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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뭔지 아시겠어요?

2015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정의>


김지현(ART insight SNS 운영팀)


포스터_수정_2015신진연출가전.jpg
 

<공연정보>

제목: 2015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 연극 ‘정의’ 
(원안-프레드리히 뒤렌마트 <노부인의 방문>)
장르: 연극 페스티벌
공연장: 성수아트홀
공연장 주소: 서울 성동구 뚝섬로1길 43  /  02-2204-7574
공연: 2015. 8월 28일(金) ~ 8월 30일(日)
시각: 월~목 쉼 / 금 20시 / 토 15시, 19시 / 일15시
문의: 한국연극연출가협회 070-8822–4126 / tdak@daum.net
제작,주최: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성동문화재단
주관: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성수아트홀 
후원: 사)한국연극협회, 사)한국연극배우협회, 사)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사)한국소극장협회,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기획: 공연예술제작소 비상, (주)후플러스
매표소 오픈: 공연 60분 전부터
좌석배치: 비지정 자유석
좌석등급: 균일 20,000원 / 학생 할인 15,000원
특별 할인 10,000원
-국가유공자,장애인,복지카드소지자,성동구민,공연재관람자,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유료후원회원 할인
좌석수 x 회차
350석 x 16회 = 5,600석





스산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 성수아트홀로 연극 <정의>를 보러 갔다. 사실 ‘신진연출가전’이라고 해서 약간은 서투른 완성도의 무대를 보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말 상상 이상으로, 연출가의 굉장한 연출력과 스토리 구성 능력을 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히, <정의>의 무대를 정의해보겠다. 


정의 메인.jpg
 


1. 스토리


연극 <정의>는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에 원작을 두고 있다. 여기에 액자식 구성으로, <노부인의 방문>을 연출하는 연출가와 무용가의 이야기를 틀 이야기로 담고 있다.  

원작 <노부인의 방문> 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알프레드와 클레어.jpg
 

소도시 귈렌의 시민들은 노부인 클레어 자하나시안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고 지금은 백만장자가 되어 고향도시를 방문하는 것이다. 몰락해가는 도시의 시민들은 그녀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지만 클레어는 오래전에 자신이 당한 부당함에 대한 복수를 하러 오는 것이다. 19살의 알프레드는 17살의 클레어가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자 이를 부정하고 클레어가 제기한 소송에서 증인을 매수하여 승소했던 것이다. 고향을 떠난 클레어는 아이도 잃고 매춘을 하다가 유전(油田)소유자와 결혼하여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되었다. 소상인 알프레드는 환영식장에서 백만장자 클레어와의 친분을 과시한다.

노부인 클레어는 거액의 금액을 제시하며 시민들 모두에게 경제적인 부를 약속하면서 동시에 과거에 자신을 불행으로 빠뜨렸던 알프레드의 처벌을 요구한다. 시민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부당한 요구를 “인간성의 이름으로” 거부하지만 평상시와 다르게 알프레드의 잡화점에서 늘 사던 물건이 아닌 비싼 물건을 외상으로 사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알프레드는 “온 시(市그)가 빚을 지고 있다. 나를 죽일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라고 말한다. 주민들은 모두 노란 신발을 신고, 알프레드가 그들의 외상값에 불안해할 때마다 “우리는 당신 편이네” 라며 안심시킨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결국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간이 그의 죄를 없애지는 못한다면서 알프레드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알프레드는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고 처벌을 받아들인다. 노부인이 약속했던 수표는 발행되고, 합창단은 행복의 찬가를 부른다. 한편 언론은 알프레드의 죽음을 “기쁨에 겨운 죽음”으로 기사화한다.



연극 <정의>에서는 클레어가 찾아오는 시점부터 알프레드 일의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다. 단지 일의 죽음 부분에서 마을 사람들에 의한 죽음이 아닌, 아내에 의한 죽음으로 각색된다. 아내에 의한 죽음조차도, 준비된 죽음이 아닌 아내의 독살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그 때문에 죽음을 수용했던 원작의 알프레드와 달리, <정의>에서의 알프레드 죽음이 더 부당하고 정의롭지 않게 느껴졌다. 


알프레드 처형장면.png
 

그리고 무대를 보면서 작가가 많은 암시적 장치를 해놨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클레어와 알프레드의 고향인 도시 ‘귈렌’은 ‘썩고 타락한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도시의 이름에서부터 정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클레어가 거액의 대가로 알프레드의 죽음을 원한다고 발표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모두 노란 구두를 신었다는 것. 처음에는 이 ‘노란 구두’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조사해보니, 노란색은 황금색과 비슷하여 돈과 정의를 바꾼 마을 주민들의 속세적 특징을 색깔로 표현한 것이었다. 


노란구두.jpg
 

뒤렌마트는 인생은 무의미하며 인간은 쉽게 타락하는 존재로 봤다. 그는 <노부인의 방문>에서 죽음과 권력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를 다루고 는데, 인간은 일생동안 권력을 취하려 하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다는 것과, 권력은 선을 위하여 창조되었지만 결국 권력자에 의해 선이 타락된다는 것이 그 주제이다. 


자하나시안과 사람들.jpg
 

이 주제와 함께 “정의”의 실현 과정에서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의와 불의가 함께 뒤엉킨 정의의 실현을 보여준다. 주민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정의 때문에 알프레드를 심판하지만, 그 심판은 돈이라는 불의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알프레드는 돈으로 산 정의, 즉 판결에 순응하지만 그 판결 역시 돈에 의한 집단살해(불의)이다. 속죄를 통해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죄인(알프레드)과 판결을 통해 죄를 짓게 되는 판결인(주민)을 통해 죄와 판결의 순환구조 역시 눈여겨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노부인 클레어의 정의의 구매는 정의의 실현이 모순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정의에 대한 뒤렌마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The Visit (part1) 21 South Street
(part 1의 26분 30초정도부터 <정의>의 내용이 시작된다.) 



The Vist (part2) 21 SouthStreet



2. 구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자로 잰 듯 잘 짜여진” 구성과 연출이었다. 정말 감탄할 만한 무대적 장치(암시)가 많았다. 먼저, 처음 시작할 때 대학로 연극의 관객참여가 돋보였다. 관객들에게 대화하며 나무나 바위를 연기하도록 시켰는데, 이는 관객 참여를 통해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어 관객과 작품 사이에 간격을 두려고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원작 희곡에서도 관객참여의 요소가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jpg
 
대표적인 액자식 구성 작품, <아라비안 나이트>


그리고 중요한 감초였던 현대무용! 현대무용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난해하다면 난해할 수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현대무용을 통해 연출자가 의도하려했던 현대무용의 양면성을 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액자 바깥의 얘기는 현대의 연출가와 무용가가 <노부인의 방문>을 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시범적으로 그들이 리허설(?)을 하며 액자 안의 본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 ‘액자 안의 이야기’ 즉 원작 <노부인의 방문> 이야기가 진행되며 장면전환의 타이밍에 현대무용을 짧게 선보이는데,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계속 보다보니 본래 스토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선을 현대무용으로 표현하는 것이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와닿은 소위 ‘필링(feeling)’이랄까. 참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무용수들의 상대에 대한 몸짓과 시선, 거리감이 극의 내용과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현대무용 듀엣.jpg
 

내가 연극 <정의>에 대해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무대 스토리에서 <노부인의 방문>의 ‘정의(justice)’과 현대 무용의 ‘정의(definition)'를 함께 다루며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액자 속 <노부인의 방문> 이야기가 갈등과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바깥 액자의 연출가와 무용가 사이의 ’현대무용에 대한 정의(definition)'역시 심화되었다. 

연출가는 직접적으로 ‘의미’가 담긴 ‘말’을 극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지만, 무용가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이 직접적 의미를 ‘무용’이라는 간접적 비언어 요소로 승화시키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 사이의 ‘직접적’과 ‘간접적’ 사이의 대립이 함께 진행된 것이다. 무용수가 현대무용으로 <노부인의 방문> 이야기를 표현할 때마다, 연출가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뭐 이리 복잡하게 표현하느냐 이거다. 예를 들어 물을 주는 행동 하나에도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앉고, 뛰는 행동보다 간단하게 물을 딱! 건내 주는 행동을 원한다.    

여기서 잠깐, 현대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봤다. 


<현대 무용>

현대무용 2.jpg
 

모던 댄스,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댄스라고도 불리는 현대 무용은 무용의 본질관에 있어 발레와 대립된다. 즉, 전통적인 발레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된 새로운 무대무용이다. 규정된 형식이나 기교를 떠나 자유와 새로움을 추구하여 출발하였으며 자유롭고 개성적인 표현력을 강조한다.

현대무용은 고전발레의 유미주의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개인의 정서적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형식주의를 버리고 낭만적인 분위기나 감정이 아닌 낭만주의의 본질인 정신을 구현하려는 무용이다.

신체에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은 무용수들마다 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이는 같은 동작을 표현한다고 해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신체의 선(line)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물을 보는 시각이나 느끼는 감정, 그리고 생각하는 사고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설명보다는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아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Shake It Off'라는 노래의 뮤비에서 쓰였던 현대무용과 다른 듀엣 무용수의 동영상이다. 



Shake It Off Outtakes Video #3 - The Modern Dancers (Behind The Scenes Video)



Pentatonix - Say Something | contemporary choreography by Lena Golovan | D.side dance studio


정말...와닿듯 와닿지 않는 현대무용이다. 이 때문에 ‘필링(feeling)’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연출가와 무용가 사이의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바깥 액자 속 갈등과 <노부인의 방문>의 갈등을 함께 진행하기에 자칫하면 연극이 번잡스러워질 수 있었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위트와 유머를 섞어가며 두 주제를 번갈아 보여줬다. 

그리고 마무리가 더 대박이다. 극의 마지막은, <노부인의 방문>에서 알프레드의 죽음과 함께, 도저히 둘 사이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연출가와 무용가가 다음번을 기약하며 미팅을 파하는 장면이다. 

이때, 조연출로 나왔던 여성은 무용가의 리허설을 맡은 다른 무용수들에게, “혹시....뭔지 아시겠어요?” 라고 묻는다. 무용수들을 말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이 부분! 정말 소름돋게 잘 짜여진 장치였다. 조연출이 말했던 “뭔지 아시겠냐”는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이 극이 뭔지 무용수들이 감을 잡을 수 있겠냐는 스토리상의 질문이다. 

두 번째는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당신들은 정의가 뭔지 알겠냐’는 메시지다.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 그리고 현대무용의 정의(definition)을 말이다. 결국 어느 쪽도 정의(justice, definition)는 정의(definition)지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연출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이 대사 하나를 통해 연출가는 현대무용과 정의(justice)라는 주제를 함께 보여주고 있었음을, 관객들이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함을 나타내며 결론짓는다. 브라보, 짝짝짝. 그리고 이 의미를 캐치한 나에게도 브라보, 짝짝짝 :D



3. 무대장치


이 외에도 칭찬할 만한 무대요소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조명이 있다. 극의 진행상황에 따라 조명의 명암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조금 밝은 분위기, 관객의 참여를 유도할 때, 그리고 바깥 액자의 이야기를 진행할 때는 조명이 환했다. 하지만 갈등이 심화될 때, 액자 안의 이야기가 진행될 때, 심각한 상황일 때는 조명이 점점 어두워졌다. 조명이 노골적으로(?) 어두워지기도 했고, 자주 명암이 바뀌어 산만하기도 했지만 극의 분위기를 조명으로 조절했다는 점, 그리고 관객들의 몰입 유도를 했다는 점에서 칭찬해주고 싶다.
 
또한 알프레드가 죽는 장면에서 라디오의 치지직거리는 특유 효과음을 통해 정의에 대해 한바탕 연설하는 라디오 속 목소리가 비현실적으로, 그리고 알프레드의 죽음이 더욱 비논리적으로 느껴지게 한 것도 좋은 무대장치였다. 저 멀리 떨어진 듯한 라디오의 효과음이 분위기를 스산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무대장치보다 구성에 가깝지만, ‘1인 2역’을 무대장치처럼 활용했다는 것이다. 액자 속 <노부인의 방문> 이야기 중간에 알프레드와 경찰서장의 대화 장면이 있는데, 경찰서장의 역할을 알프레드 역할의 배우가 같이 진행했다. 같은 장면에서 1인 2역을 맡아 선글라스나 모자와 같은 소품과 목소리, 행동만으로 다른 역할임을 구별지었다. 이것 역시 자칫 독이 될 수 있는 요소였지만,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는 기회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2인이 2명의 역할을 맡는 것보다 각 역할의 대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1시간 반의 연극이었지만, 짧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명 깊었던 무대였다. 평소 자주 거론되는 ‘정의’에 대한 의문, 그리고 연출자 개인이 보여주고 싶었던 ‘현대무용’의 양립적 입장까지.  정의는 정의내릴 수 없다. 사람마다 보는 기준도 다르고, 문화적 기준, 국가적 기준도 다르다. 이는 정의(justice)뿐 아니라, 현대무용도 마찬가지이다. 예술분야는 개인의 표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타인의 눈으로 보는 평가의 잣대가 애매하다. 

이 연극을 통해 정의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부디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은 같이 동행했던 해군소령님ㅋㅋㅋㅋㅋ의 후기와 함께, ‘댄싱 9’으로 유명해진 두 현대무용수의 무대로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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