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 진지한 농담 [공연예술]

글 입력 2015.12.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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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노을 소극장에서 연극 <진지한 농담>을 보았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저명한 러시아의 작가인 드미트리 립스케로프(Dmitri Lipskerov)의 작품을 번역한 것이다.
진지한 농담이라는 모순을 어떻게 풀어갈 지 궁금했는데 보고 나니 생각해 볼 점이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놉시스
연극예술고등학교. 치열해진 입시전쟁으로 이제는 필수에서 밀려난 과목이 있으니, 바로 지리와 체육이다.
교사가 대접받던 시대는 끝났다. 그것은 국영수 과목 선생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아이들 학원비에 각종 보험료... 요즘 물가는 또 얼마나 올랐는지, 게다가 주택담보대출금은 아직도 까마득하게 많이 남아있다.
가장으로서의 어깨가 무거운데, 이대로 직업을 잃어버리면 끝장이다!
체육선생과 지리선생은 다음 학기에도 선택과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교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학교의 궂은 일을 자진해서 맡게 된다.
학교의 소품실 리모델링을 위해 페인트를 새로 칠해야 하는 것!
방학기간. 학생들은 학원 다니기 바쁘고, 잘 나가는 선생들은 해외여행이다 뭐다 해서 학교에 나올 일이 없다.
모처럼의 휴일도 반납한 채 이 소품실에서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째.
두 남자는 이 일에 대해 점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페인트칠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롤러는 내팽겨 둔 채 낮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다.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술!
그렇게 한 잔, 두 잔 ... 그러다가 이 중년의 두 남자는 술에 의해 점차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젊은 시절,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그들이 원했던, 지금의 그들과는 다른 새로운 인생 속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시놉시스에서도 나와있듯이, 이 연극은 꿈이라는 비현실을 중심으로 하여 액자식으로 구성된 극이다. 비주류과목의 담당교사 두 사람이 현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술을 나누다가 잠이 들면서 꿈 속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이 극에서 정말 원하는 방향대로인, 지긋지긋한 현실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가장들에 대한 함의 위주로 내용을 이해해보자면 이 연극에서는 크게 네 가지를 유의 깊게 살펴볼만한 것 같다.
 
 
먼저 첫 번째로 주목할 대목은, 한 가정의 가장(지리교사) 혹은 그저 어른(체육교사)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동경하던 혹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이들이 일부 체험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인에게 줄 속옷 선물을 산 지리교사는 사실 가정에 충실한 가정적인 남자라기보다는 불장난을 좋아하고 부인 외의 다른 여자들에게 눈을 돌리며 일탈을 꿈꾸는 남자다. 그런 그는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 그들이 가진 '모든 평범한 것들을 우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과 재능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보였다. 극의 초반에서 아직 술에 찌들어 꿈으로 빠져들기 전에, 지리교사는 대사 속에서 그런 꿈을 일부 그려내고 체육교사보다 앞서 후에 마를린이 될 인형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체육교사는 나이가 지긋이 찼음에도 결혼하지 않은 미혼 남성으로 그려진다. 그는 은연 중에 지리교사처럼 가정을 꾸리는 것을 동경했던 것 같다. 술에 취해 잠에 빠져든 그가 그리는, 현재와는 다른 그 모습은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결과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드러났건 간에 그는 사랑, 가정, 가족에 대한 동경을 꿈속에서나마 이룰 수 있었다, 비록 한없이 덧없을지라도.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두 등장인물의 이름이 극 중 내내 단 한 번도 제대로 언급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체육교사를 부를 때에는 배우의 이름이 '김우경' 이기에 그저 김 선생으로 불리고, 지리교사를 부를 때에는 배우 이름이 '윤계열' 이기 때문에 윤 선생으로만 불린다.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체육교사와 윤리교사 모두 학교라는 직장(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는 사회) 내에서 철저히 객체화되고 파편화된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름은 그저 호칭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의 정수이다. 그것이 극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사회인들이 사회에서 파편으로서,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세 번째로 주목할 만한 것은 두 등장인물을 통해 이 연극은 사회적 비주류들의 일면을 절절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비주류과목을 담당함으로써 직장에서 불안정감을 느끼는 두 교사들은 다른 동료들이 하지 않으려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함으로써 교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혹여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까봐 미리 잘 보이려는 것이다.
 
사회적 비주류, 사회적 약자들은 결국 권력을 가진 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 요컨대 강자의 논리와 의중을 살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먼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교실의 페인트칠을 떠맡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회적 비주류로서 직장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애환을 그려냈다는 점 역시 이 연극의 중요포인트이다.
 
 
네 번째는 바로 이 연극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 바로 '인생은 그냥 사는 것'이라는 점이다. 액자식 구성을 통해 현실과 꿈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성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엉뚱한 곳에 시간을 허비하며 아주 '진지한 농담'같이 인생을 살고 있으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저 살아가는 일 그 자체라는 것이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나 사회에서 힘 있는 자로 성장하지 못한 것, 혹은 안락한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으로 인해 위축될 필요 없이 그저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연극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아주 철저하게 배제하고 희생시켰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이 작품이 현대극이 아니라 1950년대 이전의, 오래된 연극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뒤에 찾아보니 당장에 드미트리 립스케로프 자체가 1964년 생이었다. 심지어 그는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연극은 아주 완벽하게 현대극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이전에 인간으로서 작가가 아주 철저하게 배제해버린 요소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극을 철저히 관통하고 있는 것은 '남성', '가장으로서의 남성', '가장으로서의 애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직접적인 어조로 여성을 배제시키는 면들을 볼 수 있다. 단순히 극의 주체로서 배제시킬뿐만 아니라 여성의 존재 자체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말들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지리교사의 입에서 나온, '모든 악은 여성으로부터 나온다'는 대사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나는 드미트리 립스케로프의 작품을 접한 것이 처음이기에 기본적으로 그의 사상이나 여성관이 어떤지 모른다. 그가 저 대사로부터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결혼한 후 부인에게 달달 볶이는 남성의 애환을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더 나아가 아주 근원적으로 성경에서 태초에 그려진 아담과 이브의 관계에서 이브가 선악과를 아담에게 건넸던 그 사건까지도 꼬집고 싶은 것인지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극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언사는 변함이 없다.
 
아주 잠깐동안, 드미트리 립스케로프가 이러한 여성에 대한 인식마저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체육교사의 꿈 속에서, 그가 마를린과 결혼을 하고 행복할 줄 알았으나 정작 가면 갈수록 서로에게 소리지르고 화를 내며 지쳐가는 모습을 보일 때 그의 집을 방문한 사냥꾼의 말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하건대, 만일 그가 이런 역설을 의도했던 것이라면 그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본다. 극 전반을 꿰뚫는 가장으로서 남성이 가진 애환이라는 중심소재에서 벗어난, 어쩌면 곁다리 같은 부분에 지나지 않기에 여성에 대한 인식 그 자체에 대해 과연 그 이전의 모든 것들이 결국 역설이었다는 것을 바로 포착해낼 관객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문제는 그것이 역설이었다 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인식과 여성에 대한 목소리가 철저히 남성중심적이었다는 점에서 립스케로프의 선택에 의문을 금할 수 없다. 과연 이 방식이 최선이었는가.
 
이 연극에는 두 인물이 등장하지만 여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마를린이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인형으로 등장한다. 마를린이 인형이기 때문에 이 극의 유일한 여성화자는 언어뿐만이 아니라 반언어적, 비언어적 요소까지 원천적으로 봉쇄당함으로써 단 한 순간도 여성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여성을 철저히 객체로 만들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극을 전개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드미트리 립스케로프가 역설을 추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참정권을 갖지 못하고 교육을 받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전전(戰前) 세계라면 씁쓸하나마 묵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드미트리 립스케로프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극을 구성한 것에 나는 그저 수용자로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이와는 별개로 체육교사 역을 맡은 김우경 배우와 지리교사 역을 맡은 윤계열 배우의 열연은 인상깊었다. 공연 시작 전에 윤계열 배우는 문밖에서 검표를 하고 있었고, 김우경 배우는 무대 아래에 서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기 전에 그렇게 관객들에게 다가서며 소통하고 경직될 수 있는 관객석의 분위기를 완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주 모순적이게도 극단 목수 소속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나 극의 내용에는 의문을 갖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지만, <진지한 농담>은 가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작품인만큼 한번쯤은 접해볼만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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