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청춘이란 여름 한때 '여름궁전'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3.2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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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여름 한때


<여름궁전>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전후 격동의 시대 속에서, 10년에 걸쳐 유홍과 저우웨이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개인사를 격정적으로 펼쳐 보이는 일종의 휴먼 대하드라마 장르이다. <여름궁전>은 천안문 사태를 비롯해 10년에 걸친 역사적 사건들을 자료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영화라고 볼 수도 있고,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섬세하게 또는 성에 관해 대담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로맨스영화라고도 볼 수가 있다.

대학에 들어와 중국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격변기를 모두 몸과 마음으로 겪어야 했던 그들, 절정을 지난 후에 상처만 남은 유홍과 저우웨이의 치열한 사랑이 끝나 감을 바라보는 동시에 그들은 중국의 민주주의가 계엄령을 통해 짓밟히는 것을 목격한다.

등장인물들의 사랑의 낭만주의와 무자비한 현실의 충돌은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영역과 천안문사태라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을 중첩시키는 일종의 서사구조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은 유홍의 시점을 통해 진행이 되는데, 후반부에 와서 저우웨이의 시점으로 영화가 옮겨간다. 이러한 점은 극 중 내용의 일관성이 흐트러지고 관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시점의 변화를 통해 저우웨이의 감정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으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1989년 중국과 유홍 그리고 저우웨이


“1989년은 한마디로 ‘로맨틱한 시대’였다. 젊은 사람들이 로맨티시즘에 빠져있을 때다. 중국은 더 큰 세상으로 발돋움 하던 시대였고 젊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문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지금은 그 모든 시대적 상황들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로우 예 감독의 인터뷰 중

1980년대 중국은 당시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문화적으로는 과도한 개방을 통해 국민들의 욕구를 채워주었고, 정치적으로는 더욱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보수주의로 국민들의 자유의지를 억눌렀다. 서구 문물의 과도한 유입으로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로맨티시즘의 시대였다. 청춘들은 팝 음악과 한국의 트로트에 맞춰 맥주와 담배를 즐기며 디스코를 추었고, 정치에 관한 열 띈 토론과,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겼다. 문화적 자유를 단번에 쉽게 얻은 것과 같이 민주주의도 그처럼 쟁취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천안문 사태는 이들에게 좌절만 가져다 줄 뿐이었으며 극중에서 말하는 환상에 불과했다. 이러한 1980년대의 좌절과 체념 속에서 1990년대 중국은 오로지 경제발전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유홍이라는 캐릭터는 이러한 중국사회와 많이 닮아있다. 영화의 앞에서 나온 내레이션처럼 유홍에게 사랑은 떼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사랑은 젊은 날의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삶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러한 그녀의 격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자아는 항상 사랑을 갈구하지만 가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사랑 속에는 탈출구가 없는 것이다. 1990년대 상업화 되어 가고, 물질화 되어 가는 사회와 변하지 않는 정치권력, 세계와 개인은 변하는데, 중국권력은 변하지 않는 모순과 괴리에서 오는 개인들의 불안한 심리는 곧 유홍의 사랑과 같은 것이다.

저우웨이는 ‘자유’를 상징한다. 유홍이 소위 요즘의 나쁜 남자와 같은 냉정하고 도시적인 저우웨이에게 빠졌듯이 당시 북경의 젊은이들도 서양의 자유라는 개념에 매혹 된 것이다.



불안한 청춘과 섹스 그리고 겨울옷을 입는 유홍


<여름궁전>은 134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핸드 헬드, 롱 테이크, 점프 컷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롱 테이크와 점프 컷은 10년이라는 영화상으로 길고 오래된 역사적 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또한 등장인물들에게는 심리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는 짧은 청춘의 시간을 의미한다. 핸드 헬드 촬영의 기법은 영화 속 인물들의 불안한 청춘과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젊음을 묘사하기에 충분하다.

영화 속에서 대부분의 섹스장면은 어둡게 처리가 되는데, 이러한 점들은 그들의 섹스가 낭만적이기 보다는 너무도 은밀하고 혼돈스러우며 언제 상실할지 모르는 그들의 사랑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 <여름궁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영화적 배경은 차가운 날씨이며, 극 중에서 유홍은 항상 겨울옷이나 같은 갈색 자켓을 입고 등장한다. 이러한 설정은 유홍의 차갑고 불안한 심리상태를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격변을 함께한 제6세대 로우 예 감독


“대학을 졸업했던 해인 1989년부터, 이런 종류의 사랑이야기를 발전시켜왔다.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사랑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베이징에 살던 시절, 이화원(중국의 여름궁전)이 학교 바로 옆에 있었고, 여름궁전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사는 ‘유홍’이란 한 여인의 모습이 영화의 시초가 되었다.”  -로우 예 감독의 인터뷰 중

로우 예 감독은 1989년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서 천안문 사태를 함께 겪었으며, 유홍이 일기장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듯 극을 전개하는 부분에서 유홍은 로우 예 감독의 페르소나를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점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작가주의와도 닮아있다.

<여름궁전>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감정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와 연계시키고자 하는 영화적 접근의 노력이 담겨 있다. 치명적 사랑이라는 사적 영역을 표시하는 절정의 감정과 섹스를 통한 몸의 대담한 표현은 천안문 사태라는 정치적 표현과 중첩된다. 이 영화에서 천안문사태의 이전과 이후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나누어졌다가 역사적 전환점이 되는 천안문 사태에서 겹치고 그 후에 모든 것은 그 영향 속에 놓인다.

이는 중국의 제5세대 감독들이 중화주의를 주제로 대작과 스펙터클한 영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영화작업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제6세대 감독들은 일상의 소소하고 섬세한 감정, 평범한 일상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차별성이 있다. <여름궁전>은 이에 어울리는 영화이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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