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각자의 소망을 붙든 사람들,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 [공연예술]

글 입력 2015.03.0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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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동물원
원작: 테네시 윌리엄스
연출: 한태숙
출연: 김성녀, 이승주, 정운선, 심완준
공연장소: 명동예술극장
공연일자: 2015.2.26(목)~2015.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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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숙 연출의 〈유리동물원〉이 지난 2015년 2월 26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인 〈유리동물원〉은 작년 여름에도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품 안에서 등장인물이자 해설자인 톰은 10년 전 자신이 떠나버린 가족 어머니인 아만다와 누나 로라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기억극' 혹은 '회상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리동물원〉은 톰의 기억에 따라 위태로운 관계에 놓인 가족의 모습이 펼쳐지는 구성이다. 오래 전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며 떠올린 가족의 모습이,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무대 구성과 불완전한 집의 구조를 통해 재현된다. 

1. 시놉시스

톰과 아만다의 남편은 오래전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아버지의 흔적은 커다란 초상사진으로만 집에 남아있을 뿐이다. 아만다는 아들이 창고에서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살림을 유지하는 현실 속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화려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며 자식들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왔다.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대로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그녀가 가끔씩 로라와 톰을 모질게 밀어붙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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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아만다의 바람은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다. 세월이 지날수록 자식들과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뿐이다. 아만다의 딸 로라 윙필드는 어릴 때 병으로 불구가 되어 한 쪽 다리가 다른 쪽에 비해 약간 짧아 교정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 때문에 늘 자신감이 없고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은 로라가 아직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시집도 못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만다는 늘 걱정한다. 하지만 로라 또한 어머니의 걱정과 충고를 이해할 수 없다. 젊은 시절 화려했고 인기가 많았던 어머니와 달리, 자신의 평생을 교정기의 덜컹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늘 아이들의 가장 뒤에서 뒷걸음질 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로라는 아만다 몰래 직업학교까지 그만두고 유리로 만든 동물을 수집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또한, 아만다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아들 톰과도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톰은 시인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 창고에서 생활비를 벌어온다. 어머니 아만다가 현실세계에 발딛지 못하고 꿈과 몽상에 젖어있는 인물이라면 톰은 시인이 되고 싶은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도 늘 현실세계에 부딪쳐야만하는 인물이다. 아만다는 톰이 직장생활을 무리없이 이어나가길 바라며, 그가 읽고 쓰는 책들을 모조리 없애려고 한다. 언젠가 창고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는 톰과 아들의 이상적인 직장생활을 꿈꾸는 아만다는 늘 부딪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톰이 자신을 붙들고 있는 현실을 뿌리치고 싶어하면서도 가족을 놓지 못하는 것은 늘 깨질 것처럼 위태로운 누나, 로라 때문이다. 어머니의 압박을 견디고 직장생활을 이어가야만 하는 현실에 숨막혀하면서도 톰은 늘 누나를 걱정한다. 하지만 가족 중에서 로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로라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길은 유리 동물을 모으고 그것들을 돌보는 것뿐이다.

2. 우리는 현실을 뿌리치면서도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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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누나 로라에 대해서 극 중에 이렇게 말한다. "자기 세상속에 갇혀 살잖아요. 자신만의 유리동물원에서." 
〈유리동물원〉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로라가 모으는 유리로 만든 동물 모형은 자신의 상처로 인해 깨지기 쉬운, 로라라는 인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다. 홀로 고립된 로라는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인간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고립된 로라를 '유리동물원에 갇혀 지낸다"고 말하지만, 극 중 모든 인물이 자신만의 유리벽에 갇힌 채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을 현실과 개인의 단절로 볼 수는 없다. 각각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현실에 부딪치고 현실을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가족을, 자신이 매일같이 부딪쳐야만 했던 현실을 다시 떠올리는 톰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각기 다른 이상을 지니면서도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스스로 마주하려고 하는 〈유리동물원〉속 인물들의 모습은 바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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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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