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에스트로들의 아지트, 루체른

글 입력 2016.03.0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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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들의 아지트, 루체른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나는 오케스트라의 올스타군단이라고 불리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도쿄와 파리에서 두 차례 구경했다. 2006년 10월 13일 도쿄 산토리홀에 등장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세 곡(소프라노 라헬 하르니쉬)과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을 감동적으로 연주했다. 이것이 결국 아바도의 마지막 방일무대로 남게 되어 이제 와서 뒤돌아 보면 더욱 애틋한 감이 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0년 10월 20일 아바도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처음 파리에 들러 말러 교향곡 9번을 신들린 주술로 수놓았다. 이 또한 나에게는 비교불가의 악흥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루체른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두 번 모두 루체른 아닌 도쿄와 파리에서 감상했으니 나는 언젠가 루체른을 방문하리라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 같은 루체른행에 대한 염원은 2015년 8월 31일 월요일이 되어서야 실현됐다. 당일 오전 밀라노 중앙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루가노를 지나 루체른 중앙역에 오후 늦게 당도했다.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오는 길목의 차창 밖 풍경은 특히나 아름다웠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미리 예약해둔 여인숙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서 트램을 타고 도착한 KKL(루체른 문화 콘그레스 센터)는 루체른 중앙역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루체른호를 지척에 끼고 흡사 날개를 한껏 펼친 자태로 후련하게 솟아 있는 KKL을 만나고 보니 이건 또 다른 별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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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른 KKL 외관 / ⓒLucerne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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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른 KKL 외관 / ⓒKetter


- 넬손스와 래틀이 전해준 판이한 감동의 수위

그 날 저녁 KKL 콘체르트잘에서의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회에 늦지 않게 입회한 나는 국내 유수 콘서트홀에 비해 나을 게 없는 내부를 둘러보고 그저 먹먹한 기분이었다. 무대 정면 상부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빼면 전체 1898석의 객석이 던져준 첫인상은 평범함 이상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1층 좌측 맨 앞열에서 보스턴 심포니의 무대를 관람했다. 프로그램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환상변주곡 ‘돈키호테’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요요마의 협연으로 전개된 ‘돈키호테’에서 어느덧 환갑의 요요마는 능청스런 표정연기를 첼로에서 십분 우려내며 비르투오소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럼에도 넬손스가 이끈 보스턴 심포니의 매무새는 명인기를 뽐내는 종류의 오케스트라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조금은 어눌한 듯 투박하게 끌고 가는 넬손스의 리드가 나는 불만이었다. 막간 휴식 후 연주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또한 칼날처럼 번뜩이는 날카로운 분절과 작품 특유의 광채가 실종된 평이한 해석이었다. 현재 보스턴 심포니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겸임하고 있는 넬손스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다. 2009년과 2010년 파리에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넬손스가 들려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드보르자크 무대도 나에게는 표피적인 해석으로만 들렸기에 그에 대한 판단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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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 ⓒPKETT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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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 ⓒPKETTERER


이튿날 저녁 같은 장소에서 대면한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브리튼과 쇼스타코비치 무대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실연으로 자주 들을 수 없는 브리튼의 ‘프랭크 브리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은 광풍에 가까웠다. 스트링의 윤기가 풍윤히 흐르는 브리튼에서 래틀은 동향의 명장만이 구현낼 수 있는 생득적인 일체감 같은 기운을 악상에 불어넣었다. 잇따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의 1악장에서 래틀의 어택은 노도의 포효 그것이었다. 이 희귀한 레퍼토리들을 처음 찾은 루체른에서 감동적으로 들려준 래틀과 베를린 필에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래틀의 베를린 필 수석지휘자 임기도 이제는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동악단을 이끌고 내한하기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 사정에서 2년 만에 루체른에서 해후한 래틀과 베를린 필의 조합이 선사한 명연주는 오래도록 기억 속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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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의 2015 루체른 음악제 연주회 / ⓒLucerne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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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의 2015 루체른 음악제 연주회 / ⓒLucerne Festival


- 루체른 음악제의 모든 것

루체른에서 루체른 여름음악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38년의 일이다. 이로부터 5년 전 대두한 나치의 발흥으로 바이로이트와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보이콧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중립국 스위스에서 루체른 여름음악제를 창설했다. 1938년 루체른 쿤스트하우스와 콘그레스하우스가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국제음악축제로 그 위풍도 당당하게 테이프를 끊은 루체른 음악제에는 카라얀의 베를린 필이 매년 출연하는 등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의 특급 오케스트라들이 격돌하는 오케스트라의 격전지로 이름을 알린 동음악제는 1998년 프랑스의 저명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KKL이 개관하면서 새로운 교두보를 마련한다. KKL은 1898석의 콘체르트잘과 740석의 루체르너잘, 270석의 오디토리움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다. 1998년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회로 개관테이프를 끊은 KKL은 이후 2003년 아바도가 베를린 필 퇴임 이후 새롭게 조직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보금자리로 기능하게 된다. 물론 동명의 악단은 이미 1943년에 창단되어 반세기의 수명을 다하고 1993년 해산된 전력이 있었다. 창단 초창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집과 에후디 메뉴힌 협연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듣노라면 애수어린 감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 향수를 아바도는 해산 10년 만인 2003년에 동명의 악단을 재창단하면서 되살린 것이다. 최초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주로 스위스 연주자들로만 구성되었음에 비해, 21세기 들어 아바도가 재창단한 동악단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유럽 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및 명솔리스트들이 의기투합한 꿈의 오케스트라였다. 2014년 벽두에 아바도가 타계하면서 하겐 콰르텟과 나탈리아 구트만 같은 명솔리스트들이 이탈하긴 했지만 지금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기량은 비교불가의 수준으로 존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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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른 KKL 콘체르트잘 / ⓒPeterFisch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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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른 KKL 콘체르트잘 / ⓒGeorgAnderhub LUCERNEFESTIVAL


더구나 2015년 루체른 음악제측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 아바도의 후임 음악감독으로 아바도와 같은 밀라노 출신의 리카르도 샤이를 선임했다. 그는 아바도가 생전에 동악단을 이끌고 유일하게 연주하지 않은 말러 교향곡인 8번, 일명 ‘천인의 교향곡’으로 ‘2016 루체른 여름음악제’의 테이프를 끊을 예정이다. 독창자 여덟 명의 명단 중에 한국의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 명상의 교부(Pater Profundus)로 출연한다니 빅 이벤트임에 분명하다. 토스카니니에서 시작되어 아바도를 거쳐 샤이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탈리아 마에스트로들의 루체른 연착륙이 어떻게 지속될지 또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루체른 음악제는 상기한 여름음악제가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성대하게 펼쳐지는 것과는 별도로, 3월 중 부활절 음악제가 열흘 가까이 개최되며, 피아노 페스티벌이 11월 중 일주일 남짓 또한 열린다. 이 모든 음악제들의 상주단체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위시해서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는 없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들을 여럿 보유한 데다, 세계 유수 악단들의 격전지로 정평난 것은 장점이겠으나 오페라와 발레 같은 무대예술을 유치하지 않는 것은 흠이다. 그럼에도 루체른 음악제를 찾아 세계 각지로부터 루체른을 찾는 음악애호가들의 발길은 80년 가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KKL 말고도 루체른 카지노 내의 연주회장과 루체른 호프교회에서 또한 열리는 수준 높은 연주회를 찾아 매년 루체른을 방문한다. 6만 인구에 불과한 스위스의 소도시 루체른에는 음악 외에도 비경으로 점철된 황홀한 삼라만상의 자연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루체른 호반의 영롱한 자태 말고도 알프스 산맥의 필라투스산이 굽어보고 있는 등 루체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루체른을 떠나오기 전날, 나는 취리히로 가는 새벽 첫 기차를 루체른 호반 위 카펠교에서 기다렸다. 야심한 자정의 한밤중인데도 꿈결처럼 백조 수십마리가 내 밑의 호수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야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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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른 KKL 외관 / ⓒPriska Ketterer LUCERNEFESTIVAL


이런 루체른의 정취를 국내에서 최초로 만끽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진다. 돌아오는 6월 24일과 25일 양일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제임스 개피건이 이끄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동악단은 1806년에 창단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임에도 국내에는 베일에 쌓여 있는 단체다. 상기한 루체른 음악제의 세 악단과는 별개의 단체로서, 루체른에서만 200년 넘게 활동해온 루체른 음악생활의 중추격이 되는 오케스트라인 것이다. 가장 루체른적인 울림이 무엇인지 궁금한 당신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날의 객석에서 내가 방문했던 루체른의 자연과 예술을 다시금 환기해볼 생각이다.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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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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