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설레어함, 책 세 권이 가져다주는 기다림과 설렘의 미학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5.1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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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자에는 무슨 책이 담겨 있을까요?’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지는 홈페이지 ‘설레어함’의 첫 페이지 글이다.
필자가 설레어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학생식당에 구비되어있던 주간 잡지 속 무심코 보게 된 어느 기사를 통해서였다. 설레어함을 이끄는 사람들과 동기, 그들의 좋은 의도에 대한 소개 글을 보며 참 멋있고 대단하다고 느꼈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을 조금 빌려서 설명하자면, 설레어함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사장님들이 추천해주신 책들로 구성된 랜덤 책 상자이다. 6가지의 테마 중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주문하면 수십 년 간 청계천의 헌책방 거리에서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헌책 장인’의 안목에 의해 선정된 단 하나뿐인 책 상자가 꾸려져 배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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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나만을 위한’ 등의 문구를 강조하는 커스터마이징(custermizing)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설레어함이야말로 가장 트렌드를 따르는 고객맞춤형 책 상자가 아닐까? 내가 가장 마음이 끌리는 테마를 고를 수 있고, 게다가 헌책 장인께서 직접 골라주시니 그 기다림의 시간은 단연 설렐 수밖에!
 
 설레어함의 시작은 연세대학교 학생 동아리 Enactus(인액터스)의 ‘책 it out’ 이라는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 때만 하더라도 싼 값에 교과서며 전공 서적 등을 사기 위해 새 학기면 늘 북적였던 청계천의 헌책방 거리지만, 현재는 그때의 정겨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책방들이 경영난을 겪으며 문을 닫아 거리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책 it out’은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설레어함을 통해 청계천 헌책방거리 살리기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다.
 헌책방을 오랜 시간 묵묵히 지켜온 사장님들은 헌책방 거리의 재조명과 사람들의 관심으로 인한 활성화로 걱정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이고, 마우스 몇 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온라인이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누군가가 나를 위한 책을 골라주는 것과 그것이 과연 어떤 책일지 기대하고 기다리며 설렘을 느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빳빳하고 반지르르한 새 책이 아닌 사람의 손길로 인해 낡고 헐거워진 헌 책만이 갖고 있는 묘한 매력에 사로잡힐 것이다.
 
 ‘헌 책’. 이 짧은 단어만으로도 참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 헌 책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책의 가장 앞 페이지에 받는 이를 위한 짧은 덕담과 편지를 적어 선물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그 시절 가장 공감되는 문장에 몇 번이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 홀로 책을 읽다 새벽 감성에 사로 잡혀 시(詩)를 써내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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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들이 설레어함 한 상자를 꾸리기 위해 만들어낸 6가지의 테마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 테마인 ‘빛나라 지식의 별’은 인문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관련한 책들이 담겨 있고, 두 번째 테마인 ‘일상 속 여유 한 모금’에는 바쁘고 팍팍한 일상 속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학, 또는 힐링을 돕는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테마인 ‘새벽 2시 보다 짙은 감성’에서는 센치한 새벽 2시처럼 풍부한 감성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눈물 나고 아련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번째 테마에서는 ‘성찰과 사색 사이’라는 주제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문학과 에세이들을 담았다. 다섯 번째 테마인 ‘영화를 보는듯한 긴박감’에서는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소설들로 구성되어 재미를 추구하며 한 때 명탐정을 꿈꿔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안알랴줌’ 테마에서는 딱히 끌리는 테마가 없거나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100퍼센트 랜덤 책들로 구성된다. 테마를 선택해 주문을 하고 설레어함에 담긴 책들이 도착할 때까지, 나만을 위해 구성된 책이 담긴 박스를 풀어보기 전까지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설레고 행복한 것인지 새삼스레 느낄 수 있다.

팍팍한 일상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책을 읽으며 잠시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요즘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고 느껴질 때, 사람과 시간의 흔적이 담긴 헌 책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은 분들에게, 아주 과감히 ‘설레어함’을 추천해본다.



 
[홍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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