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페라의 본가, 밀라노

글 - 음악칼럼니스트 김승열
글 입력 2016.02.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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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의 본가, 밀라노 >


글 - 김 승 열


밀라노에는 여러 차례 다녀왔다. 2001년 4월과 2006년 8월 밀라노에 들러 그 유명한 스칼라 오페라극장 문턱에까지 갔지만 나는 오페라를 관람할 수는 없었다. 2001년 첫 방문 당시에는 스칼라 오페라극장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었던 관계로 관람을 못 했고, 2006년 여름에는 오페라에 문외한인 죽마고우들과 어울린 데다, 짧은 밀라노 일정 탓에 오페라를 관람할 수 없었다. 이 모두 애석하기 이를데 없는 밀라노와의 만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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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무대와 객석 (Brescia/Amisano © Teatro alla Scala)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한 것은 2015년 8월 29일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였다. 전날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넘어온 나는 밀라노 중앙역 인근의 여인숙에 짐을 풀고 바로 스칼라로 향했다. 그 날 저녁 스칼라에서는 고전적인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의 푸치니 ‘라보엠’이 무대에 올라갔던 것이다. 아쉽다면 여름 바캉스철이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개점휴업중이었고,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끌고온 시몬 볼리바르 교향악단과 합창단이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를 책임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테너 라몬 바르가스의 로돌포와 소프라노 에일린 페레즈의 미미가 연인으로 분한 중량감 있는 무대였다. 철학자 콜리네에 명베이스 카를로 콜롬바라가 가세한 것을 빼면 나머지 캐스팅은 존재감이 미미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같은 제피렐리 연출의 ‘라보엠’을 지휘한 1965년도 영상을 본 적이 있기에 나는 이 날 무대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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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라보엠' (Brescia/Amisano © Teatro alla Scala)


그러나 두다멜이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교향악단을 지휘해서 구현한 푸치니 선율은 경직된 감이 짙어 자유분방한 ‘라보엠’의 기질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1,2막보다는 3,4막으로 넘어오면서 이들의 사운드는 농염해지긴 했으나 정통 스칼라의 소노리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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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라보엠' (Brescia/Amisano © Teatro alla Scala)


오히려 나는 스칼라의 정통 사운드를 2009년 11월 중순 파리 살 플레이엘서 체감한 적이 있다. 당시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모조리 파리 살 플레이엘에 공수해온 것이다. 첫날은 매머드 스케일로 유명한 베르디 ‘레퀴엠’을 밀라노 토박이 소프라노인 바르바라 프리톨리와 메조소프라노 소니아 가나시,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베이스 르네 파페의 호화진용으로 뻑적지근하게 수놓았고, 둘째날은 당시 84세의 피에르 불레즈 지휘로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바르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그것도 불세출의 비르투오소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바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으니 그 위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이전인 1996년 9월과 2004년 9월, 총 네 차례에 걸쳐 나는 서울과 고양에서 리카르도 무티가 이끌고 온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러나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단원 중 관현악 연주에 적합한 인물들만을 추려 1982년 새롭게 출범한 악단이다. 그렇기에 스칼라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무티의 두 차례에 걸친 당시 내한에는 스칼라 오페라극장 합창단도 배제되어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나에게는 2009년 11월, 바렌보임과 불레즈가 파리에서 펼쳐보인 무대가 스칼라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과시한 최고의 명연으로 남아 있다.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역사와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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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객석 (Brescia/Amisano © Teatro alla Scala)


밀라노의 현재 자리에 스칼라 오페라극장이 들어선 것은 1778년의 일이다. 당대 이탈리아의 저명한 건축가 주세페 피에르마리니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통수권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명을 받들어 단 2년 만에 스칼라 오페라극장을 지어냈다. 종전까지는 두칼레 극장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1776년 2월의 사육제 이후 발생한 화재로 두칼레 극장은 전소되고 만다.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이 입회한 가운데 열린 1778년 8월 3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낙성식은 살리에르의 오페라 ‘마음에 든 유럽’과 칸치아니의 발레 ‘아폴로 플라카토’가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극장이 스칼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교회가 원래 스칼라 오페라극장 자리에 있었던 것을 기념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 이름은 과거 밀라노를 지배한 비스콘티가에 시집간 베아트리체 델라 스칼라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초창기 스칼라 오페라극장을 주름잡은 오페라는 치마로사의 희극들이었다. 이후 로시니와 벨리니의 희극 오페라와 벨칸토 오페라가 프로그램의 메인스트림을 장식했다. 그럼에도 스칼라 오페라극장을 현재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은 바로 주세페 베르디였다. 1839년 이 곳에서 초연된 ‘오베르토’ 이후 1893년 ‘팔스타프’에 이르기까지 베르디는 스칼라 무대에 자신의 오페라 7편을 초연했다.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와 폰키엘리의 ‘라 지오콘다’, 카탈라니의 ‘라 왈리’ 같은 19세기 이탈리아 걸작오페라들도 모두 스칼라에서 초연됐다. 뿐만 아니라 푸치니의 ‘에드가’와 ‘나비부인’, ‘투란도트’ 같은 걸작들도 첫 햇빛을 본 것은 스칼라에서였음을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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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객석 (Brescia/Amisano © Teatro alla Scala)


말 그대로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극장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산증인이자 산역사인 것이다. 이 유서 깊은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거쳐간 지휘자들만 해도 전설 아닌 인물들이 없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1898년부터 1908년까지, 그리고 1921년부터 1929년까지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마리아 칼라스를 전설로 끌어올린 조력자이자 명지휘자인 툴리오 세라핀 또한 1909년부터 1918년까지 스칼라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했다. 20세기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명장 빅토르 데 사바타는 토스카니니의 후임으로 1929년부터 1953년까지 무려 24년을 스칼라의 우두머리로 있었다. 정명훈의 스승으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명장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또한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임했다. 이 시기 줄리니가 명연출가 루키노 비스콘티와 협력해서 칼라스를 비올레타로 기용한 ‘라 트라비아타’는 20세기 오페라사에 남는 명무대로 회자되고 있다. 칼라스의 전성기 또한 줄리니가 스칼라를 접수한 3년 동안이었는데, 칼라스는 생전에 자신과 일한 최고의 지휘자로 세라핀과 줄리니를 꼽고 있다.

1956년 줄리니의 퇴진 이후 후임자로 내정됐던 이탈리아의 천재지휘자 귀도 칸텔리는 동년 11월24일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이륙한 뉴욕행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급서하고 만다.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지명된 지 8일 만에 날아든 비보였다. 칸텔리의 사망 이후 스칼라는 10년 넘게 음악감독을 두지 않고 공석체제로 운영된다. 그러다 1968년 당시 35세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음악감독으로 영입되면서 스칼라는 예전의 활력을 되찾게 된다. 1986년까지 18년을 지휘하고 물러난 아바도의 후임으로 그의 라이벌 리카르도 무티가 입성하자 무티는 이전 아바도 체제와 각을 세우며 자신만의 스칼라 시대를 펼쳐보였다. 2005년 오페라극장 노조와의 갈등으로 불명예 퇴진하기까지 무티는 스칼라의 또 다른 황금기를 구현했다. 이후 난국수습의 중책을 부여받고 스칼라에 입성한 지휘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바렌보임은 바그너와 프랑스 오페라 같은 비이탈리아권 오페라를 무대화하며 새로운 스칼라 시대를 선포했다. 2014년을 끝으로 바렌보임이 물러나자 아바도와 무티를 잇는 정통 이탈리아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가 2015년부터 스칼라를 이끌고 있다. 샤이는 토스카니니와 세라핀, 사바타, 줄리니, 아바도, 무티를 잇는 이탈리아 지휘광맥의 최정상에 있는 거물이다. 그가 펼쳐보일 향후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미래가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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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외관 (Brescia/Amisano © Teatro alla Scala)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외관은 빈이나 파리, 런던 등지의 유수 오페라극장들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다. 그러나 로시니와 도니체티, 벨리니, 베르디, 푸치니 같은 이탈리아 유수 오페라작곡가들의 두상이 점령하고 있는 로비를 지나 들어가본 객석의 화려함은 대단한 것이었다. 총 3200석의 객석 중 1층에 722석, 2층에서 5층까지의 박스가 155실, 6층의 제 1 갈레리아가 204석, 입석 62석, 7층 제 2 갈레리아가 205석, 입석 86석으로 그 규모는 가히 매머드급이다. 애석하다면 시즌의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매년 12월에 늦게 시작해서 이듬해 5월에 일찍 문을 닫는 것이다. 내가 본 8월말의 이 날 ‘라보엠’은 외국 악단과 합창단을 초청해서 꾸리는 여름철 바캉스시즌에 해당하는 무대였다.


샤이가 몸담았던 밀라노의 또 다른 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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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노 오디토리움 정면 (Paolo Dalprato)


이제 막 스칼라에 입성한 이탈리아의 명장, 리카르도 샤이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음악감독으로 재임했던 오케스트라가 있다. 흔히 간과되지만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교향악단이 그 주인공이다. 1993년에 창단된 이 신생악단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밀라노의 음악명물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부터 중국의 여류명장 시안 장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동악단의 연주솜씨를 ‘라보엠’ 관극 이튿날인 일요일 오후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도 이들의 본거지인 밀라노 오디토리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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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노 오디토리움 객석 (Paolo Dalprato)


1999년 개관한 밀라노 오디토리움의 메인홀은 1400석 규모다. 이 곳에서 나는 주세페 그라지올리가 지휘하는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들었다. 니노 로타와 엔니오 모리코네 등이 작곡한 이탈리아 영화 황금기의 사운드트랙을 연주하는 이색적인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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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라노 오디토리움 무대에 선 주세페 베르디 밀라노 교향악단 (Paolo Dalprato)


비록 정통 클래식무대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들이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귀한 연주회에 열석한 기분이었다. 1939년 알레산드로 리미니에 의해 디자인된 마시모 영화극장을 복원할 목적으로 밀라노 오디토리움은 처음 계획되었다. 애초 계획과는 달리 지금은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교향악단의 상주 연주회장으로 기능하는 이 곳은 걸출한 음향으로 유럽에서도 정평난 곳이다. 비록 내 눈에는 흡사 대학강당과도 같은 수수한 매무새로 비쳤지만 막상 연주회가 시작된 후 기막힌 어쿠스틱이 진가를 발휘했다. 이런 곳에서 샤이 같은 명장이 6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나는 다시 한 번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진리를 되씹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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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노 오디토리움 무대에 선 주세페 베르디 밀라노 교향악단 (Paolo Dalprato)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건물은 둘째 문제인 것이다. 그 전에 건물이 담아낼 콘텐츠, 즉 오케스트라의 높은 수준이 우선적으로 선결되어야 마땅하다. 콘텐츠에 대한 궁리 없이 무차별적으로 호화찬란한 건물부터 지어놓고 보는 한국인들의 잘못된 마인드를 이제는 되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 날 밀라노 오디토리움의 객석에 앉아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교향악단의 명연을 감상하며 나는 다시금 이런 생각을 했다.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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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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