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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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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2000)
바흐만 고바디 
드라마/ 2004.07.30/ 80분/ 프랑스 외/ 전체 관람가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제목부터가 이상했다. 이란의 영화를 처음 접해봐서 낯설기도 했다. 
  분명 80분간의 짧은 영화는 지루한 축에 속했다. 극적인 전개도, 반전도 없이 격렬한 감정마저도 작품의 고요함에 묻혀 영화는 담담하게 시작되어 조용하게 끝났다. 가공된 카타르시스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격렬한 감정의 분출도 없이 그저 모습을 담아내기만 한 영화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자 그 어떤 자극적인 영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진한 여운이 오래도록 나를 감쌌고 멀기만 했던 나라인 이란과 그곳의 사람들에게도 흥미가 생겨났다.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내는 감정의 강요가 아닌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담아낸 기법이 영화를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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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의 국경마을 바네에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밀수업을 하던 어른들이 전쟁 중 이란과 이라크 양국이 뿌려놓은 지뢰에 밟혀 사망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요인물이 되는 오남매도 지뢰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마저 막내를 낳다 죽어서 12살 소년 아욥은 졸지에 가장이 된다. 15살이지만 3살 때 성장이 멈춘 장애인인 형 마디의 수술비와 여동생 아마네의 연습장 값을 벌기 위해선 시장에서 신문지로 우편물을 싸던 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기에 그는 학업마저 포기하고 밀수하는 사람들의 심부름꾼을 자청한다. 
 국경수비대의 감시, 밀수품을 노리는 도적들, 수없이 깔린 지뢰, 그리고 짐을 나르는 말과 노새들에게 술을 먹일 정도로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의 위협이 계속되고, 고된 환경 속에서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보다 못한 장녀 로진이 마디의 수술을 조건으로 이라크로 시집을 가지만 신랑 측에서 수술대신 노새 한 마리로 신부 값을 치러버린다. 
 아윱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노새를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디를 안고 다시 한 번 밀수 행렬에 합류한다. 그러던 중 도적 일행과 마주치고, 설상가상으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술을 너무 많이 먹인 노새들이 술에 취해 쓰러져버린다. 모두 도망치는 와중 아욥은 형의 수술비인 노새를 버릴 수가 없어 취한 노새를 겨우 이끌고, 결국 마디와 단둘이 국경을 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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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계절은 겨울, 그것도 발이 푹푹 파일 정도로 폭설이 내리는 지독한 겨울이다. 영화 내내 잔혹한 현실과 어울리며 시리게 빛나는 하얀 설원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강렬하게 박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반쯤 무너진 집들이 가득한 국경마을 바네를 뒤덮은 흰 눈은 어떤 장치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마을의 모습을 나타낸다. 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힘들어지고 무거워진 사람들의 삶이 지상의 모든 것을 덮으며 내리는 눈의 무게감과 맞물려 상황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눈은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눈이 와서 길이 없어져야 밀수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어린 소녀 아마네. 밀수만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그들에게 눈은 꼭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영화 내내 눈의 차가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분위기처럼 마을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고 어떻게 보면 냉정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에 익숙해졌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세속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말들이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나라에 살며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보일 정도로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쓴다. 살고자 하는 그들의 필사적인 모습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인 삶에 대한 욕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을사람들, 언어, 생활방식들 모두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동화되고 있어서 실제 마을을 그저 찍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영화 속 사람들과 감독이 같은 쿠르드족(이란, 이라크 북부, 시리아, 구 소련 연방의 산악 지대 등에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랑민족.) 사람이었고, 감독 또한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동포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인물들도 연기자나 배우가 아닌 실제 마을의 주민들이며 감독은 디테일한 대본 없이 윤곽만 잡아 놓고 일상생활 속에서 장면들을 포착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주요 인물인 아마네와 마디가 실제로도 친남매라는 사실을 알자 영화가 더욱 깊은 울림을 가지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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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윱은 결국 마디를 안고 힘겹게 이라크 국경 철조망을 넘는다. 그 모습에서 무사히 노새를 팔고 그 돈으로 마디를 수술시켜 데려오는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사실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미래가 밝지 못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세상에 대해 알고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 그들의 눈빛은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깊고 많은 상처와 삶의 고됨이 담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괴리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무리 어른인 척 해봐도 그들을 아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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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영화라는 허구와 현실 사이에서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과 이란이라는 나라, 그리고 쿠르드족에 대해 안다면 영화가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이고, 영화 외적인 상황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단순히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진 영화 정도로 치부할 정도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크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부디 앎의 중요성을 알고 가혹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기를 소망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감독이 단순히 실화를 통해 관객들의 진실한 감정을 이끌어내려고 찍은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감동을 받고 거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해주기를 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보통 방송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익숙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에 그치고, 그런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만족하며 합리화 하는 것을 이제는 끝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보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나라 없이 떠돌고 있는 쿠르드족에게 관심을 기울일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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