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참 신기한 사람 같아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분주한 백화점 안에서 테레즈는 고혹적인 모습의 캐롤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난 그 손님은 딸에게 줄 인형을 찾고 있다며 캐롤에게 선물 추천을 부탁한다. 딸의 선물을 찾기 위한 대화였지만, 그 내용은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묻고 있다. 선물을 주문하고 떠난 후 그 자리엔 캐롤이 놔두고 간 장갑이 놓여져있다. 테레즈는 고민하다 그 장갑을 캐롤의 집으로 보내게 된다. 그 때까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 둘은 주어진 모든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서로를 갈구하고 사랑하게 될 줄을 말이다.
"진짜 사랑에 빠져본 적 있어요?"
"당신은 아직 내 아내야"
"우연이란건 세상에 없어요"
두 사람은 함께 떠난 여행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더 확신하게 된다. 인물 사진을 찍는것이 마치 누군가의 사생활에 끼어드는 것 같아 꺼려하던 테레즈는 순간마다 카메라를 꺼내들어 캐롤을 찍는다. 어느 누구의 시선에 상관없이 즐겁게 웃고 떠들며 행복을 만끽한다. 여행을 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사람의 거리도 점점 좁혀졌다. 각자 다른 방에서 지내다 같은 방안에서 함께하고 마침내 한 침대를 사용했다.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시선을 느끼며 체온을 나누는 마침내 서로에게 서로가 마지막 '사랑'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랑이 묵은 옆 방에는 하지가 고용한 도청전문가가 있었다. 그 도청 기록으로 하지는 캐롤에게 딸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청구했고, 양육권포기를 종용했다. 이에 캐롤은 충격을 받고 테레즈를 친구에게 부탁한 채 마음이 담긴 편지를 두고 떠나게 된다.
"캐롤, 보고 싶어요..."
씁쓸한 여행을 끝내고 테레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캐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캐롤에 대한 그리움에 잠식되어간다. 결국 그녀는 캐롤에게 전화를 걸지만 응답없는 수화기 너머의 캐롤만이 확인할 수 있었다. 캐롤은 반복되는 의미없는 소송을 하며 지쳐갔고 결국엔 하지에게 양육권을 포기하겠다 한다. 그녀는 테레즈에게 만나고싶단 연락을 하지만 테레즈는 캐롤에 대한 원망을 표출해냈다. 그러나 그 원망 또한 사랑에서 파생된것이기에 테레즈는 약속된 장소에 나가게 된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다소 어색한 기운이 흐르는 분위기였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갑작스런 테레즈의 친구의 등장으로 만남은 끝이났지만 친구의 파티를 가면서도 테레즈는 온통 캐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파티에서 그녀의 전 남자친구인 리차드, 그녀에게 키스했던 대니 모두가 다른 이들과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했던 리차드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모습을 보아도 테레즈는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그녀의 진정한 사랑은 지금 다른 곳에 있음을 알고 그 사람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캐롤을 처음 봤던 그 순간 처럼 두 사람은 시선을 나눈다. 누군가에겐 마지막이, 누군에게 처음이 된 진정한 사랑을 마주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랑스러운 영화, 캐롤
처음 이 영화의 예고편을 영화관에서 접했을 땐, 그저 '그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인줄 알았다. 그러나 캐롤 그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였다. 즉 영화의 포커스는 사랑을 하는 '동성애자'들에게 맞춰진 것이 아니란 점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무엇을 하는 '주체'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되었든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함에도 그 무언가를 하는 주체가 어떤것인가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할수도 갸우뚱하며 반문을 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캐롤은 이런 오래된 생각들에 대해 의문을 들게끔 하는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테레즈가 동성 연애에 대해 리차드에게 물어보는 장면에서 리차드는 그들은 사는 환경, 직업에 따라 무슨 계기에 의해 그렇게 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테레즈는 그들은 무슨 요인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원래 그러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사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나 또한 리차드와 다름 없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동성연애자들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것부터가 그릇된 생각이었다. 왜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의 방식은 당연한 이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는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가이다. 애초에 우리는 다른 이들의 사랑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몰입도는 굉장히 좋았다. 대사가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배우들의 눈빛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했다. 그들의 눈빛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눈을 깜빡거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1950년대의 도시의 모습과 여인들의 화려한 의상 또한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였다. 이 영화는 멋드러진 풍경이 많이 나오지 않음에도 멋스러운 영화였다. 인물들에 게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그로 인해 복잡미묘한 인물들의 표정이나 생각을 읽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 중간중간에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적인 요소가 없어도 배우들의 행동이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을 자아낼 수 있었다. 청소년 관람불가이기에 다소 선정적인 요소들이 들어있었지만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이 영화의 주제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랑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그들의 사랑 또한 뜨겁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또다른 표현으로 하면 '내가 누구인가'라는 문장이 되고,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내 곁에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테레즈였고 캐롤이었다. 예고치 않게 찾아온 첫사랑에 혼란을 느끼며 눈물짓는 테레즈를 따라울기도 했고, 테레즈를 두고 떠나야하는데 남겨둘 건 편지밖에 없었던 캐롤의 애틋함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동성애자들을 인정하는 듯 인정하지 않는 리차드였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떠난 걸 알면서도 사랑을 놓을 수 없었던 하지 역시 나였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인물 사진을 찍는것이 누군가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 같아 싫다던 테레즈에게 카메라를 선물한 캐롤의 모습을 보며 캐롤은 테레즈가 자신의 삶에 끼어들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테레즈는 어느 새 캐롤을 찍으며 자신도 모르게 캐롤에게 젖어들어갔고, 그녀의 작업실에는 온통 캐롤의 사진이 걸려있음을 보면서 그녀의 삶에도 캐롤이 녹아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은 사랑을 위한 선택을 했어야 했다. 딸의 양육권, 애인과의 헤어짐, 주변의 시선까지도. 그러나 이런 선택을 했기에 서로를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처음이고, 누군가에겐 마지막인 그 사랑을 선택한 이들에게 당신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사랑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책임이 발생하기도 하고 포기해야할 것들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도 선택하고싶은 사랑이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깨달아야 한다. 캐롤과 테레즈는 용기 있는 자들이며 충분히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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