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그녀를 범죄자라 욕할 수 있을까 - 연극 '진홍빛 소녀'

글 입력 2016.05.0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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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트인사이트 문화리뷰단
유지은입니다.
 
지난 4월 30일,
대학로에 위치한 동숭아트센터에서
연극 '진홍빛 소녀'를 보고 왔습니다.
동숭아트센터는 항상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었는데,
꽤나 크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더군요.
대학로는
오래된 건물 지하에 자그마하게 위치한 소극장이라는
인식이 무색할 정도로
좋은 시설을 갖춘 극장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진홍빛소녀 포스터.jpg
 
 
연극 '진홍빛소녀'
 
 
2015년 최고의 2인극 <진홍빛 소녀>, 2016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으로 개막!
 
<진홍빛 소녀> 수상경력
제15회 2인극페스티벌 <진홍빛 소녀> 최우수작품상, 연기상 수상
2016년 공연과 이론 <진홍빛 소녀> 월례비평작 선정
2016년 유시어터페스티벌 선정
 
 
2인극 페스티벌은 15년 동안 이어져온 대한민국 연극을 대표하는 페스티벌 형식의 연극제이다. 15년이란 기간 동안 200여 개의 다양한 작품들이 선정되었고, 2015년 제15회 2인극 페스티벌에서는 창작초연작품 <진홍빛 소녀>가 공식참가작으로 선정되어 11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두 남녀의 사랑을 뼈대로 삼아 스릴 있는 사건으로 살을 채운 작가 한민규의 구성력과 장면이 전개될 때마다 하나씩 비밀을 풀어나가듯 밝혀지는 방화사건의 진실, 두 남녀 사이의 관계를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밀도감 있게 풀어간 이지수 연출가의 연출력이 흥미진진했었다는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진홍빛 소녀>는 제15회 2인극페스티벌에서 작품상 및 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린다. 나아가 2016년 1월에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보름동안 공연하였는데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의 ‘공연과 이론’에서 월례비평작으로도 선정이 되었다. 또한, 2016년 2월 유시어터페스티벌에도 선정되어 청담동 유시어터에서 보름동안 공연을 올리는 등 지속적으로 작품을 폭넓게 알리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하여, 극단 M.Factory는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극제에서 검증받은 작품인 <진홍빛 소녀>를 보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장을 만들고자 다가오는 4월 28일부터 5월 1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에서 열리는 본 공연을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의 일환으로 공연을 하는 바이다.
 
 
기획의도
 
현 사회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밝혀지지도 않은 채 제도 안에 탈바꿈되어 전혀 다른 기록으로 기록될 뿐이다. 본 작품에는 이러한 사회로부터 희생당한 아이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이 진실을 방관하며 다른 삶을 택하는 것의 선택권이 주어졌고 다른 한명은 그 제도 안에서 지내는 것 외에 선택권이 없는 삶을 부여받았다. 여기서 이 주인공 둘이 겪는 사회라는 것은 모두 다 선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안의 진실은 인간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악’ 이 공존하는 형태다. 이러한 사회 안에서 본 작품의 주인공인 ‘혁’과 ‘은진’은 희생양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둘은 또 다른 ‘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회는 이 둘의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고 이 둘의 괴물 같은 면만을 역사적 기록으로 삼는 지경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죄를 짓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지점이다. 방관 또한 죄가 되고 심판 또한 죄가 된다면, 근원적 문제는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의 환경으로부터? 아니면 환경을 벗어나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선택권마저 주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어느 부분을 문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본 작품 <진홍빛 소녀>로 던져보며 그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를 세상에 남겨주려 한다.
 

작가의도
 
한민규(작가)
 
‘ 내가 원하는 이야기에서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까지. ’
 
희곡을 처음으로 썼던 1999년. 그 때 당시 나의 글을 봐주었던 문학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글이 강점이라고. 하지만... 사회에 나와 당선을 노리며 썼던 글들은 엄연한 스토리텔링 공식 위주의 글쓰기였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이냐,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이냐를 어느 순간부터 심도 깊게 고민하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보다는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었다. 이러한 고민을 풀기 위해 학교도 수없이 다녔고 대학원을 졸업해서 다시 학부로 가서 새로운 전공에 입문하는 등 연극, 극작, 문학 등 배움에 미쳐서 대학교, 대학원 졸업장을 네 개나 따는 과정 동안에도 이러한 고민은 늘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해를 거듭하고 나서 우연치 않게... 정말이지 우연치 않게... 길을 지나가다가 불이 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구조대원이 오기까지 사람들은 구경에 구경만을 일삼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사고현장을 찍기 바쁘더라. 안에 ‘사람이 갇혀있다’는 말들이 혼란스럽게 오고 갈 지경에 마치 구경거리가 생긴 마냥 보는 사람들, 걱정하며 보는 사람들, 그저 방관하며 지나치는 사람들... 등 한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보였다. 결론적으로 구조대원들이 오기까지 나부터 나서서 화염 속으로 뚫고 들어가려고 시도해본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도 그저 마음을 졸이며 구조대원들에게 연락하고 빨리 구조해달라는 말뿐이었다. 나 스스로 그들이 오기까지 화염 속으로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것인가... 지금도 이 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비겁한 나의 변명에 나를 욕할 뿐이다. 골든타임이라는 시간은 늘 존재한다. 그 시간 안에 구조대원이 항상 도착하리라는 법은 없다. 이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묵묵히 방관하기에 바쁘다. 지금도 각종 SNS를 보면 타인들의 사고 현장이나 범죄현장 등 비인간적인 현장들을 찍은 동영상들이 즐비 한다. ‘그럴 시간에 말리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과연 그것이 내 세계관 안에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 또한 든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세계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였다. ‘방관도 죄가 된다.’, ‘방관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나약함’,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방관이라는 죄를 짓는 것이라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것 등의 온갖 날 것 그대로의 주제의식으로 무장된 내 손이 머리보다 말보다 컴퓨터 키보드를 먼저 두들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보니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문학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던 날 것 그대로의 글들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완고했을 때 난 ‘내가 원하는 이야기’ 라고 생각했지만 이지수 연출님께서는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 로 바라보았다. 본 작품이 바로 <진홍빛 소녀>이다. 이렇듯 이지수 연출님과 하형주 드라마트루기 선생님은 ‘내가 원하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진홍빛 소녀>를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로의 접점을 만들어주셨다.
 
 
드라마트루기의 의도
 
<진홍빛 소녀>
하형주(드라마투르그)
 
한민규 작의 <진홍빛 소녀>는 자신의 안일한 삶을 위해 다른 이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병들어 있는 모습을 고아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극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고아원에서 만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은진과 이혁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낸다. 특히 은진은 어린 시절부터 고아원 원장에 의해 강제성추행까지 겪게 되면서, 더욱 더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구원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이혁에게 마음을 준다. 하지만, 이혁이 입양을 가게 되고 둘은 그들이 18살이 되면 결혼을 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18살의 생일에 고아원을 들린 이혁의 실수로 창고에 화재가 발생한다. 이때, 은진은 자신의 소름끼치는 고아원생활, 고아원 원장으로부터의 강제추행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자신을 돕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감시하는 그들 모두를 증오하며, 이들이 화염을 피해 밖으로 도망쳐 나오지 못하게 문을 잠근다. 결국, 고아원 사람 모두가 죽게 되고, 방화범으로 잡힌 은진은 이혁의 실수를 말하지 않고 무기징역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은진의 기대와 달리 이혁은 은진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다른 여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아간다. 은진은 자신을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이혁을 찾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징역 기간에 주어지는 사회적응 프로그램인 4박5일 귀휴기간이 종료되었음에도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작품의 미덕은 자기합리화와 이기로 병들어있는 사회체제를 단순히 드러내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은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답을 찾아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지수 연출에 의해 형상화될 <진홍빛 소녀>가 기대된다.
 
 
noname01.jpg
 
noname02.jpg
 
 
진홍빛소녀
 

연극의 매력은 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연출, 시간이나 공간의 이동이 유연하다는 것이다.
티비 속의 영상의 화려한 연출에 익숙한 나머지,
사람들은 소극장 안에서
한정된 세트, 조명으로 연출해내는 이야기에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티비 속 연출은 상상하지 않아도
눈으로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상상이라는
불편한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진홍빛소녀'는 달랐다.
영상편집을 주로 하는 나에게도 연극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극이 끝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연극이었다.
솔직히 나조차도
연극을 보는 내내 은진이
도대체 ​이혁에게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아채기는 어려웠다.
이혁이 하는 말에 오히려 동조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방관하는 자세로 살아왔던게 아닐까?
마지막,
은진이 이혁에게 남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말도 하지않는다고 해서 할말이 없는건 아니라고,
다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이라고.
그렇게
은진은 이혁의 집에서 나선다. 맨발로.
은진이 집을 나간뒤,
이혁은 길었던 하룻밤을 창문너머 햇살로 실감한다.
그리고
거친 행동과 험한 욕설로 은진이 떠난 자리를 메운다.
​그러나
곧 이혁은 흐느끼기 시작하고,
은진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극의 조명은 페이드 아웃된다.
은진은 어디로 갔을까?
은진은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일까?
이혁은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갈까?
은진과 이혁을 통해 자기합리화와 이기적인
현대 사회의 냉소적이고 무자비한 체제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 보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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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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