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감정들, 송승언의 '철과 오크' [문학]

글 입력 2015.03.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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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언 시인의 첫 시집 
『철과 오크』(2015)


누구보다 송승언 시인의 첫 시집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시를 천천히 반복해서 읽으며 시의 언어를 곱씹었다. 이전에 몇 편 읽어본 그의 시를 떠올리며 그의 언어가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벗어났다. 그의 언어는 나를 자꾸 모르는 곳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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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승언 시인. 출처〈문학과 지성사〉


하지만 그곳은 분명 내게 익숙한 장소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먼 이국에 떨어졌다기 보다, 내 삶의 반경 내에 존재했던 한 장소에서 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버린 기분이다. 내가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다양하다. 예를 들면, 그곳에서 경로를 벗어나 빗겨나가는 빛 한 줄기를 발견한 것이다. 그 빛이 새어나가는 하나의 장면을 보며 나는 내가 발 딛고 있는 그 곳에서 낯선 감각을 느낀다. 처음으로 나는 매일 발자국을 남겼을 그 길의 감촉을 지각하게 된다.


드디어 꿈이 사라지려는 순간, 너는 창밖에서 잠든 나를 보고 있지
암초 위에서 심해를 굽어살피는 너의 낯빛에 놀라자 꿈은 다시 선명해진다

- 송승언, 「녹음된 천사」 중에서


화자인 내가 발 걸치고 있는 지점은 '꿈'과 '현실'의 사이, 즉,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 놓여 있다. 완전히 꿈 속도 아니고,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때, '드디어 꿈이 사라지려는 순간'에 너를 목격한 것이다. 꿈이 다시 선명해진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꿈에서 깨어나려는 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꿈과 현실을 오고 간다. 구체화할 수 없는 꿈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화자는 감긴 눈으로 밀려들어오는 빛을 본다. 꿈에서 깨어나려는 화자가 눈부신 감각을 느끼게 하는 빛은 분명 현실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제 막 꿈에서 깨려는 지점에서 화자에게 이 빛은 낯선 존재다. '빛이 어둠을 망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은 여전히 감겨 있'는 모습은, 이 빛이 현실세계의 피상적인 현상으로써 존재하는 빛인지, 꿈 속에서 느끼는 감각인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본 시집의 해설에서는 화자가 목격하는 이 순간을 "현실적 비현실성"이라 말한다. 


이처럼 "현실적 비현실성"은 단순히 현실이 아닌 것, 혹은 현실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명징한 현실성 속에 제압되어 있던 부재의 흔적(과거)이 활성화되는 어떤 체험적 시간을 지시한다.

- 시집 『철과 오크』 해설, 강동호 〈의미의 미니멀리즘〉중에서


화자가 계속 죽음에 이끌리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삶과 삶의 종착지인 죽음으로 가기 직전에 서있는 화자는 계속 죽음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송승언의 시에서 형상화되는 죽음의 이미지는 죽음 뒤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없음으로 남는 것이 아닌, 죽음이 반복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체가 죽어도 피상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는 여전하고, 세계 안에서 또 다른 죽음이 계속 되고 있다. 하나의 사물이 무너져내리고 나면, 그 뒤에 상승하는 다른 것이 존재한다. 세계가 '죽음의 연속'이라는 시점에서, 죽음에서부터 출발하는 시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병원에 있다 나왔구나 나는 이제 병원에 들어갈 거고 아주 나오지 않을 거야, 말했다 나는 그럴 참이었다 병은 없지만 병은 만들면 된다 창문이 있다면 커튼을 치면 되고
명자는 예쁘고 쪼그리고 앉아 꽃잎을 더듬는 손이 계속 떨렸다 너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니, 묻는데 이제는 찾아올 사람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너에게 그늘이 없어서 

너는 빛과 같이 걸었다 천사들을 비웃으며

몇 호실이니? 묻는데 대답이 없고 묻는 사람이 없다 정원에는 죽은 개미 떼 주인 잃은 작은 굴들

- 송승언, 「굴」 중에서


곰팡이 핀 천사가
눈물을 흘린다. 제 몸을 녹여가면서

촛불이 방을 어둠으로 채우고 있다.

네가 죽은 만큼 네가 태어나는 밤
검은 물에 잠기는 아리아

- 송승언, 「축성된 삶의 또 다른 형태」


「굴」이 죽음을 드러내지 않지만, 명자의 죽음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축성된 삶의 또 다른 형태」에서는 초가 녹으며 어둠이 채워지면서 '네가 죽은 만큼 네가 태어나는 밤'을 통해서, 죽음 뒤에 생성되는 이미지가 돋보인다. 「굴」의 화자가 문득 죽음을 지각한 느낌이라면, 「축성된 삶의 또 다른 형태」에서는 죽음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시이지만, 송승언 시인을 시를 통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앞에 언제든 죽음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끊임 없이 이어지는 죽음과 함께 지속적인 삶의 굴레 또한 더욱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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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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