니 브라운은 본래 동화 작가가 아니라 의학 관련 삽화 작가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의 동화 캐릭터들은 다른 동화들에 비해 상당히 디테일하고 구체적으로 회화적인 묘사가 나타난다. 아마 이런 특성은 그의 이와 같은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꽤 많은 양의 패러디 작품을 보며 원래 작품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패러디 작품들은 너무 동화스럽거나 아이들 전용이라기 보다는, 상당히 위트있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P20160704_143938924_19D410CC-8A35-4EB4-B0DA-5EF4E63087B2.JPG
 
P20160704_144255522_12467EEC-1D1E-4F12-B851-3F8B544EA341.JPG
 

   그 다음 섹션은 하늘색과 초록색. 전시의 큰 맥락은 작가가 동화책을 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듯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작품의 일부를 크게 확대하여 재구성하여 시각적인 흥미도를 높인다. 작가의 작품을 실감나게 만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세세한 디테일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장 내부는 전체 촬영 가능하게 해놓아서 포토존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 섹션에서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허물어버리는 작가의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어 보여준 초현실주의 예술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현실과 꿈의 세계를 드나드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토끼가 말을 하고, 주전자가 고양이로 변하고. 현실 속에 실재하는 사물들을 상상 속에서 살작 비틀어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꿈이며 동시에 현실이고, 동시에 즐거운 놀이와 게임이 되었다. 아이들의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다.
 

P20160704_144907411_E2C0F1BC-635A-4811-B67F-239A2AB159AD.JPG
 
P20160704_145115900_211A5D3F-010D-4E99-9CC5-501E394EF4A7.JPG
 

   축구공이 알이 되어 그 안에서 새가 탄생하고, 말하는 토끼와 곰이 친구가 되는 기묘하고 즐거운 세상. 왜 이 작가의 동화책이 스테디셀러이며, 왜 아이들이 동화책을 좋아하는지 가슴에 와닿는다. 사실 전시 전에 조금 걱정했던 것은 '동화' 자체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릴 적 이후로 동화책을 딱히 읽어본 적 없는 터라, '애들이 보는 책' 이라던가 '어쩌면 조금쯤 유치한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직 마음 속에 어린 시절의 내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전시는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날 들뜨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화 그림이지만 회화적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에 한 그림 앞에서 보낸 시간이 꽤나 길었다. 숨겨진 그림, 숨겨진 메세지를 찾아내는 과정이 재미가 쏠쏠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시 중간중간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일부를 재구성한 장식품, 부조 등이 동시에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하늘을 나는 원숭이는 생각보다 큰 스케일감으로 천장에 떠 있었는데, 그 옆의 작품을 보다가 원숭이를 보자 마치 상상 속의 그가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입체감을 주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전시장 자체도 상상 속의 세계를 걷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신나서 엄마들을 그 앞으로 끌고가는 모습이 참 귀엽다. 그래도 전시회니까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살풋 걷는 모양새가 귀여웠다.


P20160704_145202766_C62E70ED-43AC-4F77-9E52-DBE0FCE5B50B.JPG


   짙은 연두빛으로 이루어진 이 섹션은 '이해하고 친구하기' 파트였다. 그 다음의 가족 파트와 더불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즐겁게 상상 속 세계를 여행하고 즐겁게 돌아다녔다면, 이제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삶에 대한 따듯한 시야가 더욱 풍부하게 느껴진다. '우리 친구 하자' 같은 책에서는 왜 우리가 서로 더 가까워지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담아내고 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결국 친구를 필요로 하고 서로 사랑받고 싶어하지만 어째서인지, 우리는 늘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 서툴다. 유모차 안에 누운 강아지, 나무로 위장한 거인의 발, 그 사이를 뱅글뱅글 달리는 동물, 그리고 사람.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부드러운 선과 색으로 풀어낸다. 그의 동화 그림을 따라 쭉 걷다 보면 그 안에서 나와, 내 친구와, 친구가 되고 싶은 수많은 모습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동화책의 모두와도 친구가 된다. 가슴 따듯해지는 순간이었다. 동화책이란 참 매력적이다.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자꾸 들추는데, 그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코 끝 찡하게 달갑다.


P20160704_145647076_12C3FBAD-0CBD-47DF-9AB3-5FE12F69D4D1.JPG


   따듯한 주황색 벽들.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파트다. 앤서니 브라운은 본래 가족을 다룬 책을 여럿 그린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어렸을 적 봐왔던 동화책들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어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의 유년기를 만든 기억 중 하나였다니. 작가는 우리가 실제로 겪고 있지만 그동안 그림책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웠던, 오늘날의 가족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아빠이기도 한 작가의 시선에서, 아빠의 입장에서 바라본 가정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일을 하느라 바쁜 아빠, 집안일과 회사일에 힘든 엄마, 사랑에 목말라 하는 아이들, 우리가 익히 짐작하지만 편하게 꺼내놓진 못했던 가족의 모습들을 잔잔하게 그림으로 담는다.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배려하는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P20160704_150814651_DF1C12C5-18B2-4DDB-81A6-0A943280F552.JPG


   전시의 마지막에 이르면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 그림과 관련한 재해석 작품이나, 연관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 작가마다 독특한 작풍,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습이 느껴져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와 더불어 다양한 작품을 접하게 되어 좋았다. 여기서도 몇몇 동화작가의 작품을 전에 한번 본 터라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신기한게, 다 다른 내용과 다 다른 그림체, 다 다른 색을 사용하지만 그들이 작품은 모두 다 따듯하다.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럴까.
 

P20160704_151117049_39065530-99F4-489B-A89C-7B62F93698C9.JPG


   마지막 섹션 옆에 별도로 구분된 공간이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더니 좌식 의자와 매트, 그리고 테이블과 그 위를 가득 채운 동화책으로 이루어진 작은 방이였다. 누구나 앉아서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었다. 안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그의 동화책을 한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라 아이들 사이에 진득히 앉아서 동화책을 펼쳐보았다. 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 동물 이야기. 방금 액자 속에서 본 그의 그림들이 다시 책의 형태를 하고 내 손에 들려 있는 느낌이 생경하다. 확실히 책으로 접하니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전시 뿐만 아니라 이렇게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가 참 고맙다.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동화책을 꼭 붙들고 고개를 숙인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동글동글 굴러다닌다. 문득 그 안에서 내 어린 모습도 본다.


P20160704_194013000_14615481-BC3B-4DCD-B6A4-DD4FA195B991.JPG

 
   앤서니 브라운 전. 시간이 된다면 가족과 다함께 한번 더 와보고 싶다. 말 그대로 즐겁고 행복한 전시였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