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완벽한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글 입력 2016.02.24 11: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기다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중고등학생때 급식시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종이 울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친구들과 뛰어가서 서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전 언제 도착하는지 앱으로 확인해서 맞춰 가는가 하면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으면 그를 기다리는 1 1분이 한시간 같은 전형적인 빨리빨리의 한국인이랄까. 그럼에도 기다리고 있을 때가 나았어하는 순간들이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타났을 때

헤어질걸 알면서도 인연의 끝을 놓아버리기 싫을 때,

나를 기다리는 저멀리의 무언가가 나를 아프게 할 걸 알게 되었을때.

매는 먼저 맞는게 낫다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그 때가 차라리 나았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젠가는 도래할 끔찍한 이별을 마주하기 전 순수하게 당신의 존재를 음미하고 사랑하고 기다리는 두 여인을 그려 낸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연락을 받고 남자친구인 주제페를 만나러 온 잔과 아들의 부고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어머니 안나. 연락이 닿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절규하며 기다리는 잔에게 그의 어머니는 언제 진실을, 어떻게 이야기 할지 지켜보는 관객은 어머니 자신만의 평온하고도 담담한 대응에 답답하기만 하다. (같이 보러간 필자의 어머니는 영화 도중에 심지어 주식을 확인하시기까지 했다.)


 

극적인 사건의 발생도, 눈물을 자아낼 대사 하나 없이 호수에 잔물결이 이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이 영화의 묘미는 서로 다른 기다림을 견뎌내는 두 여인의 묘사가 아닐까 싶다.


lattesa.jpg
 


 

부활절에 아들 주제페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며 주제페의 연인 잔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더듬는 안나는 유난히 클로즈업이 길다. 마치 중세시대 초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침묵이 가져다주는 평온함보다 눈 깊이 스며든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돌아올 것이라고 간절하게 믿는 바라는 소망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며 여운을 남겼다

부활절 이후 결국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순간의 미장센이 절정인데 360도로 돌며 그녀를 감싸는 시점은 

마치 주제페의 혼이 그녀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lattesa_still.jpg
 


 

이에 비해 잔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기약없는 기다림을 이어가는 모습이 화면 속에 일부분으로 마치 운명에 거스르지 못하고 흘러가는 자연의 존재로 포착된다. 주제페의 핸드폰에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고 사과를 빌며 어서 연락해줄 것을 진심으로 부탁하는 잔의 모습은 딱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주제페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의 존재와 그와의 관계를 곱씹어보는 잔을 보며 '오히려 그의 죽음을 모르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 그 상태가 더 행복한 거야,' 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었을 것 같다.


attesa_aa2.jpg
 


 

안나와 잔의 기다림의 여정은 결국 끝이 난다. 안나는 아들의 모습의 파편을 잔에게서 발견하며 자신이 몰랐던 주제페의 모습까지 껴안으며 진정한 이별 준비를 마치고 잔은 이상하리만치 불길한 예감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자신을 보며 혼란스러워 하지만 잔 또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벽한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진실이 회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예기간을 두며 누군가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고 더 사랑해 볼 수 있었던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그 나름대로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던 것이다


가슴 철렁한 반전도, 눈이 부시는 캐릭터도, 마음을 후벼파는 대사도 전무한 이 영화가 나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수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