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로의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아마추어들을 위해 [문학]

글 입력 2015.04.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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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재구성된 지구의 대륙처럼
 그 봄의 홈그라운드는 텅 비어 있었다. 이제 그곳에서 무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中

삼미.png


* 삼미 슈퍼스타즈 : 프로야구의 원년(元年)인 1982년, 인천을 연고지로 등장했던 프로야구팀이다. 그 해에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저 승률 0.125를 기록하고, 이후에도 쭉 최하위를 지키다가 1985년 매각되어 사라졌다. 


 점점 더 멀어져가는 나의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나는 지쳐있었다. 쉬지 않고 홈을 향해 달린 시간이 몇 년이었을까.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명문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명문대학교를 가기 위해, 나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밀지 않았지만 주위의 모든 것이, 심지어 나조차 나를 밀쳤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공청소기 마냥 억지로 떼어내고, 잘 들어오지 않는 숨을 진공청소기 마냥 억지로 삼켜내며, 이제 한계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함께였다. 당시 2학년 담당 국어선생님이자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셨던 선생님께서 수행평가로 이 책,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꺼내시기 전까지는. 그 가을, 불변할 것 같았던 나의 홈그라운드는 재구성되어 나는 다시 출발점에 돌아왔다. 홈은 더 멀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그 곳에서 무엇을 해도 좋을 것 같았으므로.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라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9회말 2아웃 상황에서도 눈물겨운 역전승을 이뤄낼 수 있는 게 야구에요. 인생도 마찬가지인 걸요! 힘내요!’ 이런 소리를 하자는 게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프로야구 마냥 모두에게 프로, 정식 명칭 ‘프로페셔널’이 될 것을 조장하고 있다. 사실 너무 힘든 것인데도,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오로지 승자가 되기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승자만을 기억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프로 열풍은 평범의 기준마저 바꿔버렸다. 모두가 프로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사회에서, 미친 듯이 노력해야 비로소 중간은 가고,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노력해야지만 겨우 프로가 된다. 평범하게 노력한 아마추어는? 가장 밑에서 마치 아무 노력하지 않은 사람처럼, 낙오되고 멸시받는다. 우리는 열풍 속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 괴로워하며 중간이, 프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삼미는 그런 세계에서 꿋꿋이 평범한 아마추어를 고집해 당당히 패자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들은 다른 팀들이 모두 ‘우승’을 목표로 할 때, 홀로 ‘정신수양’을 목표로 하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다’는, 프로의 세계에서 실로 방만하기 짝이 없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어째서 그런 태연함이 가능했던 걸까? 
그것은 아마

기준이 밖이 아닌, 그들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패배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결과가 아닌, 그냥 지나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옆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맞춰 천천히 걸으며, 그렇게 그들만의 야구를, 그들만의 인생을 만들 수가 있었던게 아닐까. 앞만 보면서가 아니라 때론 한눈도 팔면서, 때론 쉬어도 가면서. 행복하게.


 삼미는 프로의 사회에서 헉헉 대는 우리에게, 물고기처럼 유유히 다가와 말을 건넨다. 

왜 굳이 프로가 되려고 하니? 네 모든 것을 버려가며, 그렇게 힘들게? 평범하게 사는 것은 불행하니? 
그들이 말하는 프로가 되면, 행복할 것 같니? 

삼미는 어쩌면, 프로 열풍에 지친 우리를 구원해주려 날아온 진짜 슈퍼맨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종종, 사회가 미는 대로 휩쓸려 정신없이 달려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펴고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한다.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이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인지,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지금 나는 행복한지.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추고 ‘삼미 슈퍼스타즈’와 함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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