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페라 마술피리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대중적 연극
글 입력 2016.05.2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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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하면 으레 고급스러운 정장과 드레스를 갖춰 입은 관람객들을 상상하게 된다. 본디 오페라는 귀족들을 위한 예술로 시작했고, 현재에도 오페라는 다른 종류의 공연예술에 비해 표값이 비싸다. 결과적으로 오페라는 소위 서민층이 일상적으로 접하기는 어려운 예술 장르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 굳이 따지자면 ‘고급문화’의 대표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오페라 ‘마술피리’는 귀족들을 위한 극이 아니었다.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하여 ‘마술피리’를 썼고, 덕분에 ‘마술피리’의 초연은 ‘소시지 냄새가 진동하는 장터에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 서민적인 곳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모차르트 3대 걸작 오페라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 특유의 통속적 로맨스 요소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다.
 
2016 오페라 페스티벌의 ‘마술피리’는 바로 이러한 마술피리의 매력을 한껏 살린 극이라고 할 수 있다. 노블아트오페라단은 오페라에 연극적 요소를 과감히 섞었다. 극의 많은 부분이 레스타티브를 통해 진행되고 대사의 흐름 또한 연극을 많이 닮았다. 심지어는 연극배우 두 명을 조연으로 하여 노래를 부르지 않고 극을 진행토록 한다.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보다 대중에게 친근한 극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특히 연극의 요소가 들어가면서 오페라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격식과 관습들이 무너져 내렸다. 원래의 각본에 충실하다기 보다는 21세기 한국에 맞춰 바꿨다고 볼 수밖에 없는 농담들이 무대 위를 종횡무진 뛰어 다녔다. 원래 마술피리에서 ‘내가 송중기보다 잘 생겼다’는 말이 튀어나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심지어는 노래의 번역조차 ‘초콜릿 복근’, ‘물광 피부’ 등의 표현을 쓴 탓에 객석에서는 잔잔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조연으로 등장한 연극배우는 ‘무대장치가 고장났다’며 제 4의 벽을 넘나들었고, 동료 배우에게 똥침을 찌르는 등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연상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을 극에 포함시켰다. 어린 아이들도 까르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쉬운 공연이었다 하겠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정말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추천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소위 ‘각색된 대사’는 많은 부분 유치했고 파미나와 타미노의 사랑에 몰입하려는 순간마다 이입을 깨는 역할을 했다. 주연 가수들은 연기력이 한참 부족해 레스타티브 내내 그들의 과장된 목소리 톤과 어색한 감정연기를 인내해야했다. 노래는 파워가 부족했다. 마술피리를 처음 본 사람에게는 신기함과 함께 좋은 인상을 남겼을지 몰라도, 마술피리를 여러 번 보고 들어 노래를 이미 아는 이들에게는 그저 원래 알던 멜로디라인을 따라간다는 느낌밖에 주지 않았나 싶다. 밤의 여왕은 성량이 부족했고, 고음이 불안했다. 마술피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밤의 여왕 아리아도 기대만큼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극이었다. 오페라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쉽고 친근하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객석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 어린이들은 극 내내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고, 그만하면 충분히 즐거운 가족 나들이가 되었겠다. 싼 좌석은 2만원이니, 다른 오페라에 비해 많이 저렴한 것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저녁을 선사해 준 극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당시 시장바닥에서 공연되었다는 마술피리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고 상상하는 재미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여러 모로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러 갔는데 주말 연속극을 보고 나온 기분이었달까. 가볍고 재밌었지만 감동이나 여운은 남지 않았다. 마술피리는 철학적으로 생각해 볼 거리가 꽤 있는 극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이번 극에서는 그 모든 고민들의 실마리가 유치한 개그에 매몰되어 버렸다. 타미노의 시련은 그 시련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단순히 ‘불의 시련’ ‘물의 시련’ 이라는 제목과 함께 지나갔고, 자라스트로와 밤의 여왕은 확고한 선-악 구도를 끝까지 유지했다. 홀로 내팽개쳐진 밤의 여왕 앞에 인자한 자라스트로와 모두의 행복으로 극이 끝났고, 딸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은 그녀의 슬픔은 오로지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장식으로만 쓰였다. 여러모로 극히 일차원적인 극이었다.
 
원작에 충실한 극과 많은 각색을 통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극 중 무엇이 더 ‘좋은 극’인지 판단할 권리는 내게 없다. 그러나 예술이란 단순한 오락 이상의 것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단순한 소비로 끝나지 않기에 예술이며,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이번 마술피리 공연이 나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고민하다가 이 글을 쓴다. 더 많은 생각과 잔상이 남았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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