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브루크너의 도시, 린츠

글 - 음악칼럼니스트 김승열
글 입력 2016.03.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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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의 도시, 린츠>


글 - 음악칼럼니스트 김승열


나는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음악을 사랑한다. 브루크너의 진면목은 역시 11곡의 교향곡들이다. 하나 같이 버릴 것 없는 절편이지만 나는 특히 아다지오 악장들을 사랑한다. 대하의 흐름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다가도 장엄하고 파란만장한 여울을 형성하는 파노라마를 듣고 있노라면 세상이 꿈인지, 브루크너의 음악이 꿈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말러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유행 타는 대중가요처럼 이내 신물이 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유행 타는 음악을 언제부터인가 멀리해 왔다. 트렌드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브루크너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그윽한 저 내면 깊숙한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끝간데 모를 으슥한 비경의 신천지로 빨려들어가다보면 나는 브루크너가 음악의 절대지존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브루크너는 72평생을 홀로 살았다. 현실의 반려자 없이 추상 속 절대자를 반려자 삼아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주자로, 지휘자로, 작곡가로 동분서주하며 홀로 살았다. 그런 고독한 브루크너를 가장 오랜 시간 품어주었던 도시가 바로 오스트리아 린츠다. 린츠 근교의 작은 마을인 안스펠덴에서 출생한 브루크너는 1856년에서 1868년까지 린츠 돔성당의 파이프오르간주자로 봉직하는 등 린츠에서만 18년을 살았다. 그의 첫 교향곡인 습작 F단조와 0번이라 일컫는 D단조 교향곡, 1번 C단조 이 세 곡의 초기교향곡들을 브루크너는 린츠 시절에 완성했다. 그런 린츠를 나는 지난 8월 26일 수요일 낮에 다녀왔다. 여름 바캉스철이라 연주회는 없었지만 나는 잘츠부르크에서 기차를 잡아 타고 무작정 린츠로 향했다. 1시간 가량의 길지 않은 거리였다. 크게 세 곳을 둘러봤다. 린츠 기차역사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린츠 주립극장과 트램을 두 번 갈아타고 찾아간 브루크너하우스, 그리고 린츠 중앙광장 가까이에 있던 린츠 돔성당을 나는 차례로 방문했다. 세 곳 모두 린츠의 음악명물인 것이다.



2013년에 새롭게 개관한 유럽의 초현대식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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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츠 란데스테아터 외관 (©Sigrid Rauchdobler)


 2008년 3월 처음 삽을 뜬 이후 5년 만인 2013년 4월 11일 완성을 본 린츠의 새로운 오페라하우스, 린츠 주립극장은 외관부터가 세련되고 현대적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건축가 테리 포슨이 설계한 린츠 주립극장은 1200석의 그로서잘과 270석의 블랙박스, 150석의 블랙박스 라운지, 200석의 오케스터잘로 나뉘어 있다. 이 극장에 올라가는 오페라와 발레작품들의 반주를 담당하는 상주악단은 그 유명한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다. 현재 이 악단의 수석지휘자는 2002년부터 미국 출신의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1944- )가 맡고 있다. 데이비스는 올해 3월말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연주회에 스위스 바젤 교향악단을 이끌고 첫 내한해 파격적인 프로그램으로 명연주를 선사한 명장이다. 그의 부인은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친한파일 가능성이 농후한 데이비스가 언젠가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도 이끌고 내한해 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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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츠 란데스테아터 객석  (©Sigrid Rauchdobler)


린츠 주립극장의 한 시즌은 10편 가량의 오페라/오페레타와 5편 안팎의 발레, 부수적인 뮤지컬로 채워진다. 오스트리아 제 3의 도시지만 20만에 불과한 린츠시의 적은 인구수에 비하면 호화로운 라인업이 아닐 수 없다. 공연의 수준 또한 탁월해서 상기한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이끄는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가 오케스트라 피트를 책임지며, 로버트 윌슨, 아힘 프라이어 같은 명연출가들이 무대를 책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유명소프라노 이명주가 린츠 주립극장의 전속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시즌 이명주는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와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의 그레텔로 린츠 주립극장 무대를 빛내고 있다.
린츠 주립극장을 찾은 이 날, 나는 공연을 관람할 수는 없었지만 극장의 1층 로비 소파에 앉아 시즌 프로그램책자를 훑어볼 수 있었다. 앞서가는 마인드에다 내실 또한 탄탄한 유럽 유수 오페라극장임을 쉽사리 간파할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거대 지자체에 새로이 개관한 아트센터 중 몇몇은 린츠 주립극장보다 규모나 시설면에 있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콘텐츠인 것이다. 개관 이후 10년 동안 1800석 규모의 호화 오페라하우스에서 고작 네 편의 오페라만을 자체제작했을 뿐인 기이한 오페라하우스가 국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그것도 10년이란 세월 동안 정작 뮤지컬과 대중가요 공연은 수십편이 아니라 수백편을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렸음에 말이다. 해외토픽란에나 등장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죽만 오페라하우스인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이 품고 있는 콘텐츠를 의미한다. 그처럼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진리를 명약관화하게 보여주고 있는 극장이 바로 린츠의 오페라하우스, 린츠 주립극장이다. 나는 국내의 오페라하우스 관계자들이 한 달이 됐든, 두 달이 됐든 유럽 오페라하우스 순례를 떠나 그 곳의 운영실태를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돌아오길 희망한다. 언제까지 오페라하우스의 변칙운영을 자행하고 수수방관할 셈인가. 이는 나라의 국격이 걸린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중대사안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브루크너 사운드의 본가, 브루크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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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츠 주립극장을 둘러본 나는 근처 정거장에서 트램을 타고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브루크너하우스로 향했다. 린츠가 배출한 위대한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4년 3월 23일 개관한 브루크너하우스는 개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새롭고 이상적인 연주회장이란 평가를 들었다. 핀란드의 저명한 건축가부부 헤키 시렌과 카이야 시렌에 의해 설계된 브루크너하우스는 연간 200여 개의 연주회를 통해 18만명 가량의 청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연주회장은 린츠의 저명한 두 음악제인 아르스 엘레트로니카와 브루크너페스트의 요람으로 또한 기능하고 있다. 1420석의 브루크너잘과 352석의 슈티프터잘, 150석의 케플러잘이 브루크너하우스를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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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츠 브루크너 하우스 외관  (©A.Roebl)


내가 방문한 이 날 브루크너하우스 정면 앞의 잔디밭에는 거대한 브루크너 흉상이 우람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대작곡가의 흉상을 마주보며 거장에게 경의를 표한 필자는 티켓부스 근처에 비치되어 있던 시즌 프로그램책자를 넘겨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세계 유명악단과 유수연주자들의 스케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중 지난 10월 4일 일요일 오전 11시의 마티네 콘서트에서 임헌정이 이끄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페스트의 일환으로 연주함을 알리는 광고가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반가운 뉴스였다.
도나우 강변 하류 녹지대인 운터 도나우란데에 들어선 브루크너하우스는 브루크너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려는 의도 말고도, 공해의 도시란 오명을 씻기 위해 린츠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회심작이다. 린츠의 동서에 위치해 있는 빈과 잘츠부르크에 비해 현저히 오염된 공기의 순도는 이미 린츠 기차역사를 빠져나온 순간부터 감지되었다. 1832년 마차철도가 부설되면서 공업도시로 면모를 일신한 린츠는 이후 철강과 화학, 기계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공업도시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해왔다. 그 결과 대기오염은 필연적 수순이었다. 그리고 린츠 근교의 브라우나우암인에서 20세기의 악령 아돌프 히틀러가 출생했다는 사실 또한 린츠로서는 달갑지 않은 사실이다. 린츠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직업학교까지 다닌 히틀러는 린츠를 자신의 고향으로 간주하고 대규모 건축계획까지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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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츠 브루크너 하우스 객석  (©A.Roebl)


 그러나 나에게 린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36번 C장조 K.425 일명 ‘린츠’다.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와 결혼 후 처음 들른 고향 잘츠부르크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빈으로 귀환하는 중간 린츠에 들러 속필로 작곡한 ‘린츠’ 교향곡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다. 장중한 1악장과 그리도 전아할 수 없는 2악장, 다소 허풍 섞인 3악장에 이은 최후 4악장의 범접 못할 활기야말로 내가 이 교향곡을 사랑하는 주된 이유다. 이 교향곡을 처음 들었던 중학생 까까머리 시절의 그 언제부터인가 나는 린츠를 동경해 왔다. 그러나 막상 첫 발을 내디딘 린츠에는 ‘린츠’ 교향곡에서 느껴졌던 고풍스런 전아함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린츠를 여전히 사랑하고 동경한다. 무엇보다 그 곳에는 브루크너의 체취와 모차르트가 ‘린츠’ 교향곡을 써낸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기에 말이다. 린츠를 떠나오던 지난 8월 26일 오후, 나는 다음 번 린츠를 방문하는 날에는 반드시 브루크너하우스와 린츠 주립극장에서 명무대를 목도하리라 다짐했다. 이번에 처음 들른 린츠행은 훗날을 기약하는 사전답사였을 뿐이다.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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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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