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 '반짝반짝 빛나는' [문학]

글 입력 2016.02.20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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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열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어쩌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연애 소설을 쓰고자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그 사람을 느낀다는 것. (…중략…)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을 하거나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용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을 하고마는 많은 무모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힐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다. 일본 3대 여류 작가로 손꼽힐만큼 인정받고 있는 그녀이다. 이 책은 비교적 그녀의 초창기 시절에 쓰여진 소설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이 바로 내가 처음 접한 그녀의 글이다.

책의 가장 첫페이지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면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대략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기본적인 연애 소설', 즉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짝반짝.jpg
 

'기본적인 연애 소설' 이라는 이 간단한 문장을 보고 즉각 떠올린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가. 아마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하는 그런 류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흔히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또 접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란 것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흘 전에 결혼했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에 대해 설명하기란 아주 복잡하다.



아내 쇼코는 (물론 심하지는 않지만) 술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는 알코올 중독과 함께 정서불안을 앓고 있다. 그리고 남편 무츠키는 내과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다. 그리고 또 하나 '곤'이라고 하는 연하의 남자 애인이 있는 '호모'이다.

기본적인 연애 소설에서 흔히 기대하는 남녀주인공도 아닐 뿐더러, 흔히 생각하는 '기본적인, 심플한 이야기'에 해당되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인 기본적이지도 않고, 상당히 복잡한 관계를 가진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991년이다. 아마 책이 쓰여졌던 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이 글을 접했다면 주인공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이미 책을 덮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일고 최근 이와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캐롤>이다. 사실 아직 그 영화를 보진 못했다. 캐롤을 이미 관람한 지인의 말을 빌려 적자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고, 나로써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라 말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써는 이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허나 공통점만큼은 바로 알 수 있다. 두 이야기 모두 '동성애'를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 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보고 혹은 무엇을 통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는가. 


사랑을 하나의 형태, 하나의 종류로만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간단하게 생각을 해보면 우리는 친구를 사랑한다는 것과, 애인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에서 '사랑'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다 다른 감정을 주고 받는다. 세상에 참으로 많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기에, 표현방식도 다르고, 취하는 행동도 다르다. 사랑하는 모습이 모두 다를 것이다. 각자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부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그 뿐이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남녀 간의 사랑도 다양한 모습들 중 하나인 것처럼.



아일리시 위스키를 마시면서 남편과 밤바람을 쐴 때 나는 아주 행복하다.

나는 그저 무츠키와 함께 둘만의 생활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나는 무츠키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지킨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보지 않았다.



돌아보며, 어서와, 라고 말할 때의 쇼코의 웃는 얼굴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옆에서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있는 수밖에 없다.
(…) 쇼코는 꽤 오래도록 울었다.

한눈에 금붕어의 진보를 알 수 있도록, 꺾은선 그래프를 그려 쇼코에게 선물하자.



열정적이고 뜨거운 것만이 사랑인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것을 차치하고서, 이렇게 서로를 지키고자 하고,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두고 감히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 역시 분명 '사랑'의 한 모습이다.

책을 가만히 읽다보면 쇼코와 무츠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처음 사랑을 알게 되어, 그 안에서도 가장 '순수한 감정'만을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았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가장 '기본'이라고 함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이게 바로 사랑이야' 라고 정의 내리고 있지 않다. 무수히 많은 각기 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무수히 많은 사랑을 정의 내리기란 불가능하다. 여기 쇼코, 무츠키, 그리고 곤, 세 사람의 관계 역시 무엇이라 정의 내리고 표현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책을 읽고 나면 그렇게 정의 내리려고 하는 것 자체가 매우 무의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로를 이토록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어찌 사랑이 아닐수가 있겠는가. 비록 그 안에서만이라 할 지라도,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책은 '사랑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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