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나이게 해주는 것, 정체성의 본질에 대한 고찰 [문학]

'뷰티 인사이드'(The Beauty Inside, 2015) 그리고 '정체성'(L'identite, 1997)
글 입력 2015.12.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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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 정체성의 본질에 대한 고찰 :

영화 '뷰티 인사이드'(The Beauty Inside, 2015)와 소설 '정체성'(L'identite,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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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나이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나의 '정체성'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은 모두 주인공으로 한 '커플'을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러브라인은 거들 뿐, '뷰티 인사이드'의 이수와 우진, 그리고 '정체성'의 샹탈과 장마르크라는 연인 관계를 통해 (물론 초점의 차이는 있으나) 인간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1. 정체성이 있는 곳 : 내면

정체성은 외면이 아닌 내면에 존재한다.


   '뷰티 인사이드'의 두 등장인물 '이수'와 '우진'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하지마 '우진'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자고 일어나면 외모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수는 얼굴을 보고서는 우진을 찾을 수도, 먼저 알아볼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수와 우진의 연인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외모는 바뀔지언정 우진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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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우진의 얼굴이 계속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수는 처음에 큰 충격을 받지만 다시 돌아온다. 애초에 이수는 '외면' 때문에 우진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굴은 계속 바뀔지라도 자신과 교감하는 '김우진'의 본질, 즉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기에 둘은 계속 사랑하는 사이일 수 있다.

   소설 '정체성'의 등장인물인 '장마르크'(Jean-Marc)는 노르망디 해변에 가 있는 자신의 연인, '샹탈'(Chantal)을 찾고 있다. 샹탈의 모습을 발견하고 (확신한 채로) 가까이 다가가 보지만 샹탈이 아닌 다른 여자였음이 드라난다. 장마르크는 자신이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를 생각해 보는데,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녀와 다른 여자들의 차이가 그렇게 미미한 것일까?"


"사랑하는 여자와 다른 여자의 육체적 외모를 혼동하는 것. 그는 얼마나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던가! 그리고 항상 똑같은 놀람. 그녀와 다른 여자들의 차이가 그렇게 미미한 것일까? 이 세상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실루엣을 어떻게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p.28)


   외모만을 가지고서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구분해 내기조차 어렵다. '외모'는 나의 연인과, 연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척도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다.



2. 나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것 : 나의 이름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조건은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


   장마르크는 꿈에서 샹탈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샹탈을 쫓아가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장마르크는 그녀의 이름을 외치지만 고개를 돌린 샹탈은 자신이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낯선 외모를 하고 있지만 장마르크는 이 사람이 '샹탈'임을 확신한다. 장마르크는 이 낯선 여자의 모습에서 '샹탈'을 되찾고자 한다.


“샹탈, 내 사랑하는 샹탈, 샹탈! 그는 이런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그녀의 변형된 얼굴에 잃어버린 옛 모습, 그녀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불어넣어 주려는 듯했다." (p. 41)


   ‘이름’은 누군가의 정체성이다. 얼굴은 자신이 아는 연인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샹탈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샹탈만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해준다. ‘이름’의 중요성은 후반부에서도 한번 더 등장한다. 샹탈은 자신을 다른 이름(안)으로 부르는 남자에 불안함을 느낀다. 샹탈은 자신의 자아가 벗겨지고 있음을 느끼며, 그 남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샹탈을 불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겸허한 자세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처음, 그것은 그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우선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그녀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 주기를 바랐다.”(p. 177)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이 부정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누군가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다.

   다시 뷰티 인사이드로 넘어가 보자. 우진의 얼굴은 계속 바뀔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이수는 그를 계속 ‘우진’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수는 매일매일 외모가 바뀌는 우진을 ‘우진’이라고 불러줌으로써 그가 계속 ‘김우진’일 수 있게 해준다.


"난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어. 이렇게 매일 다른 모습이어도 괜찮아. 다 같은 너니까. 난 네 안의 김우진을 사랑하는 거니까."


   ‘우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지, 이수가 그를 ‘우진’이라고 부르는 이상 그는 ‘김우진’의 정체성을 부정당하지 않는다.



3. 고정된 정체성, 단일된 정체성이란 없다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장마르크는 샹탈의 달라지는 모습을 실감한다. 그가 오늘 아침 집에서 본 샹탈의 모습은 지난 밤의 샹탈의 모습이 아니며, 오후에 샹탈을 데리러 간 그녀의 회사에서 본 모습은 또 한번 변질된 존재의 모습임을 느낀다. 샹탈도 자신이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 나는 두 얼굴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한꺼번에 두 얼굴을 할 수는 없지. 당신 앞에서는 내 일에 대해 비웃는 얼굴을 하지. 사무실에서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p. 35)


   이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진과의 연인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힘이 든다. 매일 변화하는 우진의 외모로 인해, 직장에서는 그녀가 날마다 남자를 바꿔 만난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고 그녀 자신도 매일 다른 우진의 모습에 적응하기가 힘이 든다. 결국 이수와 우진은 헤어지지만, 헤어져 있는 동안 이수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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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것일까?
어쩌면 매일 다른 사람이었던 건, 네가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인간은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항상 같은 ‘나’일수 없으며 우리의 정체성도 매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며,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또 다를 수 있다. 속한 시간에 따라, 속한 장소에 따라서도 정체성은 바뀔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며 이질감을 느낀다.



‘정체성’에 대해 논한다는 공통점으로 두 작품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묶어 보았지만 사실 두 작품은 지향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 ‘뷰티 인사이드’는 가볍게 즐기며 볼 수 있는 반면, 소설 ‘정체성’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더 심오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뷰티 인사이드’에 맞추느라 소설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많이 빠졌지만, 개인적으로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은 한번쯤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밀란 쿤데라 작품은 읽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을 읽다가 포기한 나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쉽게 읽히지만, 다루는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으며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참고)
밀란 쿤데라 '정체성' 본문 인용 :
정체성, 밀란 쿤데라, 이재룡 역.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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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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