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뷰를 쓰고 여러가지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연극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나를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연극에 대한 생각들과 극을 풀어갈 방식들이 궁금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별오름극장은 음산하고 긴장되는 무대로 나를 반겼다.
---언어에 대한 회의와 통찰이 담긴.
보통의 극들이 진흙 덩어리를 놓고 언어라는 도구로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지를 조각해나가는 방식이라면, <시에나, 안녕 시에나>에는 처음부터 그들이 전달할 '메시지'라는 것이 대사라는 방식으로 분명하게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에나, 안녕 시에나>에서 극이 할 일은 메시지를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배치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완전한(완전해 보이는) 언어로 나타나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이러한 <시에나, 안녕 시에나>의 시도는 바로 우리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언어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비어있는 것인지에 대한 통찰의 표현이다. 그렇게 '언어로써 언어를 전달한다'는 <시에나, 안녕 시에나>만의 방식이 탄생한 것이다.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언어를 갖지 못한 감정은 당신 마음 속 괴물의 먹이가 된다.'와 같은 주제를 담고있는 말을 분열시켜 그대로 대사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대사가 등장하는 방식은 굉장히 리듬감있고 감각적이며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형성한다. 또한 이 때의 대사 분열은 등장인물 시에나의 '기억 속'이라는 상황의 표현이기도 하고, 그 기억속에서 어린 시에나와 자랐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시에나로 분열된 주인공 시에나의 모습과 일치한다.
이렇게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비어있는 허무한 말의 덩어리를 극이 진행되는 동안 탄탄하게 채워나간다.
--- 메시지: '당신의 감정에 언어를 주어라'
우리는 누구나 자신 속의 이해할 수 없는 괴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시에나는 그 괴물에게 고통받고 있는 주인공이다. 시에나의 부모님은 환경운동가로, 시에나에게 사랑과 온기보다는 규율과 예의를 가르치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시에나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괴물을 죽이려 애썼지만, 괴물을 잠재울 해답은 그것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게 '언어를 주는 것'이었다.
이 때 극에서는 언어를 준다는 것이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극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를 준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감정을 '말한다'는 행위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감정에 언어를 주는 것은 그 뿌리를 찾고 그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 근거로, 시에나는 사랑받고싶다고 말했지만 시에나의 부모님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시에나의 외부적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는 곧 '말하는 것', 또 그것에 관계된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 디테일에서 살아나는 극의 완성도
극이 끝나고 배우인사마저 극의 연장선인듯이 연출되었는데, 극이 끝나고도 배우들은 극중 캐릭터를 유지하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연극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본 후 센스있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도 같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러한 연출은 극의 끝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극을 관객에게로 확장시키는 과정이 되었다. 관객과 분리된 무대설정을 깨고 배우가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오는 순간, 이것은 마치 '당신들 모두가 시에나고, 시에나가 바로 당신이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깊은 여운이 남았고, 극은 더욱 인상깊게 나의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연극 <시에나, 안녕 시에나>가 보여준 언어에 대한 통찰, 세련되고 감각적인 연출, 관객과 나의 기억을 꿰뚫는 메시지는 모두 기대 이상이었고, 그 모든 것을 합해 완성된 극은 합 이상의 살아있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나는 내 안의 괴물을 어떻게 불러내어 그에 맞는 이름과 언어를 주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 괴물을 두려워하던 어릴 때의 나에게 이 연극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든 당신의 감정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연극에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감정에 언어를 주는 데 능숙한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완성도있고 매력적인 연극을 보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니까 -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든 진지한 자세로든, 이 좋은 연극을 당신이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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