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학박물관에서 만나는 현대미술, 장벽을 허물다 [시각예술]

XYZT, les paysages abstraites - jouer avec la lumière
글 입력 2015.09.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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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젤리제 거리, 파리 관광의 클리셰가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는 그 곳. 개선문과 콩코르드 광장을 앞뒤로 둔 이 드넓은 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유 없이 파리의 로맨틱함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이전에도 여러 번 파리를 방문했던 관광객이나 파리지앵이라면, 샹젤리제에도 ‘지루함’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줄을 지어 문을 열고 곧 지갑을 열 방문객들을 무작정 반기는 상점들, 이전에도 수 회 다녀왔던 미술관 그랑 팔레(Grand Palais)와 쁘띠 팔레(Petit Palais). 이 지루함을 산산조각 내어준 샹젤리제의 새로운 강자는 다름 아닌 샹젤리제 공원 근방에 위치한 발견의 전당(Palais de la découverte,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주 방문하는 국립 과학박물관이라고 볼 수 있다)이었다. 이렇게 뜬금없는 선택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이 전시를 자신 있게 꺼내 들겠다.

  우리나라의 여느 박물관 또한 그렇듯이, 박물관 로비는 알록달록한 모자를 맞춰 쓴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조잘대는 가운데 성인 관람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에 약간은 불안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른들이 가득한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XYZT jouer avec la lumière 전시실이었다.

  과학박물관에서의 현대미술 전시라니. 저게 뭐지,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들어간 그 곳은 생각보다 작았다. 요즘 들어 나름 핫한 조합이 된 과학과 예술의 결합이었지만 그 새로움에 비해 과학박물관의 시도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전시에 대한 정보를 익히 듣고 온 사람들인지, 아니면 샹젤리제를 걷다가 즉흥적으로 들어와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방 안에 가득 수놓인 빛으로 ‘놀고’ 있었다.

  입장과 동시에 통로를 걷는 내 발의 움직임에 맞추어 빛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센서도 하나 없어 보이는 일반적인 바닥에서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세 네 살 정도의 아기들이 뛰놀고 있을 곳에 그들보다 두 배는 큰 어른들이 피아노 건반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좁은 통로를 지나자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었다. 사실 시작의 기준을 따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방이 작았기 때문에 10분 정도면 충분히 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곳에 한 시간 가량 머물렀다. 물론 방의 크기가 말해줬듯이 그다지 볼거리가 많은 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통로를 지나고 난 뒤 발견한 각종 ‘장치’들은 하나하나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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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그릇 위에서 글자들이 떠다녔다. 그리고 숨을 불어넣자 글자들이 그 바람의 방향대로 춤을 추었다. 빛을 이용해 무언가를 보여주기만 하는 미디어 파사드 전시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왔던 나에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그 옆에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맞추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널따란 벽이 하나 있었는데, 역시나 아이들이 된 것 마냥 뛰놀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나도 그 중 하나였다!) 방 안에는 1평 정도로 보이는 작은 방이 또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면이 파사드로 만들어져 들어가는 순간 온 세상이 알파벳과 숫자 등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당연하게도, 내 몸 위에 글자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방의 맞은편에 자리한 또 다른 파사드에서는 우리의 움직임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추는 동시에, 그 움직임을 슬로우 모션으로 변환시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전시는 현대미술가가 아닌 박물관의 기술 및 장치 담당자들에 의해 꾸려진 것이었다. 프랙탈 도형, 디지털 모델,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미술 등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미술보다는 과학기술 체험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을 테다. 다행인 것은 그래서인지 이 전시가 전혀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전시실에서 나가기 전 두 기획자가 파사드를 이용하는 방법을 몸으로 설명해주는 친절하고 간결한(?) 다큐멘터리가 있었기에 관람객들은 그들을 따라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큐멘터리가 전시를 마무리하고 나가는 문 앞에서 상영되고 있던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심지어 전시실에는 각 작품에 대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었기 때문에 그 다큐멘터리에 나름의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기획자들은 말 한 마디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재미와 궁금증을 한가득 남겨놓았다.

  그 흔한 팜플렛 하나 없었던 전시. 결과적으로는 이 전시의 ‘아카데믹’한 부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박물관에서의 한 시간이 흥미진진한 추억으로 남은 이유는, 모두가 아이들이 된 것처럼 처음으로 체험하는 무언가가 곳곳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길게 늘어놓는 설명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그 짧은 시간을 흐트러뜨렸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현대미술,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현대미술. 미술의 장벽이 허물어진 요즘 우리는 이제 미술을 과학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멋진 조합에 일단은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전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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