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본에서 만난 한국 도자기 : 이병창 컬렉션과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시각예술]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한국 도자기의 매력을 이렇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매우 드물다.
글 입력 2016.02.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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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에 수장된 아다까 씨의 한국도자 793점에 제가 모집한 301점의 한국도자와 50점의 중국도자를 합치면 5천 년에 걸친 민족문화의 흐름을 통시할 수 있고 관련된 도자연구가 한층 심화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의 모집품과 미술의 조사활동, 자료구입, 연구, 출판 등의 기금으로 제가 소유하고 있는 동경의 토지와 건물을 기증키로 했습니다.
 
이 기금이 한일문화교류, 친선과 발전에 유익한 도움이 될 것을 기원합니다. 신관 1층에 이병창기념 도자자료실과 한국도자전시실을 설치하여 개방하고 있습니다. 적극 이용하시어 훌륭한 연구논문이 학회에 끊임없이 소개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한국인 2, 3세 여러분도, 긴 전통과 풍요로운 역사, 문화의 모국을 자랑으로 용기를 가지고 밝은 신세기를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기 4332년 이병창"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을 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일본 답사 첫 날 비행기의 연착과 간사이 공항에서 입국 심사만 하는데 근 2시간이 걸려, 원래 계획했던 일정들이 모두 밀리게 되었다. 첫날에 교토로 가서 교류지를 보고, 둘째 날에 호류지와 도다이지, 그리고 마지막 날에 오사카성 천수각과 오사카 역사박물관을 도는 것이 이전에 생각했던 완벽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첫날에는 비교적 숙소와 가까운 오사카성을 보고 둘째 날에 조금 무리해서 고류지와 호류지, 도다이지를 모두 소화한 이후, 마지막 날에 계획에는 없었던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을 넣게 되었다. 일 때문에 일본에 머무는 지인이 마침 우리가 머무는 숙소와도 가까우며 꽤 의미 있고 새로운 가치의 도자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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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사이는 한반도 도자기 장인들을 영입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한국 도자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이병창 콜렉션> 이라 불리는 약 301점 가량의 한국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에게 뜻 깊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재일 사업가 이병창 박사가 기증한 도자기들은 그 질과 수준이 매우 높다. 고려 청자부터 조선 백자까지 뛰어난 가치를 지녔다고 인정받은 도자기만 엄선해서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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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료는 500엔이다. 자고로 박물관 관람료는 그 나라의 영화 티켓 값 정도는 해야 한다는 유홍준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일본은 모든 고궁과 박물관이 유료이다. 유럽여행을 갔을 때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의 박물관이 무료이거나 자유롭게 돈을 넣고 들어가는 기부 형식에 익숙해서 그런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유럽은 약탈 문화재가 많기 때문에 무료로 운영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대중교통도 비싸고 입장료도 비싸 하면서 툴툴댔지만, 그 안에 보존된 유물과 문화재들을 보면서 돈을 더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미마셍’ 이라는 말이 일상화될 정도로 예의가 몸에 익은 일본인들의 기질은 이런 박물관과 문화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화재를 관리하는 인력뿐만 아니라 관람객들도 문화재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감상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고궁과 박물관들도 무료입장에서 벗어나 관람료를 인상해야 그 가치와 품위도 함께 올라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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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바로 이 자연 채광이다. 건물 외관이나 내부는 단순해서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는데, 전시실로 올라가려는 이 계단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자연 채광 방식을 적용하여 인위적인 조명 없이도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가지각색으로 빛을 반사하는 도자기의 특성을 세심하게 신경 쓴 점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도자기는 입체적이고 재료와 유악 등의 처리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보이기 때문에 조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무슨 차이가 있을까도 싶었는데, 확실히 인공조명에 비해 자연채광이 도자기 본래의 색상을 잠 감상할 수 있었다. 마치 뭐랄까, 정말 예쁜 풍경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그 결과물을 확인했을 때는 눈으로 보았던, 그 당시의 감정과 분위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아쉬운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눈이 자연채광, 카메라 렌즈가 인공조명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의견이었다.
 
  사실 자연의 빛으로 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늘 자연의 빛에 가장 오래 적응하면서, 또 자연의 빛으로 세상을 보면서 살아왔으니 말이다. 물론 요즘은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선크림 바르기 바쁘지만, 자연의 빛은 가장 정직하다. 옛 도공들도 도자기를 빚으며 자연의 빛 아래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찾아내려 애썼을 것이다. 아마 그들도 이런 자연의 빛, 자연의 밝기로 본인들의 작품을 바라봐주길 원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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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하면서 조명 다루는 일을 해 본적이 있어서 그런지, 도자기보다도 도자기를 비추는 조명 하나하나에도 눈길이 갔다. 중국 도자실은 천정이 높고 밝은 빛에 감싸있어 중국 특유의 크고 화려한 매력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한국 도자실은 천정이 낮고 조명을 낮추어 방 안에서 도자기를 접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나타내었다. 그래서 유물이 아닌 생활용품, 공예품으로서 더 가까이에서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한편 일본 도자실에서는 낮은 전시 케이스와 차분한 조명으로 좌석에서 도자기를 감상하는 효과를 자아냈다. 중국, 한국, 일본 각 나라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어찌 보면 그냥 쉽게 지나칠 수도 있을 만한 조명 하나하나에 투영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수식어밖에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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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 이외에도 일본의 잦은 지진에 대비하여 지진방지대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지진의 흔들림에 반응하면 내부 장치가 작동하여 전시품을 얹은 판 부분이 앞뒤좌우로 움직여 충격을 흡수한다고 한다. 가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이곳은 설사 지진이 일어난다 해도 귀중한 전시품들이 전부 온전히 살아 있을 것 같다는 무한한 신뢰감이 들었다. 도자기를 360도 감상할 수 있게끔 설치된 회전대도 인상적이었다. 보통 조각이나 도자기와 같은 전면을 감상해야 하는 전시품들은 내가 한 바퀴 빙 돌면서 보아야 하는데, 이 회전대로 인해 번거로움을 줄이고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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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은 한국도자실(고려시대, 조선시대), 이병창 컬렉션 한국도자실, 일본도자실, 특집전시실, 중국도자실(후한~송시대, 원~명시대), 기획전시실, 오키쇼이치로 컬렉션 비엔코 코너로 이루어져 있다. 이병창 컬렉션 한국도자실을 설명하기에 앞서 간단히 이병창 박사에 대해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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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왼쪽부터 이병창, 미와, 최태영. 1988년 후지미야시다문서에 대한 논의차 동경에 모인 세 사람 뒤로 골동품이 장식된 이병창연구실의 실내가 조금 보인다.)
 

  이병창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번 답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분이고, 이병창 박사가 이루어놓은 업적에 비해 이분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이병창 박사는 전북 익산출신에 이승만 정부 당시인 1949년 초대 오사카영사를 지낸 분으로 동경에서 목재무역업으로 입신했다. 한국 역사와 고미술에 깊은 애정을 지녀 많은 한국 미술품을 소장했다. 그가 일본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도 한국을 잊지 않고 고미술품을 그렇게 모아놓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일본 재계에 폭넓은 인간관계를 지닌 사업가로 일본에서 살면서도 종래 조국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구현하려 애썼다.
 
  평생 모은 301점의 한국도자기와 중국도자기 50점을 해서 총351점을 기증해 이루어진 그의 컬렉션과 동경의 집과 부동산을 처분한 연구기금이 1999년 한국 아닌 일본에 기증된 것을 두고 충격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기 전 그의 소장품을 두고 사건이 있었다.
  이병창 박사는 김영삼 대통령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그가 아끼던 고가의 백자를 한 점 기증하며 "온도, 습도를 맞춰 전시해 줄 것"을 바랐다. 박물관에서는 당시 '그만한 요구조건에 맞출 설비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돈을 내어 그런 전시실을 짓겠다' 했는데 그것도 안 될 일이었다. 결국 그의 기증품은 공개되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다시 서울에 와서 그 물건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는 절망하고 이 일을 잊지 못 했다.
결국 그의 컬렉션 일괄은 재일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자 한국도자를 수집한 아다까컬렉션이 있는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됐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이병창이 펴낸 책 <한국미술수선>의 편집자이며 안택산업에서 미술품관리자로 일했고 현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장인 이또 씨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유물보존 상황에 확신을 줄 수 있는 유능하고 좋은 전문가가 그를 설득할 수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틀어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도자기들이 굉장히 많았다. 정말 이색적이고 다양한 도자기들의 천국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더 이색적이고 수준 높은 도자기 몇 점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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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상감 연당초문 병과 청자양각 모란연화문병. 첨부한 사진들은 전부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홈페이지에 있는 것이다. 전시실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 아쉬운 마음에 급하게 스케치해왔지만, 내가 그린 그림과 같은 도자기가 없어 가장 비슷한 모양을 한 도자기 사진을 가져왔다. 뚜껑과 연결고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도자는 정말 처음 보았다. 보통 어느 한 부분이 소실되거나 온전한 경우가 거의 없는데 얼마나 보존이 잘 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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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후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철화 호랑이사슴문이다. 적당히 이지러졌으면서도 균형잡힌 몸의 비율을 잃지 않고 있다. 해학적인 호랑이의 모습이 참 재밌다. 철 성분의 산화로 불그레한 호랑이가 되어 해학적인 느낌이 더해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 민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는 잡귀를 쫓아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용맹스러운 남성성을 상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까치에게 당하는 이른바 우리네 양반의 허울 좋고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잘 풀어낸 그림이다. 막 어린아이가 장난치듯 그린 낙서 같으면서도 선 처리가 상당히 깔끔하다.
 
  그리고 이곳에는 모든 전시품마다 밑면, 도자기의 바닥 사진과 설명이 함께 게시되어 있다. 도자의 밑면에는 언제 어느 곳에서 누가 생산을 하였는지 등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악을 바라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그릇을 구울 때 바닥과 닿은 굽은 보통 유악을 닦아낸다고 한다. 유악이 열을 받으면서 바닥과 붙어버리면 그릇을 꺼낼 때 곤란하기 때문이다.) 가장 적나라하게 도자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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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청상감 연화문 각배. 이런 뿔 모양의 자기도 처음 보았다. 이병창 박사가 아니었으면 이런 진귀한 유물들을 볼 수 있었을까. 다시 한 번 신기한 도자들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던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백자철지. 은은한 옥색의 청자나 새하얀 백자만 봤지, 이런 두 가지의 단색이 선을 그은 듯 공존하는 도자는 또 처음 보는 것 같다. 15-16 세기 조선시대 도자인데도 마치 현대 미술 아방가르드 작품의 느낌이 났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마주치는 새로운 도자들은 교과서나 두꺼운 미술 서적에서 볼 만한 전형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 또 얼마나 독특한 도자가 있을까 하는 기대를 불어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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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12세기 청자 사자형 베개와 청자양각 쌍학문 베개. 청자로 만든 베개도 역시 처음이다. 내 방에 있는 푹신푹신한 베개보다는 불편하겠지만, 적당히 낮으면서 목을 받쳐주는 알맞은 크기의 베개였다. 희례 화병, 접시만 생각하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어쩌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생활용품들의 대부분이 도자기류로 만들어졌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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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자, 일명 달항아리. 예전에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었는데, 김환기 화가의 작품에는 달항아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외에 백남준 작가의 미디어 아트 속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수많은 달항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달항아리가 이렇게 맣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여러 이유와 그 가치가 충분히 논증되었지만, 나는 ‘손맛(?)’ 때문이라고 보았다. 압도적인 크기와 새하얀 빛깔이 주는 신비로움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달항아리는 매끈매끈하고 예쁘지는 않다. 울퉁불퉁하고 늘 어딘가 똑 떨어지지 않고 기울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장인의 솜씨를 탓할 수도 있지만, 기계적이지 않은 인간적인, 비대칭의 손맛이 달항아리의 매력인 것 같다. (어디서 들었는데, 큰 달항아리는 한 번에 물레를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반으로 나누어 두 개를 따로 만든 후에 붙여야 하는 매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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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채첩화 보상화문과 오채 모란문. 이름을 알기 전에는 녹색유약이 덜 말라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큰 병이랑 뭘 담아 먹기에는 아까운, 꽃들로 가득 찬 접시였다. 중국 도자실의 도자들은 우리나라 도자와 사뭇 다르다. 일단 굉장히 크고 화려하다. 뭐든지 크고 많은 중국의 의식주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여백의 미’를 중시했던 우리나라와 달리 회화적인 요소로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선호하는 문양과 색도 달랐는데, 우리나라는 선비의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가 많은 반면 중국은 황제를 상징하는 용과 자색(붉은 색) 계열의 도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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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모(씨름) 인형과 동백문 꽃무늬 발. 일본은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특히 아스카와 나라 시대에는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더해져 더 다채로워졌다. 중국과 한국에 비해 장식적인 느낌이 강하고 하늘색, 청록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로 가득 차 있어 전시실 분위기도 한층 밝아진 것 같다. 빛깔이 어찌 이리 곱고 선명할 수 있을까. 몇 백년 전의 그릇이 마치 몇 년 전에 만들어진 양 제 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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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에 한글 표기도 없고 한글판 팸플릿을 따로 부탁해야 복사한 종이 자료를 겨우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서러웠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전시품 앞에서 펜으로 끄적이고 있던 나에게 이런 연필을 쥐어주는 것처럼 철저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 또 우리나라보다 이곳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더 심해진 반일감정을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일본은 문화적으로 참 가진 게 많고 부러운 나라다. 요즘 일본으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에서 한국인이라고는 우리 일행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구구절절 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도자기들에 대해 설명하면 뭐하나 싶다.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한국 도자기의 매력을 이렇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매우 드물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큰 박물관과 미술관 내 마련되어있는 한국 전시실을 갈 때마다 실망을 안고 왔는데, 이곳은 부러움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이런 훌륭한 작품들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들게 만든다. 일본에 갈 일이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꼭 이곳에 들러 직접 한국 도자들을 마주했으면 한다. 백문이불여일견.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아니 거의 처음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아 어떻게 이렇게 좋은 한국도자가 이렇게 많이 일본에 와 있는 걸까. 우리는 수탈과 전란으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던 때 일본에서는 이런 호사가의 업적이 있었구나. 그것도 현대에 와서 단 26년 사이에 이렇게 압도적인 컬렉션이 가능했단 말이구나. 그렇다면 한국인은 과거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명품 도자들을 생활 속에 지니고 살았단 말인가.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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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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