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막장 고전 오페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글 입력 2015.05.1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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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고전 오페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김지현(ART Insight SNS 운영팀)


2015 피가로의결혼 포스터.jpg


<공연정보>

일시 2015년 5월 8일(금), 9일(토), 10일(일) (금요일, 토요일 19:30 / 일요일 15:00)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주최 (사)무악오페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조직위원회, 예술의전당
주관 및 문의 영앤잎섬㈜ 02)569-0678, 02)720-3933(홍보문의: 김현정 팀장 010-4946-1726)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사)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티켓 R 18만원, S 15만원, A 10만원, B 5만원, C 3만원, D 1만원, 페스티벌석 3만원
예매 SAC티켓, 인터파크, 티켓링크, 옥션, 예스24, 하나티켓





오랜만에 오페라를 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피가로의 결혼’. 내가 문화초대를 처음 받았을 때 갔던 오페라 ‘배비장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 가볼 수 있었다. 

좌석이 2층에 위치해서 아쉽게도 배우들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 대사를 볼 수 있었고, 움직임이나 목소리는 잘 들려서 다행이었다.

오페라에 대해 설명을 먼저 하겠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서도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와 함께 “다 폰테 3부작” 중 제일 인기 있는 명작이다. 

‘다 폰테’는 베네치아 출신 대본가로서, 천재적 문재를 지녔지만 가톨릭 사제 신분으로 유부녀와 스캔들을 일으켜 베네치아에서 추방당해 빈에 들어온 문제아였다. 그 기질을 버리지 못했는지 모차르트와 함께한 세 편의 오페라 부파는 모두 당대의 성 풍속, 나아가 인간 내면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로렌조 다 폰테.jpg

로렌초 다 폰테 (Lorenzo Da Ponte)


여기서 ‘오페라 부파’란,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가벼운 내용의 희극적인 오페라를 일컫는다. 오페라 부파는 본질적으로 희극이고, 대개는 두 젊은이의 사랑과 이들의 결혼을 방해하는 부친이나 후견인 또는 구혼자 간의 갈등과 유쾌한 해소가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정형화된 인물을 풍자하는 오페라 부파의 일반적 규칙과 달리 주요 캐릭터가 모두 살아 숨쉬는 점이 매력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알마비바 백작’인데, 오페라 부파에서 ‘바소 부포(basso buffo)’라 하여 나쁜 꾀를 부리다가 망신을 당하는 역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대귀족다운 품위가 묻어나오고, 그저 바람둥이가 아니라 아내의 생각과 행동에 질투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인다. 정형화된 바람둥이의 모습은 아니다. 이 밖에도 전형적인 2막이 아닌 4막 구조의 대작이라는 점, 마지막이 야외에서 펼쳐진다는 점도 대체로 실내극인 오페라 부파의 공식과는 다르다. 여러 면에서 오페라 부파의 닫힌 구조를 깨뜨린 선구적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백작 침대 밑에.jpg

확실히 내가 예전에 봤던 창작 오페라 ‘배비장전’에 견주어 봤을 때, 훨씬 재밌었다. 지난번 봤었던 ‘카르멘’처럼 러닝타임이 길어서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카르멘보다 더 재밌었던 것 같다. 희극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들으니 훨씬 집중이 잘 됐던 것 같다. 

혹시 내용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시놉시스를 준비했다.

시놉시스

[제1막] 피가로는 백작 부인의 하녀 수산나(Susanna)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막이 오르면 피가로가 신혼 방에 새로 들여놓을 침대의 치수를 재고 있다. 수산나는 신혼 방이 백작의 침실과 가까운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한다. 희대의 바람둥이이자 호색한 알마비바 백작은 아름다운 아가씨 로시나(Rosina)와 결혼에 골인하고 나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듯 했지만, 요즘에는 권태기에 들어선 것 같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백작은 다음 정복 대상으로 하녀 수산나를 눈독 들이고 있다. 낌새를 알아챈 피가로는 복수를 계획한다. 복수라고 해서 칼을 들고 결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크게 골탕을 먹여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것이다. 피가로의 아리아 「백작 나리, 춤을 추시겠다면 기타를 연주해 드리지요(Se vuol ballare, signor Contino, il chitarrino le suonero)」는 ‘어디 두고 보자!’는 피가로의 결심을 반영하는 노래다.

백작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피가로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가 생긴다. 중년을 넘어 할머니 대열에 들어가도 될 만한 백작 저택의 고참 가정부 마르첼리나(Marcellina)가 피가로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피가로는 사정이 있어 마르첼리나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다. 마르첼리나는 비열한 변호사 바르톨로(Bartolo)와 은밀히 모의해 만일 피가로가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무슨 일이든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서약을 받아냈다. 돈을 빌려준 마르첼리나와의 결혼도 불사하겠다는 서약이었다. 바로톨로는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시나에게 눈독을 들였다가 피가로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망신만 당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마르첼리나가 ‘피가로 잡기’ 제안을 했을 때 만사 제쳐놓고 협조에 협조를 다짐했다. 마르첼리나는 피가로에게 돈을 갚지 못했으니 서약한 대로 자기와 결혼할 것을 주장한다.

이제 케루비노(Cherubino)가 등장할 차례다. 귀족 집안 자제로 알마비바 백작 집에 교육생으로 와서 잔심부름을 하며 일을 배우고 있는 케루비노는 얼마 전 정원사의 딸 바르바리나(Barbarina)를 유혹하려다가 들켜 백작 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케루비노는 그저 예쁜 여자만 보면 사모합니다를 노래처럼 내뱉는 미소년이다(케루비노는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케루비노는 수산나에게도 연애 감정을 품었다가 피가로가 따끔하게 혼내는 바람에 일찌감치 포기했고, 요즘에는 미모와 교양과 고독을 겸비한 백작 부인에게 접근하려고 안달이 나 있다.

백작 집에서 쫓겨난 케루비노는 백작 집만 한 곳도 없다고 생각해서 수산나와 피가로에게 복직을 부탁하러 왔다가 수산나의 방에 들어가게 된다. 마침 백작이 수산나의 방에 들어오자, 케루비노는 얼른 숨는다. 백작은 여기서 케루비노의 소리를 들었는데 어디 있냐고 하면서 당장이라도 잡아낼 것처럼 야단을 떤다. 수산나의 기지로 케루비노는 들키지 않고 도망친다. 이어 피가로가 마을 사람들과 합창을 부르며 들어선다. 너그러우신 백작께서 케루비노를 어여삐 여기사 다시 불러 일자리를 주신 데 감사하며, 백작님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백작은 할 수 없이 케루비노를 복직시키되 집에 두면 곤란하니까 자기가 이끄는 연대 장교로 임명해 멀리 보내겠다고 말한다. 이때 피가로가 부르는 아리아가 「더는 날지 못하리, 바람기로 물든 나비야」다.

[제2막] 백작 부인은 신세를 한탄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그녀는 남편의 무관심을 한탄하며 한숨을 짓는다. 이런 백작 부인에게 피가로가 묘안을 제시한다. 백작 부인이 다른 남자와 사귀는 것처럼 꾸며 백작의 질투심을 자극하면 백작은 다시 부인에게 관심을 돌릴 테고, 그러면 수산나에게 더는 치근덕대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때 마르첼리나가 의기양양하게 변호사 바르톨로와 함께 백작을 찾아와 피가로가 돈을 갚지 않으니 약속을 이행하게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한다.

[제3막] 백작은 수산나와 백작 부인, 피가로까지 가세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선 피가로의 기를 꺾기 위해 원고 마르첼리나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다. 피가로가 마르첼리나와 결혼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이 황당한 판결에 피가로는 미칠 지경이다. 억울하고 속상해 그 자리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마르첼리나와 바르톨로를 때려눕힐 기세다. 그 순간 마르첼리나는 피가로의 팔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기절초풍한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마르첼리나와 피가로의 결혼 판결은 무효가 된다.

백작의 사랑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백작 부인은 신혼 시절을 그리워하며, 저 유명한 아리아 「그리운 시절은 가고」를 부른다. ‘달콤하고 즐거웠던 그 순간들은 이제 어디로?’라는 내용의 아리아다. 백작 부인과 수산나는 피가로의 계략에 따라 백작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이때 두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편지의 2중창, 즉 「산들바람은 불어오는데」다. 얼마 후 수산나와 피가로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축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수산나가 백작 부인과 함께 쓴 편지를 백작에게 슬쩍 건넨다.

[제4막] 피가로는 방금 전 수산나가 백작에게 은밀히 전한 편지가 진짜인 줄 안다. 그는 결혼식까지 치른 마당에 백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넘어간 수산나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피가로는 두 사람의 밀회 현장을 잡기로 결심하고는 백작과 수산나가 만나기로 한 정원으로 몰래 숨어들어 기다린다. 눈치 빠른 수산나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슬쩍 장난기가 발동한 수산나는 백작과 정말 데이트라도 하려는 듯 연기하다가, 작전대로 백작 부인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수산나로 변장한 백작 부인이 약속 장소로 나간다. 백작은 캄캄한 밤중이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옷차림을 보니 분명히 수산나이므로 평소 하던 버릇대로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저만치 어두운 곳에서 수산나가 백작 부인 차림을 하고 둘이 서로 화해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한편 피가로는 백작이 수산나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쓰는 것을 보고 화가 치민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백작 부인을 보니 수산나 아닌가?

수산나가 아닌 자기 아내에게 영원히 사랑하느니 뭐니 온갖 말을 늘어놓은 백작은 생각만 해도 창피하고 속이 상해 죽을 맛이다. 게다가 아내에게 꽉 쥐어 지내게 생겼으니 더 속이 상한다. 그렇다고 변명 한마디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모든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잘됐다고 하면서 합창을 부른다. 백작은 이번 사건에 가담한 모든 사람을 엄중히 문책하겠다고 말하지만, 백작 부인이 전원 사면을 선포하면서 오페라는 해피엔드로 막을 내린다.

딱 봐도 재미있어 보인다. 사실, 막장 이야기이다.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을 계속 방해하던 마르첼리나가 사실은 피가로의 어머니라니,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모두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마르첼리나.jpg

특이했던 점 하나는,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사춘기 소년 ‘케루비노’역을 여자가 맡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원래 ‘케루비노’의 역할은 남장을 한 여자가 맡는다고 한다. 

메조 소프라노 김선정.jpg

'케루비노' 역의 김선정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은 소프라노 ‘홍혜경’의 목소리를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백작 부인 역을 맡은 그녀는 확실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계속 계약을 맺은 실력파답게, 고음 처리도, 발성도 안정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잔나 역을 맡은 ‘류보프 페트로바’ 역시 떠오르는 신인이라는 호칭이 어울리게 홍혜경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외국 배우와 한국 배우가 섞여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은근히 케미가 잘 맞았다. 어차피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진행되기도 하고, 배우들 간의 눈빛교환이나 애정표현도 자연스러워서 위화감을 많이 느끼지 못했다. 

피가로랑 수잔나.jpg

또한 익살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가 웃음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이 의도된 유머가 아니라 마치 애드리브처럼 배우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러운 위트여서 오페라의 흐름을 망치지 않고 잘 녹아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알마비바 백작’은 여타 오페라에서 볼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바람둥이에다가 여자를 밝히지만, 그렇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백작부인의 계략에 넘어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때, 백작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부인의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한다. 이 부분이 굉장히 의외였다. 보통 호색한이나 답 없는 바람둥이들은 아내의 탓으로 돌려버리거나 자존심에 미안하다는 소리를 안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에 부인이 자신을 속이고 시험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도, 부인을 질책하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에는 또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케루비노다. 촐싹대고, 모든 여자들에게 추근대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극 내에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청량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춘기 소년의 느낌을 내려 여자 배우를 사용하는 것이 자칫하면 어색할 수 있음에도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장난꾸러기에 사랑을 갈구하는, 멋모르는 소년의 철딱서니 없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케루비노.jpg

이 외에도 백작부인이나 수잔나같이 여자들이 이야기의 해결책을 주도해나간다는 점도 신선했고, 마지막에는 결국 피가로도 수잔나에게 한 방 먹는 장면도 특이했다. 배비장전, 카르멘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정말 잘 짜여진 무대여서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래서 가져왔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풀 영상! 시간이 나시는 분들은 꼭 감상하길 바란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전체 영상

 
마지막으로, 피가로의 결혼에 나왔던 주옥같은 노래 몇 곡의 영상을 끝으로 글을 마치겠다 :)



편지의 이중창 “Che soave zeffiretto” (백작부인이 백작에게 거짓으로 수잔나에게 유혹편지를 쓰게 할 때)



이제는 날지 말지어다. 나비여 “Non piu andrai" (피가로가 더 이상 여자들에게 추근대지 못하게 된 케루비노에게 부르는 아리아)




<출처 및 참고자료>

http://www.nytimes.com/2012/10/29/arts/music/mozarts-nozze-di-figaro-at-the-metropolitan-opera.html?_r=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270963&cid=51211&categoryId=51211
http://blog.naver.com/davidecheh/22003268420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6&contents_id=2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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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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