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한 우리 노래, 뮤지컬 < 아리랑 > [공연예술]

그래서 영원히 < 아리랑 >인가 봅니다.
글 입력 2015.08.28 13: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리랑 포스터.png
 


아리랑은 마치 모든 빛을 모아서 흰색이 되듯, 모든 물감을 합쳐 흑색이 되듯 
세상 모든 비애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무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 고선웅(뮤지컬 아리랑 극본,연출,가사) 



 어느덧 광복 70주년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세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지나갔으며 70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고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지났을지언정 몰라선 안 되는 역사입니다. 용서할지언정 잊어선 안 되는 역사입니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며 그것을 잊은 민족은 다시금 아픈 상처를 바닥에 짓잇기게 될지도 모를 까닭입니다.
그래서 또 한번 <아리랑>인가 봅니다. 

 12권에 이르는 웅장한 소설 ‘아리랑’을 2시간 남짓의 뮤지컬에 담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게 제 가장 큰 의문이자 걱정이었습니다. 사전 공부(?)를 해가지 않았기에 이해가 안 가면 어쩌지 하는 것도요. 확실히, 거대한 스토리를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려다 보니 조금 부산스럽다는 느낌을 1막에서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리랑>은 아리랑이어서, 아무것도 몰라도 마음으로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풀이 눕는다.png
 

풀이 눕는다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는다 동풍에 나부껴
먼저 누워도 먼저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 뮤지컬 <아리랑>, 풀이 눕는다 中


아마 이 가사가 아리랑의 모든 걸 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풀 같은 우리 민족, 우리를 눕히고 울게 하는 동풍 일제, 그러나 그 바람에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난, 죽을 것 같아도 견뎌내며 살아온 우리 민족. 이것이 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극 내내 저는 함께 누웠고 함께 울었으며 함께 일어났습니다. 저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뻔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넘버가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선 역시 비슷한 터라 단조로울 수 있는 위험이 충분했습니다. 그런 위험한 구덩이를 메운 것은,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와 뛰어난 배우들이었습니다. 


윤공주.png
 

 특히 방수국 역의 윤공주 배우는 연기가 아니라, 완벽하게 방수국 그녀 자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이제껏 이렇게 배우와 캐릭터가 혼연일체가 된 것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방수국은 득보를 사랑하지만 일본 감독에게 겁탈 당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불 타 죽고, 자신을 사모하던 양치성에게 끌려와 그의 아이를 임신합니다. 그가 그녀의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을 모른 채. 
마침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녀가 그에게 달려가 낸 소리는 제가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한(恨)이었습니다. 그녀가 부르는 ‘아의 아리아’는 ‘아’ 한 글자뿐이었으나 어떤 구구절절한 사연보다 강렬했습니다. 인간의 소리가 아닌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렸고, 그래서 더 찢어지도록 한스러웠습니다. 

 이 휘몰아치는 ‘아의 아리아’에는 양치성도 함께 합니다. 수국을 평생 짝사랑하는 그는, 천한 노비 태생으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릅니다. 악역인 그에게 무슨 한이 있냐고요? 


양치성.png
 

이 나라가 무엇을 나에게 무엇을
양반네들 뒤치다꺼리 종놈의 팔자
거지같았던 내 운명 거지같았던 내 운명

- 뮤지컬 <아리랑>, 다른길 中


 그가 말하고 싶은 게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감히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나라가 그와 그의 아버지에게 천한 종놈의 낙인을 찍어 평생을 괴롭혔는데, 누가 감히 그에게 조선을 위해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의 상처, 열등감, 분노,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 천민의 한이 모두 어우러져 그의 ‘아의 아리아’가 완성됩니다. 방수국의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 용암덩어리였다면, 양치성의 감정은 너무 차가워 타는 듯이 뜨거운 드라이아이스가 알맞을 것 같습니다.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악에 받친 카이 배우의 모습과 폭발적인 성량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결국 일제에 의해 죽고 맙니다. 그들에게 그는 충실한 ‘개’였을 뿐, 같은 ‘황국의 신민’은 아니었던 것이죠. “느덜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라며 죽음을 맞이하는 그가, 악역이지만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그는 왜 단 한 순간도 행복할 수 없었을까요.


3인.png
 

 다른 모든 캐릭터, 배우들도 다 좋았습니다. 송수익 역을 맡은 서범석 배우는 백(白)색처럼 고고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독립투사를, 수국의 어머니 감골댁 역의 김성녀 배우는 한스러운 조선의 여인이자 어머니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차옥비 역을 맡은 이소연 배우는 본래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라, 소리를 참 구성지게도 잘 뽑아주었습니다. 혹 연기가 좀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지만, 때로는 송수익을 사모하는 소녀의 모습을, 때로는 괴로움도 이 악물고 견뎌내는 강인한 여인을 손색없이 연기해주어서 극과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게다가 <아리랑>에는 배우 전체가 함께하는 장면이 많은데, '갓(GOD)상블'이라는 애칭을 얻은 앙상블이 그 모든 장면을 톡톡히 빛내주었습니다.


 전체 배우들이 나오는 장면 모두가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것은 역시 아리랑입니다. 제목이 <아리랑>인만큼, 극 중에는 아리랑이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1막의 진도아리랑, 2막의 우리가 흔히 아는 나운규의 아리랑,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금 진도아리랑. 아리랑이 불리는 장면은 하나같이 고통이 휩쓸고 지나간 뒤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이렇게 아프고 원통한데도 아리랑은 울분에 차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명나기까지 합니다.


아리랑 춤.png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이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리랑이 났네


노래자락에 맞추어 어깨 들썩이며 춤을 추고, 주거니 받거니 노래하며 북도 칩니다. 그렇게 함께 부르거니 추거니 하다보면 어느새 슬픔을 이겨내고 떨쳐내 버립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운규의 ‘신아리랑’은 신명나진 않지만, 역시 가슴 속에 꿈틀대는 울분과 달리 고요하고 정적입니다. 아리를 달래듯 조근조근, 속삭이는 듯합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설움을 삼켜내어 버립니다.
 ‘아리랑에는 세상 모든 비애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무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라는 고선웅 선생님의 말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참 우리 민족은 강하구나, 라는 생각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아리랑 막씬.png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의 진짜 중심은 언제나 민중이었습니다. 왕과 가신들은 도망가거나 자기 이익을 챙기기 바빴기에, 외적들에게 짓밟힌 것도 민중이었으며 칼을 쥐고 강토를 되찾은 것도 민중이었습니다. 그것은 애국심이라기보다는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자 했던 강인한 의지에 더 가까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뮤지컬 <아리랑>은 그 역사를 닮았습니다. 민중들의 이야기기에 내 이야기처럼 가까웠고, 그러면서도 애국이 아닌 ‘살아내는 것’,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것’이 초점이었기에 거북하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키워드로 하는 많은 작품 중에서 유독 <아리랑>이 편했던 이유도 아마 그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아리랑>인가 봅니다.




이미지 출처 : 신시컴퍼니


문화초대운영팀_최민희님.jpg
 
 
[최민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