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풋사랑이 이끈 이상과 현실이 맞물린 곳 '애러비' [문학]

제임스 조이스 - 더블린 사람들 수록작 '애러비'
글 입력 2016.02.24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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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바자회에 간다면 누나를 위해 뭔가 들고 올게요."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 수록작 中 '애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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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낯선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 소년의 몸은 낯선 그녀의 이름에 반응해 멍청한 피를 끌어모았고 그의 발걸음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자취를 훑었다.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소설 속 ‘나’는 소년의 피를 끌어모을 정도로 갑작스레 찾아온 사랑에 대해 어찌할 줄 모르며 시작되어버린 영락없는 첫 풋사랑을 시작한 사내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가 고대하던 애러비 바자회를 가볼 수 없게 되자 호기롭게 당신을 위한 것을 사 오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소년에게 애러비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해 사 올 물건들을 생각하며 날마다 애러비에 가는 것을 상상한다.

 이렇듯 소년의 모습에서 보이는 어린 나이에 겪는 풋사랑은 순수함과 살짝은 치기 어린 젊음을 가진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성석제 작가의 작품인 [첫사랑]에 등장하는 ‘나’를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 ‘첫사랑’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나’는 마치 애러비 속 소년의 모습처럼 한 아름 빵과 튀김을 가져와 툭 던져 놓고 가는 ‘너’의 모습을 계속 생각하며 처음 겪는 묘한 감정에 ‘너’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나’는 말수가 없던 ‘너’의 툭 내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와 자신과는 다른 ‘너’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마음에 담는다. 



 나는 산만한 생각을 한데 모을 수가 없었다.
 
인생의 심각한 문제들에게 내가 할애할 시간은 거의 없었으며,
내 욕망과 내 사이에 가로막고 서있는 바로 지금,
내게는 지루하고 추한 어린애들의 놀이같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 ‘나’(첫사랑 속의 ‘나’)는 자신과는 다른 성숙한 모습을 하고 있던 ‘너’가 보여준 첫 성인의 관계에 의해 가지고 있던 ‘너’의 이상적인 모습을 깨버리고 혼란스러워한다. ‘나’가 가지고 있지 않던 모습을 ‘너’에게 발견하고 시선에 담음으로써 그를 알게 모르게 동경하고 ‘이상화’ 해온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발견한 어른의 모습에 이상화된 ‘너’의 모습은 지워지고 ‘나’가 담고 있지 않던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그의 모습만이 남는다.

  이렇듯 순수한 소년의 사랑으로 인해 환상적인 공간으로 둔갑한 애러비는 곧 소년에게 비정한 현실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곳은 ‘나’의 짝사랑으로 인해 이상화를 거친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소년의 짝사랑의 대상인 누나는 사실 성스러운 ‘성배’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애러비 바자회가 그녀가 수도회에서 해야 하는 비정보다 더 관심이 가는 일반적인 종교를 믿는 어린 여인일 뿐이며, 애러비는 그저 일반적인 물건들을 파는 시장의 역할을 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즉, 애러비에 도착한 ‘나’가 느끼게 된 감정들 즉, 비애감 끝에 느끼는 허영에 조종당하고 조롱당한 짐승 같은 모습은 묘한 감정에 의해 풋사랑을 시작해 짝사랑에 눈이 멀어 평범하기 그지없던 시장이란 공간과 그녀의 모습을 성배와 같이 이상화한 자신과 그것을 지키려 한 자신의 환상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며, 고통을 느끼는 것은 깨어진 이상 끝에 발견한 일반적인 현실을 바라보곤 풋사랑의 떫음을 느꼈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막 세상을 경험한 ‘나’에게는 지금 당장 애러비에서 마주한 자신의 상황이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첫 풋사랑을 겪고 비정한 현실에 의해 그 떫음을 맛보곤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처음 느꼈던 설렘이라는 감정에 의해 자신을 맡기던 그때의 순수한 감정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비정한 현실은 소년에게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소년은 이 경험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이 허영이라고 느꼈던 풋 감정과 쓰라렸던 좌절의 기억을 통해 좀 더 단단한 모습으로 새로운 사랑의 감정과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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