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능주의를 넘어선 디자인의 혁신 - 알레산드로 멘디니展 [시각예술]

글 입력 2015.12.0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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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전시관에서 전시 중인
'알레산드로 멘디니展 - 디자인으로 쓴 시'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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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는 세계 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입니다.
멘디니는 193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1970년부터 15년간 건축 전문잡지의 편집장을 역임했습니다.
그 후 디자이너로서 까르띠에, 에르메스, 스와로브스키, 알레시, 삼성, LG, 한샘, SPC, 일룸 등
수많은 세계적 기업들과 디자인 작업을 해왔으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DDP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멘디니의 작품 인생 40여 년이 집약된 역대 최대 규모, 아시아 최초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가구, 건축, 회화 등 전 분야를 총망라한 작품 600여 점을 12가지 테마로 구성해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멘디니가 직접 기획한 12가지 테마를 순서대로 따라가보며,
그의 디자인 세계를 살짝 들여다볼까요?




1. 평범한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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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 '떼드 제앙뜨'입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모호한 눈빛, 무언가를 노래하는 듯 하면서도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듯한 입...
멘디니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물들 역시 눈이 있어 우리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또 이 조형물의 색과 패턴을 보고 있자면 몬드리안의 작품이 떠오르는데요.

멘디니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기능주의를 지지한 예술가였어요.
기능주의를 비판한 멘디니가 아이러니하게도 몬드리안의 그림을 작품에 반영했다는 것,
이는 그만큼 멘디니가 기능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2. 어린이 눈으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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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키덜트'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두 작품들입니다.
왼쪽 작품은 베스킨 라빈스 케이크를, 오른쪽 작품은 회전목마를 나타내고 있어요.
특히 오른쪽 작품에서 말 대신 돌고 있는 물건들은
주방용품회사 '알레시'에서 실제로 판매하는 제품들이라고 합니다.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주방용품들도 멘디니에 의해 멋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었어요. 

멘디니는 쌍둥이 누이와 함께 밀라노의 바닷가 마을에 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하지만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던 멘디니는 1940년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습니다.
세계대전을 통해 경험한 전쟁과 파시즘의 두려움은 이후 멘디니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인지 멘디니의 전시에서는 거의 모든 작품에 가이드라인을 치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전쟁이 아닌 평화, 불평등이 아닌 평등을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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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아보세요.
("디자인은 체험하는 것이다.")



 3. 기능주의를 부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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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보았던 '저 위'라는 퍼포먼스의 사진입니다.
의자를 불로 태워버리는 이 퍼포먼스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계대전 이후부터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기능주의를 멘디니는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용도와 목적을 최고로 중시하는 기능주의엔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어요.
그리고 의자는 기능주의의 대표적인 산물입니다.
어쩌면 멘디니는 의자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통해
기존의 기능주의를 부정하고, 기능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요?




4. 전통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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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청자로 작업한 '108번뇌'라는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전통 도자기에 익숙했던 멘디니에게
아름다운 색과 조화를 지닌 청자는 큰 매력과 도전으로 다가왔다고 해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청자를 통해
멘디니는 전통이 지니는 아름다움과 그 소중함에 대해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5. 내면 세계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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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는 아이디어 구상의 첫 번째 과정입니다.
머리, 손, 펜, 종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기록한
멘디니의 독창적이고 다채로운 생각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스케치들의 군데군데에는 실제 전시에서 보았던 작품들의 그림도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답니다.




6. 색과 점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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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디니는 '기능과 예술의 융합', 즉 '리디자인'을 지향합니다.
이미 사물의 기능은 완성된 상태이니, 
여기에 예술까지 더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멘디니는 이 평범한 소파와
서양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를 융합해
'프루스트 의자'라는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소파에 알록달록 찍혀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무수한 점들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내용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7. 크기로 상식을 뛰어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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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기만 했던 사물들은 이렇게 평소보다 크거나 작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예술적 의미를 지니게 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큰 의자, 지나치게 큰 자켓과 손 모양 등등.
사물의 예상치 못한 변모를 통해 우리는 그 사물을 좀 더 새롭고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8. 예술을 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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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과 예술의 만남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디자인, '안나 G'와 '알레산드로 M'입니다.
이 제품들은 포도주 병따개인데요,
인간의 모양을 닮은 이 병따개는 마치 사람과 같은 몸짓을 보여줍니다.
마치 우아하게 발레를 하는 듯한 병따개 '안나 G'는
멘디니의 친구 '안나 질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해요.
약 10년 후, 안나 G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변형된 '알레산드로 M'과 만납니다.


 

9. 인간의 형상을 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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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맨 처음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멘디니는 사람이 사물을 보는 것처럼 사물이 사람을 보도록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이 작품들은 어딘가 모르게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렇게 자신들의 이미지를 사물에 재현해왔습니다.
사물들을 자신들과 유사하고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죠.




10. 건축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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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을 전공한 멘디니는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디자인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일본 히로시마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탑'입니다.
히로시마는 과거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투하로 죽은 땅이 되었었지만
간척 사업을 비롯한 오랜 노력 끝에 복구되었습니다.
파라다이스 탑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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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흥미롭게 봤던 작품, '까르띠에 기둥'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둥은 까르띠에의 보석들로 채워져있습니다.
작품에 들어간 보석들의 총 금액은 무려 31억원,
그 중 다이아몬드는 총 61캐럿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멘디니의 이번 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가이드라인이 쳐져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둥 안에 들어있는 보석들이 반짝거리고 반사되면서
보석들이 더 많아보이는 효과가 연출됩니다.




11. 영적인 세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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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디니의 모든 프로젝트는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종교, 신화와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각종 의식을 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은 성당 안에 들어가면 
황금과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거대한 두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 안에 울려퍼지는 음악까지 더해져서 장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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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디니의 신성하고 영적인 감각은 '뒤러의 기사'라는 조형물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어요.
독일의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사의 형상에서 따온 조형물이라고 합니다.
말 위의 근엄한 기사의 모습은 마치
기능주의가 만연했던 시대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했던
멘디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12. 디자인은 체험하는 것이다 - ART 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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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그의 40여년에 걸친 방대한 디자인 세계들을 멘디니전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전시에 오기 전까지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에 대해 잘 몰랐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그가 추구했던 디자인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내년 2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
멘디니의 멋진 디자인 왕국을 꼭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




좋은 디자인이란 시와 같고, 미소와 로맨스를 건네주는 것이다. - 알레산드로 멘디니





[양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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