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토록 아름다운 흑역사라니, 게코 작가님의 올레마켓웹툰 - 커피와 스무디 [문화 전반]

모든 간절함은 의미가 있다.
글 입력 2016.04.0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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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어떤 것이 가장 어려운지 질문을 받는다면 저의 답은 변함없이 단 하나입니다. '인간관계'

전 제 자신을 이해하는 것부터 다른 사람들과 크고 작은 관계를 맺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아직도 전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때로는 제 기분이 이유도 모르게 왜 좋거나 나쁜지 혹은 왜 묘한 기분이 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속엔 제가 너무도 많아서 가끔은 늦게나마 깨닫게 되면 다행일 지경입니다. 제 자신도 모르니 다른 사람에게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적 저에게는 인간관계에도 유토피아같은 꿈이 있는데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능력부족이나 성격문제였을까요 소수와 잘 지내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저는 늘 말이 많았고 글을 써도 분량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제 생각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고 나면 그 때의 개운함과 뒤늦게 찾아오는 나름의 깨달음을 즐기는 편입니다. 가끔 오글토글한 내용을 sns에 쓰곤 하지만 그건 흑역사에 들지도 못합니다. 진짜 흑역사는 제 마음 속에서 차마 말하기도 힘든 내용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제 모습을 알았을 때 혹시 동정 혹은 비웃음을 사고 싶지 않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저는 제 섬 안에 수많은 흑역사와 비밀을 간직하고 살고 있습니다. 자존심과 체면, 들키고 싶지 않다는 걱정이란 포장지로 돌돌 말아 그 기억들을 한 구석에 깊이 묻어놓았습니다. 혼자 가끔 꺼내보면서 때로 후회하고 다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곤 합니다. 

커피와스무디.PNG


 그런데 여기 자신의 흑역사를 대문짝만하게 쓰면서 오히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게코 작가님의 올레마켓웹툰 <커피와 스무디>입니다. 매 화마다 작가님의 수많은 고민과 스스로에 대한 기억들을 볼 수 있어서 만나보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친해지고 빠져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게코 작가님의 흑역사는 다채롭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자기 하나 건사하기 힘든 멘탈때문에 아버지께도, 할머니께도 참 후회스러운 말과 행동을 많이 했었고, 그보다 더 어릴 적에는 껌을 훔치거나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SNS에 힘들고 외로울 때 글을 남겼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어린 연락을 잔뜩 받은 적도 있고, 무려 특별편에서는 자신의 매력적인 주사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합니다. 외로움을 참지 못해 괴로워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신을 고백하고, 왕따를 당해서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마저도 공유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부끄럽고 민망한 흑역사를, 자신의 취향이나 자신의 이야기, 인간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결론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걸까요? 작가님 스스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서도 있지만, 어떤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자기 이야기를 함으로써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그로 인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합니다. 실제로 독자 중 하나인 저도 저와 생각이 많이 비슷해서 많이 공감하기도 했고 수많은 일들을 겪은 그 흔적 속에서 제 마음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된 적이 많습니다. 멋진 그림실력만큼이나 에세이를 방불케 하는 멋진 문장들을 마음 속으로 되뇌어 말해보고 의미를 곱씹으면서 말이죠.
 

14하드보일드하드런.PNG
 


남들이 보기엔 어리석다고 해도, 
기대하기-사랑하기-실망하기 를 멈추지 못하는 자신.
그런 자신을 알아채고, 또 믿고 있다면,
나는 그만큼,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14화 [하드보일드, 하드 런]



41화마음을다해부르면.JPG
 


세상에는 
운을 통해 성공하는 사람도
노력을 통해 성공하는 사람도
재능을 통해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내가 
그 중 어디쯤에서 있는지,
도대체 어디까지를 성공으로 불러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간절함은 의미가 있다."

-41화 [마음을 다해 부르면](그림 그려도 돼? [中])



54화조인.jpg


이런 꿈을 꾸고 나면 한동안은 우울하다

하나는 내게 더 이상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그늘이 
아직까지 나를 흔들어 놓는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을 향한 내 증오의 기저에 있는 것이
사실은 불덩이 같은 복수심이 아니라
"사실은 너를 완벽히 미워하지 못해"라는 
연약한 심리라는 것을 확인받기 때문.

이상하다.
그렇다면 난 그 관계에서
여전히 희망이나, 그사람이 가진 좋은 구석을 믿고 싶어하는 걸까?

그 증오는
어쩜 나를 향한 것이었을지도.

그 때 되돌려주지 못한 나의 분노가
차마 나 자신을 원망할 수 없어 너를 향한 것이었나

최고의 복수는 '잊는 것'이라던데
이젠 조금 알 것도 같구나
그런 나 자신을 이제는 다독여줘도 된다고.

-54화 [미안해 널 미워해]



 개인적으로 제 마음에 콕콕 박혔던 문구들 중 몇 개를 소개해봅니다. 너무 가벼운 웹툰을 기대했다면 골치아픈 주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친한 사이도 가족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흑역사의 본고장 사춘기 때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술을 먹고 어떤 난리를 피웠는지 등등 별로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에 대해선 쉽게 공유하지 않으니 별일이다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코작가님의 <커피와 스무디>를 보다보면 흑역사가 이렇게 아름답고 멋질 수 있나 새삼 놀라곤 합니다. 매 화를 보면 조금씩 속좁았던 나를, 용기가 없었던 나를 있는 그대로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기회가 더 생기곤 합니다. 어차피 아무리 도망쳐보아도 흑역사는 당사자인 우리 스스로가 기억하고 있으니 도망칠 수가 없지만 그 기억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하는 힘을 주곤 하는 것입니다. 사람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힘들 때 더더욱 빛을 발하는 웹툰 <커피와 스무디>, 적당히 무게감있고 낙관적이지도 염세적이지도 않은 게코작가님만의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추천합니다. 

-이 글은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ART 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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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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