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검은 고양이, 숙명적인 불안의 형상화 [문학]

글 입력 2015.11.1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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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라 나른한 듯
꿈을 꾸는 눈빛
부드러워라 춤을 추듯
어둠을 걷는 몸짓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고양이 사용 설명서’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저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합니다. 예민하며 까칠한 구석이 있고, 사람에 대한 충성심이 개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고양이만의 묘한 매력을 사랑합니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애교도 부릴 줄 알고요. 처음엔 까칠하게 굴다가도 한번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한없이 다정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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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고양이에게서 불길함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가끔은 그러한 불길함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길에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나, 저희 집의 고양이들이 불 꺼진 거실에서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전 고양이로부터 알 수 없는 낯선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특히 ‘눈’을 볼 때 그렇습니다. 밝은 곳에서는 동공을 한껏 키워 초롱초롱한 눈과 달리, 짙은 어둠 속에서 고양이의 눈은 아주 날카롭게 빛납니다. 어둠 속 고양이의 눈은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이 듭니다. 
 
 낮과 밤이 다른 고양이의 두 눈. 바로 여기서 고양이만이 지닌 양면성과 동시에 '공포'의 이미지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 역시 두 얼굴을 지닌 이 고양이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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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 포우의 소설을 읽고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제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어셔 가의 몰락>이 제일 처음 접했던 포우의 작품이었고, 그 다음 읽은 게 <검은 고양이>였어요. 두 작품을 읽고 나서 며칠간은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공포 소설을 읽은 건 그때가 처음이기도 했고, 그 짧은 단편의 결말이 너무도 기괴하고 무서웠기 때문이었죠. <어셔 가의 몰락>에서 죽었다 깨어나 피를 흘리는 마델라인과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을 보며 시뻘건 입을 벌리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떠올려도 오싹해집니다. 마치 <어셔 가의 몰락>에서의 어셔의 대저택과 함께 캄캄한 늪 속으로 파묻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동안에 나의 기질이나 성격은 고백하기도 부끄럽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극도로 악화되어 갔다. 나는 날이 갈수록 침울해지고 성급해져서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본문 중

 

 오랜만에 <검은 고양이>를 다시 읽으니 새로운 의문이 생겼습니다. '포우는 이 작품을 왜 썼을까?'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어려운 질문이었죠. 주인공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은 알콜에 중독된 후부터 아내와 고양이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비극의 근원은 단순히 알콜 중독인 것이었을까요? <검은 고양이>의 주제는 ‘알콜 중독에 걸리지 말자’가 되는 것일까요? 글쎄요, 포우는 단순히 이러한 이유만으로 이 소설을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는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무언가에 대한 심한 증오와 병적인 불안을 지속적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가령 검은색 봉고차에 치인 이후부터 비슷한 검은색 봉고차만 보면 극심한 공포에 떠는 사람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이유 있는 트라우마나 공포증 외에도 우리의 무의식중에 깔려있는,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불안 또한 얼마든지 존재할 것입니다.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이 느낀 공포의 근원 역시 단순히 '알콜 중독'으로만 단정 짓기 어려운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주인공이 본래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던 미지의 공포는 알콜 중독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주인공은 자신 스스로를 알콜 중독으로 내몰 정도로 심한 불안에 시달려오고 있었다는 것이죠.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의 삶이 어디서부터, 무엇에 의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우는 <검은 고양이>를 비롯한 그의 단편들을 통해, 숙명과 같이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불안'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는 아무리 행복한 삶을 사는 인간이라도 영원히 지닐 수밖에 없는 약점이자 숙명과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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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포우 단편선>, 에드거 앨런 포우, 삼지사, 2007
 

[양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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