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나이트:긴급상황' 거리가 아니라 무대에서 만난 그들 [문화 전반]

연극으로 필이 통하는 사람들, 노숙인 극단 연필통의 바로서기
글 입력 2015.11.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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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연극은 괴로웠던 나의 과거를 풀어냄으로써 잃어버렸던 인생의 의미와 열정을 다시금 찾아가는 여정 같았다. 이제 연극단 활동을 통해 내 미래의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대로 연출해 낼 일만 남았다.” - 연극단원 이00 (54년생,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 이용자)
 
 

 
 
  연극으로 필(feel)이 통하는 사람들. 줄여서 ‘연필통’이다. 노숙인 극단 연필통은 2012년에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2006년부터 간간이 연극을 올렸지만, 지속적이고 본격적인 활동이 이루어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종로구 쪽방촌 사람들을 모아 연극을 했던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와 다시서기지원센터가 함께하며 서울문화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연필통 사람들은 어떻게 ‘연극과 통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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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원래 고함을 지르지 않거든요. 연극을 하면서 내 맘 먹은 대로 큰 소리를 내니까 속이 후련해졌어요. 대인관계도 괜찮아지더라고요. 그 전에는 내 일만 하면 됐지 남들 생각은 안 했는데, 대사를 주고받는 연습을 하고부터는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네가 필요하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뱅크’(38)는 연극으로 사람들과 ‘통했다’. 이들은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들국화’(45)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원래 영화나 연극을 좋아했는데, 연극을 하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 소심한 성격도 극복했고요. 그 전에는 필요한 말이 있어도 잘 안 했는데, 요즘에는 당장 필요하다고 느끼면 바로 말을 해요.” 곁에 있던 ‘블랙홀’(32·안상협 사회복지사)이 “연극을 한 뒤 들국화가 많이 밝아졌어요”라고 거든다. 연극을 통해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성격도 밝아졌다면 이들이 연극에 매달릴 까닭이 충분한 셈이다.
  연필통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 이유가 ‘뱅크’처럼 대인관계 개선에만 있는 건 아니다. 연극을 통해 흩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고, 새 일자리도 얻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요즘 ‘촌놈’(74)은 구청에서 자활근로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1990년대 말 구제금융 시기에 노숙을 시작하면서 형과 사이가 틀어졌다. 형한테 도와 달라고 매달렸지만, 형이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론 연락도 툭 끊겼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형을 애타게 찾고 있다. ‘촌놈’은 무대에 서면 혹시 가족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기대한다. ‘들국화’(45)도 노숙을 하면서 가족과 헤어졌다.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재작년 그동안 연락을 끊었던 아버지와 형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지금 요양병원에 있다. 그는 이번 공연에 가족과 친척들을 부를 생각이다.
 
  연극단 구성을 위해 노숙인을 대상으로 자체 오디션도 실시하였으며 연극단원 노숙인에 대한 연극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참여자 대부분은 서울시 지원을 받아 상담보호센터를 이용하거나 쪽방, 고시원 등 저렴한 주거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들로 이번 공연을 위해 지난 5개월 동안 매주 2회 이상 연습을 하고 있다. 현재 노숙인 대부분은 노숙에서 벗어나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두려움, 그리고 이로 인한 자포자기적 삶의 태도가 자립에 큰 어려움과 장애가 되고 있다.
  연극 프로그램 담당자에 의하면 연극은 이러한 노숙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스스로 장면을 연출하고, 그것들을 종합하여 대본을 만들어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노숙인의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경호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하루하루 힘겹게 보냈던 삶에서 이제 무대에서 당당히 자신을 외칠 수 있는 삶으로의 큰 변화가 노숙인 연극단의 작은 연습실 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이분들의 땀과 열정으로 채워진 무대가 노숙인이라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인식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는 이들의 잰걸음, 대사 외는 소리로 극장은 어수선하면서도 경쾌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필통 배우 12명 중에는 노숙인 출신은 있지만, 현재 노숙 중인 사람은 없다. 노숙과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도 있다. 사는 집도 임대주택과 시설, 자가 주택 등으로 다르고, 자활근로를 하거나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등 사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다들 “연극을 만나고 삶이 변했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같다. 다시서기센터 사업지원팀장 박 팀장은 “연필통은 노숙인 극단이 아니라 그저 조금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북돋아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분의 인터뷰를 보면 ‘노숙인’이라는 단어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시며 본인은 길거리 선생님이나 별명과 같은 다른 이름으로 지칭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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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필통 사람들은 연극을 하면서 친구를 만났다. 지난해 처음 연극을 접하고 연필통 창단까지 함께한 허모씨(49)는 “사는 게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른다.”며 “이젠 상처 있는 사람들끼리 마음을 나눌 시간이 생기고 갈 데가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기 시작한 허씨의 소망은 연필통에서 진짜 배우가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자활근로를 하는 이모씨(59)도 “기껏해야 TV나 보고 살았는데, 이제 허물없이 이야기할 사람이 생긴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연극을 통한 변화는 극적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 연극을 하면서 인문학 학교에도 다니는 오모씨(43)는 “잠에 취했던 백설공주가 연극을 만나 깨어난 느낌”이라며 “내가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어떻게 살지 틈틈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모씨(48)도 10년 넘도록 이따금 운전 일을 해왔지만 최근에야 정식 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뭔가 의욕이 생겨서 해외 나가서 할 만한 일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다시서기센터의 박 팀장은 “노숙생활을 경험한 이들은 삶에의 애정을 되살리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애써 설득해도 안 되던 게 연극으로 만난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들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전기송씨(33)는 “프로 배우들보다 연기를 절실하게 여기는 연필통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성취감이 더 컸다”며 “예술이 삶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한다는 걸 눈으로 봤다”고 했다. 배우 오씨는 “연극이 나를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연극다운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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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전공으로 예술인 사회복지제도를 배우고 있다. ‘노숙인 연극’을 보게 된 계기도 수업시간에 그 일환으로 소개해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큰 기대 안하고 갔는데 공연을 보면서 이 분들과 내가 별 다를 바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마추어 연극을 올리는 것,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사건사고와 사람들.
‘올나이트:긴급상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공연을 앞둔 아마추어 연극팀이 공연 하루 전, 마지막 리허설을 한다. 서툴고 삐걱대지만 리허설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배우 한 명이 사라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제로 노숙인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고충을 얻는 부분이 이와 같은 문제라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말씀해주셨다. 갑자기 일을 얻게 되어 통보 없이 나타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행동(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한)으로 곤란하게 만들어, 연극을 완성하기까지 상당히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그래서 준비하던 대본을 던지고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나는, 우리는, 이 공연을 왜 하는 걸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에서 다시 출발했다. 각자의 생각들을 인터뷰하고, 그들과 비슷한 상황을 설정하여 즉흥을 했다. 본래 공연하려던 ‘올나이트’가 아닌 그들이 처한 상황, 밤늦게 지지고 볶으며 함께 만든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완성된 극을 짜 맞추어 내놓기보다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분들에게 익숙하고 또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것 같다. 그들의 입으로 직접 그들의 삶을 전해 듣는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늘 술에 찌들어 있거나 아무데서나 잠을 자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알게 모르게 내가 그들은 추위도 배고픔도 안 느끼고 자존심도 없는 이들이라고 정의했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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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의 배경인 이태원 해방촌과 서울역의 노숙자들이 낯설지 않은 곳에 살고 있고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도 알고 있는지라 상당히 공감이 가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사회의 주변인들로 살아왔던 노숙인들이 처음으로(어쩌면 오랜만일지도)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뭐랄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견했다. 대견하다고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본의 아니게 그 말이 나와 그들 사이에 선을 그어 놓을까봐 박수로 대신했다. 그동안 오천원 짜리 빅이슈(The Big Issue : 홈리스 자활을 돕는 월간잡지)를 사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굉장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내심 자부했었다. 감히 내가 그분들을 잠시 나와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연극을 통해 다시 일어서려는 그들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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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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