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을 갈망하는 이 세상 모든 해바라기들에게

글 입력 2015.08.2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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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수정_2015신진연출가전.jpg
 



<시놉시스>

하늘과 맞닿은 언덕 위, 평범한 주택가.
재만의 집에는 치매할머니 수복과 그녀의 딸 애란,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작가 지망생 우현이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뜨거운 여름 날, ‘뱀파이어 증후군’이라는 _햇빛을 볼 수 없는_ 희귀병을 앓고 있는 연서가 그들의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밤에만 운영하는 슈퍼를 연다.
 
재만은 오래전 부터 동네 물건들을 모으는 수복의 요상한 고집병때문에 고물들로 가득 차 지저분 해져버린 수복의 집 때문에 매일 같이 애란과 다툰다. 참다못한 재만은, 일주일 안에 수복의 집을 정리하고 이사 갈 것을 요구하고, 이에 지칠대로 지친 애란은 더이상 수복을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를 지켜본 연서는 많은 대화를 통해 수복과 가까워지고, 수복을 도울 방법을 모색한다.
 
한편, 자신을 숨긴 채 집 안에 숨어 블로그에 글을 쓰며 살아가던 우현은, 수복을 돕겠다며 나대는 연서때문에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안그래도 자신을 남편으로 착각하는 수복의 구애와 집주인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참견에 이골이 나 있던 우현에게 연서의 등장은 반가울리 없다.
 
그러던 어느 한낮, 수복이 사라진다.
수복이 사라지기 전에 수복에게, 도대체 언제 집을 치울거냐며 화를 낸 재만, 제발 시끄러우니 문 좀 그만 두드리라고 짜증을 낸 우현, 깊은 앙금으로 인해 그만 모진말을 내뱉은 애란, 모두 자기 탓만하며 자책한다. 이에 수복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왔다가 쓰러지는 연서를 보며 사람들은 함께 하나되어 수복을 찾아나선다.
 
해가 떨어지고 저녁이 되자, 수복을 찾아나설 수 없는 자신의 상태가 괴롭기만 했던 연서는 아픈 몸을 이끌고 홀로 수복을 찾아나서고, 결국 남편의 생일로 착각해 생일 밥상을 차릴 장을 보러 갔던 수복을 찾아 데리고 돌아온다. 황당한 수복의 해프닝에 놀란 가슴을 쓰러내린 마을 사람들은 연서의 제안처럼 처음으로 마주앉아 파티를 즐기게 된다.
 
이상한 이웃여자의 오지랖과 기이한(?) 행동이 점차 호감으로 변하게 되는 우현.
자유로운 이웃남자의 상상력과 순수함에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연서.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이 두 사람에게 기나긴 장마가 찾아온다.
 
연서는 긴 장마를 이겨내고 뜨거운 태양과 마주할 수 있을까...?
대지 위에 서서 고개를 들고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뮤지컬을 좋아한다.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킹, 위키드, 빌리 엘리어트...이 뮤지컬들이 얼마나 멋진지에 관해서 한참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극내 뮤지컬, 게다가 창작 뮤지컬에 대해서는 할말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해바라기>의 첫인상은 낯설게 느껴졌다.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 그리고 신진 연출가라는 문구에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해바라기>를 보고 난 후, 이런 불안감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그만큼 훌륭했다. 

<해바라기>를 볼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등장인물들에게 하나씩 주어진 네모난 틀이다. 이 틀은 인물들을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문이 되어 서로를 단절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틀만으로도 공간이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지 놀랍다. 무대 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상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연서의 가게, 수복의 골동품들, 달동네 언덕에 이르기까지 계속 변신한다. 

다양한 조명의 사용도 두드러진다. 무대 뒷면의 벽에 투사되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사랑의 설렘을 보여주기도 하고, 눈물처럼 내리는 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극의 마지막, 절정에서의 조명은 장면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배우들이 빚어내는 매력적인 인물들도 <해바라기>를 보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세상을 누구보다 동경하지만 햇볕을 볼 수 없는 연서, 세상과 단절하면서 글을 쓰는 우현, 억세 보이지만 속은 여린 애란, 거칠고 능글맞지만 외로움을 타는 재만, 딸인 애란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수복까지.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진행될수록 가슴이 아려서 혼났다. 다만, 몇몇 장면에서 발성이 약간 흔들려서 아쉽기도 했다. 또한 극 초반에서 다같이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가 겹쳐서 뭉개지기도 했다. 하지만 극의 후반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어서 집중할 수 있었다. 

취중진담이야, 술이 널 도와줄거야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노래 한 구절이다.
서로 대립하던 인물들은 차츰 하나로 뭉치게 되고, 술을 마시면서 남은 앙금도 모두 털어내게 된다. 인물들이 소리 높여 부르는 노래는 서로의 진심을 술술 풀어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갈등과 변화와 극적인 화합이라는 흔한 소재도 이렇게 잘 엮어나가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관객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구성 외에도 <해바라기>는 여러가지 면에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든다. 연서의 뱀파이어 증후군이라는 독특한 소재, 극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우현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물론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없지 않다. 우현의 글이라는 소재는 그래서 왜 등장해야 했었는지, 마지막의 연서의 자살시도 아닌 자실시도와 결혼식은 지나치게 급한 전개가 아닌지 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재미있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을 선보이고 싶다'는 취지가 얼마나 잘 실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공연이 대한민국 예술계의 미래라면 앞으로의 미래는 해바라기처럼 밝을 것이다.  

  

기획총괄팀_임여진님.jpg
 

[임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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