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박이처럼 똑같은 벚꽃 구경이 지겹다 [문화전반]

글 입력 2016.04.0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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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뭄의 목을 축여줄 비가 지난 밤 내내 내렸다. 지난 밤 나는 오랜만에 카모마일 티를 한 잔 진하게 우려내 창가에 앉았다. 간만에 여유롭게 맡아보는 밤의 냄새, 그리고 봄비 냄새. 그 촉촉한 냄새에 젖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이 봄비로 벚꽃잎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아직 제대로 된 꽃구경 못했는데...' 걱정되었다. 어젯밤 거센 비 때문에 많이들 걱정했을 것이다. 모두의 생각이 통하기라도 한 듯, 아침 일찍부터 날씨가 맑아졌고 다행히도 여린 벚꽃잎들은 나뭇가지에 씩씩하게 매달려있었다.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대학생들에게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한동안 혹독한 추위에 얼어있던 우리는 따뜻한 봄기운과 섬세한 봄꽃들을 보며 움추렸던 몸과 마음을 이제 좀 펴보려는데 하필 시험이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 때문일까 유난히도 벚꽃이 더 예뻐보이고, 나도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벚꽃 구경에 가고 싶다. 시험은 기말고사도 있고 다음 학기도 있지만, 벚꽃은 지금 아니면 져버리니까 잠깐만 보고 오자며 마음이 통한 친구 몇몇과 함께 여의도 한강공원엘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순간. 세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벚꽃 구경하기 좋은 명소 중에 단연 1등인 여의나루역 2번 출구는 벚꽃 반 사람 반이었다. 누가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이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그 누구도 중간고사란 없다는 듯이 꽃을 즐기고 (사실은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있다. 잔디밭에는 어디에 돗자리를 펴야하나 고민될 정도로 돗자리와 텐트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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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한적하면서도 선선하고, 벚꽃이 보이는 자리를 찾다보니 어느새 열두 장의 전단지가 손에 쥐어져있었다. 마술쇼 같았지만, 재빠르게 시켜 먹을 음식을 골랐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답변에 바로 포기를 하고 주변에서 사오기로 했다. 매년 벚꽃 필 때마다 꼭 오는 여의나루지만,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욱 붐비고 점점 먹거리가 다양해진다. 한강 공원의 편의점에서 즉석 조리기로 끓여먹는 한강 라면. 여의나루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벚꽃보다 시선 강탈하는 닭꼬치. 그 옆으로 회오리 감자, 맥반석 오징어, 소세지, 핫도그.... 그리고 바베큐 돼지구이까지. '이런 것도 팔아?'라며 이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우리의 손은 계산하고 있었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손에 바리바리 들고, 좋아하는 맥주 한 캔씩 (부족해서 이후에 더 사왔지만.) 들고 돗자리로 향했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빠~밤~ 빠밤~" 벚꽃좀비 장범(봄)준의 '벚꽃엔딩'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다음 생에는 우리 모두 장범준으로 태어나자며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돗자리에 서로를 베고 누워 낮잠을 청한다. 선선한 바람, 적당히 들려오는 사람들의 활기찬 소리, 작지만 활력있는 봄 냄새는 모두를 잠재운다. 잠에서 깨면 벚꽃과 사진을 찍고 또 다시 먹으러, 마시러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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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같다. 벚꽃 구경하러 간건지 사람 구경하러 간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배만 두둑해지고 온 기분이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코스, 같은 음식으로 똑같은 패턴의 벚꽃 구경을 하고 있다. '벚꽃 판박이'가 되어간다. 여유롭게 봄의 향기를 맡으며 벚꽃을 구경하고 싶은 당신에게 몇 가지 스팟을 추천한다. 





1. 신대방 벚꽃길 

신대방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구로디지털단지까지 이어지는 벚꽃길(혹은 뚝방길이라고 부름.)이 시작된다. 벚꽃길의 왼편에는 다리가 있는데 그 밑으로 하천이 흐른다. 벚꽃길을 따라 쭈욱 걷다보면 가득가득 핀 벚꽃들이 터널을 만들어준다. 동네 주민들 위주의 한적한 길이기에 더욱 차분히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신대방역 근처에는 동작구에서 관리하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니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아도 좋을 듯하다. 신대방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보라매공원으로 갈 수 있는데, 인라인 광장도 있고 인공 암벽등반도 있다. 


2. 서초구 도구로

이수중학교 옆에 있는 도구머리공원의 언덕길을 쭈욱 올라가다보면 벚꽃나무가 가득하다. 10여년 전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벚꽃나무를 심었고, 점점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공원의 산등성이를 오르면 길이 굽이굽이 조성되어 있어서 도란도란 걸으며 산책하기 좋다. 무엇보다 오는 4월 16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구로 벚꽃 축제가 열린다. 차량을 통제하고,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시작된다고 하니 "보는 재미"가 한껏 더해질 것이다. 특히,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제품들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프리마켓(Free market)도 진행되는데 수익의 일부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라니 더욱 관심이 간다.


3. 안양천 벚꽃로

가산디지털단지 역 5,6번 출구로 나와 길따라 걷다보면 벚꽃로가 시작된다. 안양천을 중심으로 서울과 광명이 나뉘어져 있는데 안양천 주위를 벚꽃이 둘러싸고 있다. 그 길 이름이 무려 벚꽃로라고 한다. 벚꽃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신대방 벚꽃길처럼 안양천의 벚꽃로 역시 벚꽃이 터널처럼 조성되어 있다. 20여분 정도 가볍게 걷다보면 벚꽃로가 끝이 나고, 다시 뒤돌아 걸어오면 된다.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 수출의 다리 위에서 벚꽃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국립현충원

동작역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국립현충원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지만, 현충원은 정말이지 크고 넓기에 충분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무엇보다 국립현충원의 벚꽃은 수양벚꽃으로 다른 곳들 보다 더욱 풍성하다. 수양벚꽃은 수양버들처럼 꽃가지가 축축 늘어진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인지 하늘에서 벚꽃 뭉텅이가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다른 여리여리한 벚꽃들과 다르게 풍성하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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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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