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바리의 노래, < 바리abandoned > [문화전반]

글 입력 2016.04.17 19: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VOD_20111007_00042_THM.jpg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원형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오늘, 대중에게 그나마 잘 알려져 있어 친숙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신화를 몇 가지 꼽는다면 그중 하나는 저승으로 들어서는 영혼들을 인도하는 여신, 바리의 이야기가 꼭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학술적인 논의도 굉장히 많았을 뿐 아니라 여러 예술 작가들에 의해 소설이나 뮤지컬, 동화 등의 유형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재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고전 콘텐츠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바리가 지닌 여성성과 인간성의 특징, 영혼구원, 죽음과 사후 세계 등 현대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매우 아끼는, ‘바리’에 관한 아주 독특하고 감동적인 판소리 퓨전 앨범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2014년에 발매된 앨범 [바리abandoned]. ‘바리공주 설화’를 극작가 배삼식의 노랫말, 한승석의 창, 정재일의 연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530833304_1280x720.jpg
 


<앨범 수록곡>

01. 바리abandoned
02. 아마, 아마, 메로 아마Ⅰ
03. 아마, 아마, 메로 아마Ⅱ
04. 바리아라리
05. 없는 노래 (Title)
06. 건너가는 아이들
07. 빨래Ⅰ
08. 빨래Ⅱ
09. 빨래Ⅲ
10. 모르긴 몰라도
11. 너는 또 그렇게



  바리공주 설화 속에서 모티프를 얻어 버려짐, 떠도는 삶, 생(生)과 사(死), 희망 등의 인생사를 노래하는데 판소리가 우리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첫 느낌의 충격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통기타와 같은 우아한 서구적인 연주로 놀랍도록 한국적인 소리를 냈다. 단지 듣고 소비하여 끝낼 음악이 아니다.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집중해서 듣게 된다. 특히, 앨범 수록곡들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제목의 곡 ‘아마 아마 메로 아마Ⅰ,Ⅱ’에는 비극적인 사연이 있다. 

  네팔인 마덥 쿠워의 이야기. 1992년 한국에 불법체류자로 건너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다 5개월 만에 과로로 인한 심장 마비로 사망한 사건. 네팔의 가족들은 두 달 뒤에야 사망소식을 접하지만, 비행기 값이 없어 시신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마덥 쿠워는 두 달이나 넘게 냉동고 안에 누워 있었고 결국 가족도 없이 시신이 화장되어 뼛가루가 되어서야 고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가사>

고향은 서쪽 하늘가
눈 덮인 산들은 구름에 안겨
멀고 먼 히말라야
독수리 맴도는 아득한 벼랑에
벌들이 집을 짓는 초여름 저녁
야크 떼 울음소리
산기슭을 넘어오면
들꽃 점점이 돋아난 풀밭에
어머닌 무릎 꿇고 젖을 짜겠지요

아마, 아마, 메로 아마 
(엄마, 엄마, 나의 엄마) 
마프 고르누스 데레이 데레이 
(미안해요, 많이 많이)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네요.

너 있는 그곳 어딘가
차가운 눈길에 쫓기고 밀려
낯설은 서울 하늘
있어도 없는 너
달리고 달리다
끝내 네가 쓰러진 막다른 골목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사인불명 성명미상
병원 영안실 차가운 냉동고
네 몸은 어둠 속에 홀로 길게 누워

초라, 초라, 메로 초라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마프 고르누스 데레이 데레이 
미안하구나, 많이 많이)
찾아가고 싶지만 찾아갈 수 없구나.

고향은 서쪽 하늘가
눈 덮인 산들은 구름에 가려
멀고 먼 히말라야
하늘이 가까워 별들도 가까워
가난한 등불들도 별이 되는 곳
겨울밤 눈보라가
산등성이 내려와서
들창 가만히 두드리고 가면
어머닌 난 줄 알고 문을 여시겠지요

아마, 아마, 메로 아마 
마프 고르누스 데레이 데레이
초라, 초라, 메로 초라 
마프 고르누스 데레이 데레이



  죽음과 이별의 슬픔, 만나고 헤어지며 가뭇없이 돌고 도는 인생.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인간들은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없는 것을 노래하며 구원을 찾는다. 그 피 맺힌 한(恨)의 정서. 꽃과 물을 찾아 산 넘고 사막을 넘고 서천으로 가는 바리의 여정은 아름답지만 그만큼이나 고통이다.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 머나먼 망명길에 오른 어린 난민들이 존재하고 우리의 영혼도 역시 그 길 한 가운데 서 있다. 그 고통과 아픔을 가만히 그러안아 주는 바리의 품. 이 앨범의 곡들은 굿 노래다. 죽은 이들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아직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굿 노래. 수록곡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나면 판소리 완창을 함께한 것 마냥 마음 한편이 지치고 먹먹하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잠시 기분을 들뜨게 하는 용도로, 혼자만의 감미로운 감상에 젖고 싶은 용도로 찾는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가사, 가슴을 복잡하게 하는 메시지의 노래, 듣고 있으면 마음이 덩달아 무거워지는 음악들은 주류에 서지 못하고 한편으로 계속 외면 받아 왔다. 그러나 인간의 아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음악도 존재한다. [바리abandoned]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서 고통을 초월한 바리공주의 이야기이자 여전히 갈 길이 멀어 이 땅을 헤매고 있는 수많은 바리들을 위로하는 서사시다. 

  끝으로, 앨범의 타이틀곡인 <없는 노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고자 한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가사>

길 위에 한 아이
노래 부르며 가네
풀잎 같은 노래는
바람에 흩날리는데
반쯤 감은 두 눈에
불러도 대답없이
모르는 노래 하나
부르며 혼자 가네

새벽 어둠 풀잎 끝에 가만히 맺혔다가
아침 바람 불어오면 가벼이 돌아가는
한 방울 이슬처럼, 한 방울 눈물처럼
온다는 소식 없이, 간다는 기별도 없이
그렇게 가만히 찾아오는 그 노래
그렇게 가뭇없이 돌아가는 그 노래
슬픔도 없는 노래, 아픔도 없는 노래
미움도, 원망도, 그리움도 없는 노래
이 세상 어디에나 가득한 설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노래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눈에 들어와
듣고 싶지 않아도
그예 귀에 울려와
가만히 눈을 감고
없는 노래 불러요
없는 줄 알면서도
없는 노래 불러요

저 길에 한 아이
노래 부르며 가네
별빛 같은 그 노래
멀리서 가물거리네
동그만 어깨 위에
어스름 내리는데
세상에 없는 노래
부르며 멀리 가네.



한승석%26정재일_앨범_발매_기념_기자간담회.jpg



<아티스트 소개> 

배삼식: 인문학의 깊이와 철학적 사유가 담긴 글로 여러 장르의 밑그림을 빼어난 솜씨로 그려내는 최고의 극작가.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탁월한 구성력과 맛깔스런 대사로 주목 받아 왔다. 

정재일: 천재소년에서 아티스트로 성장한 슈퍼멀티플레이어. 10대에 ‘긱스’의 멤버로 활동했으며, 최정상 아티스트의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영화나 공연을 위한 음악, 전시 및 설치, 퍼포먼스와 융합된 음악 표현 등 전방위적으로 그의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승석: 판소리와 굿음악, 타악까지 두루 섭렵하고, 이를 바탕 삼아 이 시대의 판소리가 담지해야 할 인간적 가치와 음악적 양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소리꾼. 위엄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함과 강렬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매력적 음색의 소유자로 현재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멜론Melon






김해서.jpg
 

[김해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