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화와 역사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 : < 달빛안갯길 >

글 입력 2016.02.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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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 안갯길’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조선인 이선규가 총독부 산하에서 조선사편수회 일을 하면서 역사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한 축이다. 또 한 축은 만갑완이 부석사에서 탈출할 날을 기다리다가 의상대사와 선묘의 전설 속 선묘를 만나는 이야기다. 따로 진행되는 듯한 이들의 이야기가 서로 조화롭게 보이는 이유는 결국 ‘달빛 안갯길’ 속 모든 이야기는 ‘역사’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만갑완이 선묘와 만나는 ‘환상’에 해당하는 부분과 이선규가 역사를 편찬한다는 ‘현실’에 해당하는 부분은 ‘신화가 역사에서 가지는 가치’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하나가 된다.
  소기치는 진실한 역사를 그려내는 것보다, 일본 역사 속에 조선 역사를 포함하고 식민지 역사를 합리화하는 데 혈안이 된 역사학자다. 이선규는 소기치의 제자고, 그저 진실한 역사를 그려낸다는 생각 하나로 부석사에 온다. ‘사실’에만 몰두하던 이선규는 부석사에서 겪은 사건을 통해 점점 신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신화란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신화가 만들어진 시대의 맥락과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에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사실에만 집중하던 이선규의 역사관을 뒤흔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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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사편찬회의 간부인 일본인 소키치와 그가 기른 제자 이선규. 둘의 마지막 대화에서 소키치는 점차 역사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는 이선규를 향해 ‘안개처럼 허황한 것을 왜 믿느냐’며 타박한다. 또한, 그는 신화와 설화를 탐구하는 것이 가치 없는 일이라며 냉소한다. 그렇다면, 그는,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그들은 그 허황한 것을 왜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야기’의 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민중들이 민족의 역사가 담긴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하고, 결국에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 ‘민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정신적인 힘을 가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의 역사를 새롭게 규정해주고 정리해준다는 명목 아래 숨겨진 그들의 목적은, 사실은 자신들이 가려는 길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만갑완을 돕고, 이선규의 역사관을 흔드는 역할을 하는 선묘. 선묘가 보여준 판타지는 이 시대가 가장 원하는 판타지다. 세상이 올바른 역사를 만들 수 있도록 선묘는 내내 도와준다. 국정화 교과서와 소녀상 등 역사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 요즘, 어떤 역경 속에서도 올바른 역사로 갈 수 있게 도와준 선묘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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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하나씩 따져 보자면 '달빛 안갯길'은 허점이 많은 작품이다. 조선사편수회와 민갑완 망명 같은 '사실' 세계가 선묘의 환생이라는 '환상' 세계와 어울리는 모습은 좀 버겁고, 실제로 한사군의 위치 문제를 파고들었던 쓰다가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는 설정은 지나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견 거짓말처럼 보이는 신화와 전설이, 오히려 기록된 역사보다 더 큰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감동을 준다. 극의 재목처럼 무대는 주로 환한 달빛 아래 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다. 대개 극에서 이러한 안개와 같은 장치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구사하기 위한 장치로 많이 사용되는데, 전설 속 인물인 선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 장치들은 그 신비로움을 증폭시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는 마침내 ‘신화’의 가치를 깨닫게 된 이선규가 민갑완에게 “당신이 만난 선묘는 더 이상 안개 속 환상이 아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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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안갯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후대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힘쓰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될 만한 연극이다. 우리의 미래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길일지 모르지만, 역사라는 등불을 비추며 걷는다면 충분히 안전하게 한 걸음씩 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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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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